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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2018. 10. 31. 00:00

壽光侯者,漢章帝時人也。能劾百鬼眾魅,令自縛見形。其鄉人有婦為魅所病,侯為劾之,得大蛇數丈,死於門外,婦因以安。又有大樹,樹有精,人止其下者死,鳥過之亦墜。侯劾之,樹盛夏枯落,有大蛇,長七八丈,懸死樹間。章帝聞之,徵問。對曰:「有之。」帝曰:「殿下有怪,夜半後,常有數人,絳衣,披髮,持火相隨。豈能劾之?」侯曰:「此小怪,易消耳。」帝偽使三人為之。侯乃設法,三人登時仆地,無氣。帝驚曰:「非魅也,朕相試耳。」即使解之。或云:「漢武帝時,殿下有怪常見,朱衣,披髮,相隨,持燭而走。帝謂劉憑曰:『卿可除此否?』憑曰:『可。』乃以青符擲之,見數鬼傾地。帝驚曰:『以相試耳。』解之而蘇。」

  樊英,隱於壺山。嘗有暴風從西南起,英謂學者曰:「成都市火甚盛。」因含水嗽之。乃命計其時日,後有從蜀來者,云:「是日大火,有雲從東起,須臾大雨火遂滅。」

  閩中有徐登者,女子化為丈夫,與東陽趙昺,並善方術。時遭兵亂,相遇於溪,各矜其所能。登先禁溪水為不流,昺次禁楊柳為生稊。二人相視而笑。登年長,昺師事之。後登身故,昺東入長安,百姓未知,昺乃升茅屋,據鼎而爨。主人驚怪,昺笑而不應,屋亦不損。

  趙昺嘗臨水求渡,船人不許。昺乃張帷蓋,坐其中,長嘯呼風,亂流而濟。於是百姓敬服,從者如歸。長安令惡其惑眾,收殺之。民為立祠於永康,至今蚊蚋不能入。

  徐登、趙昺,貴尚清儉,祀神以東流水,削桑皮以為脯。

  陳節訪諸神,東海君以織成青襦一領遺之。

  宣城邊洪,為廣陽領校,母喪歸家。韓友往投之,時日已暮,出告從者:「速裝束,吾當夜去。」從者曰:「今日已暝,數十里草行,何急復去?」友曰:「此間血覆地,寧可復住。」苦留之,不得。其夜,洪欻發狂,絞殺兩子,并殺婦。又斲父婢二人,皆被創,因走亡,數日,乃於宅前林中得之,已自經死。

  鞠道龍,善為幻術。嘗云:「東海人黃公,善為幻,制蛇,御虎。常佩赤金刀。及衰老,飲酒過度。秦末,有白虎見於東海,詔遣黃公以赤刀往厭之;術既不行,遂為虎所殺。」

  謝糾,嚐食客,以朱書符投井中,有一雙鯉魚跳出,即命作膾。一坐皆得遍。

  晉永嘉中,有天竺胡人,來渡江南。其人有數術:能斷舌復續,吐火。所在人士聚觀。將斷時,先以舌吐示賓客,然後刀截,血流覆地,乃取置器中,傳以示人,視之舌頭,半舌猶在,既而還取含續之。坐有頃,坐人見舌則如故,不知其實斷否。其續斷,取絹布,與人合執一頭,對翦中斷之;已而取兩斷合視,絹布還連續,無異故體。時人多疑以為幻,陰乃試之,真斷絹也。其吐火,先有藥在器中,取火一片,與黍餹合之,再三吹呼,已而張口,火滿口中,因就爇取以炊,則火也。又取書紙及繩縷之屬,投火中,眾共視之,見其燒爇了盡;乃撥灰中,舉而出之,故向物也。

  扶南王范尋養虎於山,有犯罪者,投與虎,不噬,乃宥之。故山名大蟲,亦名大靈。又養鱷魚十頭,若犯罪者,投與鱷魚,不噬,乃赦之,無罪者皆不噬。故有鱷魚池。又嘗煮水令沸,以金指環投湯中,然後以手探湯:其直者,手不爛,有罪者,入湯即焦。

  戚夫人侍兒賈佩蘭,後出為扶風人段儒妻,說:「在宮內時,嘗以弦管歌舞相歡娛,競為妖服以趨良時。十月十五日,共入靈女廟,以豚黍樂神,吹笛,擊筑,歌上靈之曲。既而相與連臂踏地為節,歌赤鳳皇來,乃巫俗也。至七月七日,臨百子池,作於闐樂,樂畢,以五色縷相羈,謂之『相連綬』。八月四日,出雕房北戶,竹下圍棋。勝者,終年有福;負者,終年疾病。取絲縷,就北辰星求長命,乃免。九月,佩茱萸,食蓬餌,飲菊花酒,令人長命。菊花舒時,并採莖葉,雜黍米饟之,至來年九月九日始熟,就飲焉,故謂之『菊花酒』。正月上辰,出池邊盥濯,食蓬餌,以祓妖邪。三月上已,張樂於流水。如此終歲焉。」

  漢武帝時,幸李夫人,夫人卒後,帝思念不已。方士齊人李少翁,言能致其神。乃夜施帷帳,明燈燭,而令帝居他帳遙望之。見美女居帳中,如李夫人之狀,還幄坐而步,又不得就視。帝愈益悲感,為作詩曰:「是耶?非耶?立而望之,偏婀娜,何冉冉其來遲!」令樂府諸音家弦歌之。

  漢北海營陵有道人,能令人與已死人相見。其同郡人婦死已數年,聞而往見之,曰:「願令我一見亡婦,死不恨矣。」道人曰:「卿可往見之。若聞鼓聲,即出,勿留。」乃語其相見之術。俄而得見之;於是與婦言語,悲喜恩情如生。良久,聞鼓聲,恨恨不能得住,當出戶時,忽掩其衣裾戶間,掣絕而去。至後歲餘,此人身亡。家葬之,開冢,見婦棺蓋下有衣裾。

  吳孫休有疾,求覡視者,得一人,欲試之。乃殺鵝而埋於苑中,架小屋,施牀几,以婦人屐履服物著其上。使覡視之,告曰:「若能說此冢中鬼婦人形狀者,當加厚賞,而即信矣。」竟日無言。帝推問之急,乃曰:「實不見有鬼,但見一白頭鵝立墓上,所以不即白之。疑是鬼神變化作此相,當候其真形而定。不復移易,不知何故,敢以實上。」

  吳孫峻殺朱主,埋於石子岡。歸命即位,將欲改葬之,冢墓相亞,不可識別。而宮人頗識主亡時所著衣服,乃使兩巫各住一處,以伺其靈,使察鑒之,不得相近。久時,二人俱白見一女人,年可三十餘,上著青錦束頭,紫白袷裳,丹綈絲履,從石子岡上半岡,而以手抑膝長太息,小住須臾,更進一冢上,便止,徘徊良久,奄然不見。二人之言,不謀而合。於是開冢,衣服如之。

  夏侯弘自云見鬼,與其言語。鎮西謝尚所乘馬忽死,憂惱甚至。謝曰:「卿若能令此馬生者,卿真為見鬼也。」弘去良久,還曰:「廟神樂君馬,故取之。今當活。」尚對死馬坐,須臾,馬忽自門外走還,至馬屍間,便滅,應時能動,起行。謝曰:「我無嗣,是我一身之罰。」弘經時無所告。曰:「頃所見,小鬼耳,必不能辨此源由。」後忽逢一鬼,乘新車,從十許人,著青絲布袍。弘前提牛鼻,車中人謂弘曰:「何以見阻?」弘曰:「欲有所問。鎮西將軍謝尚無兒。此君風流令望,不可使之絕祀。」車中人動容曰:「君所道正是僕兒。年少時,與家中婢通誓約不再婚,而違約;今此婢死,在天訴之,是故無兒。」弘具以告。謝曰:「吾少時誠有此事。」弘於江陵,見一大鬼,提矛戟,有隨從小鬼數人。弘畏懼,下路避之。大鬼過後,捉得一小鬼,問:「此何物?」曰:「殺人以此矛戟,若中心腹者,無不輒死。」弘曰:「治此病有方否?」鬼曰:「以烏雞薄之,即差。」弘曰:「今欲何行?」鬼曰:「當至荊、揚二州爾。」時比日行心腹病,無有不死者,弘乃教人殺烏雞以薄之,十不失八九。今治中惡輒用烏雞薄之者,弘之由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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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2018. 10. 31. 00:00

  神農以赭鞭鞭百草,盡知其平毒寒溫之性,臭味所主,以播百穀,故天下號神農也。

  신농은 자편으로 온갖 약초를 다지고, 그 풀이 가진 독의 성질과 차가운 성질과 따뜻한 성질과, 냄와 맛의 원인을 알아냈다, 온갖 곡식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모두가 신농이라 불렀다.


  赤松子者,神農時雨師也,服冰玉散,以教神農,能入火不燒。至崑崙山,常入西王母石室中,隨風雨上下。炎帝少女追之,亦得仙,俱去。至高辛時,復為雨師,遊人間。今之雨師本是焉。

  적송자는, 신농 시대 우사이다, 빙옥산을 복용하였고, 신농에게 빙옥산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빙옥산을 먹으면 불에 들어가도 불에 타지 않았다. 곤륜산에서는, 서왕모 석실로 들어가기도 했으며, 바람과 비를 쫓아 하늘을 오르내렸다. 염제의 작은 딸이 쫓아다니다, 그녀 역시 득선하여, 함께 떠났다. 고신(제곡) 시대에는, 다시 우사가 되었고, 인간 세상을 유람하였다. 현재의 우사는 본래 이 모습이다.


  赤將子轝者,黃帝時人也。不食五穀,而啖百草華。至堯時,為木工。能隨風雨上下。時於市門中賣繳,故亦謂之繳父。

  적장자여는, 황제 시대 사람이다. 오곡은 먹지 않으나, 온갖 풀과 꽃은 씹어 먹었다.  요임금 시대에는, 목공이 되었다. 바람과 비를 쫓아 하늘을 오르내릴 수 있다. 당시 시문에서 작(주살끈)을 팔았기 때문에, 작보라고도 한다.


  寧封子,黃帝時人也。世傳為黃帝陶正,有異人過之,為其掌火。能出五色煙。久則以教封子,封子積火自燒,而隨煙氣上下。視其灰燼,猶有其骨。時人共葬之寧北山中。故謂之寧封子。

영봉자는, 황제 시대 사람이다. 대대로 황제의 도정(옹기장이)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이인(선인)이 지나가면서, 손바닥에 불을 만들었다. 오색 연기를 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봉자를 가르쳤고, 봉자는 불을 질르고 스스로 불태워, 연기를 따라 하늘을 오르내렸다. 그 타고남은 잿더미를 보니, 그의 뼈가 그대로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뼈를 한데 모아 영북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래서 그를 영봉자라 부른다.


  偓佺者,槐山採藥父也。好食松實。形體生毛,長七寸。兩目更方。能飛行逐走馬。以松子遺堯,堯不暇服。松者,簡松也。時受服者,皆三百歲。

  악전은, 괴산에서 약초를 캐는 노인이다. 솔방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온몸에 털이 났는데, 길이가 칠 촌이다. 두 눈은 네모나게 변했다. 날 수 있어 달리는 말을 따라 잡았다. 솔방울을 요임금에게 가져다 주었으나, 요임금은 먹을 겨를이 없었다. 그 소나무는, 간송이라는 소나무다. 당시에 솔방울을 받아 먹은 사람은, 모두 삼백 세까지 살았다.


  彭祖者,殷時大夫也。姓錢,名鏗。帝顓頊之孫,陸終氏之中子。歷夏而至商末,號七百歲。常食桂芝。歷陽有彭祖仙室。前世云:禱請風雨,莫不輒應。常有兩虎在祠左右。今日祠之訖地,則有兩虎跡。

  팽조는, 은나라 시대 대부다. 성은 전이고, 이름은 갱이다. 제전욱의 손자이자, 육종씨의 둘째이다. 하나라 때부터 상나라 말기까지, 칠백 살을 살았다. 항상 계수나무와 지초를 먹었다. 역양에 팽조의 선실이 있다. 선조들은: 팽조의 사당에서 바람과 비를 부탁하는 기도를 하면, 언제나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다. 항시 두 범이 사당 왼쪽과 오른쪽에 있다. 오늘날 사당은 사라졌으나, 두 범의 흔적은 남아 있다.


  師門者,嘯父弟子也。能使火。食桃葩。為孔甲龍師。孔甲不能修其心意,殺而埋之外野。一旦,風雨迎之。山木皆燔。孔甲祠而禱之,未還而死。

  사문은, 소보의 제자다. 불을 부릴 수 있다. 복숭아 꽃을 먹는다. 하나라 공갑 시대에 용을 기르는 관리가 되었다. 공갑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문을 죽여 성 밖 들판에 묻었다. 바람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산과 나무가 모두 불살랐다. 공갑이 사당에서 기도를 하다,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前周葛由,蜀羌人也。周成王時,好刻木作羊賣之。一旦,乘木羊入蜀中,蜀中王侯貴人追之,上綏山。綏山多桃,在峨眉山西南,高無極也。隨之者不復還,皆得仙道。故里諺曰:「得綏山一桃,雖不能仙,亦足以豪。」山下立祠數十處。

  사라진 주나라의 갈유는, 촉강 사람이다. 주나라 성왕 시대에, 나무를 깍아 양을 만들어 파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날, 나무로 만든 양을 타고 촉으로 들어갔는데, 촉의 왕족과 귀족들이 그를 따라, 수산을 올랐다. 수산은 복숭아나무가 많고, 아미산 서남쪽에 있으며, 높이가 끝이 없다. 따라갔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지 않고, 모두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속담에 따르면: 「수산에서 복숭아나무를 하나 얻어서는, 신선이 될 수 없지만, 호걸이 되기에는 충분하다.」산 아래 수십 곳의 사당을 세웠다.


  崔文子者,泰山人也。學仙於王子喬。子喬化為白蜺,而持藥與文子。文子驚怪,引戈擊蜺,中之,因墮其藥。俯而視之,王子喬之屍也。置之室中,覆以敝筐。須臾,化為大鳥。開而視之,翻然飛去。

  최문자는, 태산 사람이다. 왕자교에게 신선술을 배웠다. 왕자교는 흰 예로 변하여, 최문자에게 손에 쥔 약을 주려하였다. 최문자는 놀라고 괴이쩍게 여기며, 창으로 예를 내리쳐, 맞추었고, 그 약을 떨어트렸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왕교자의 시체였다. 방 안으로 들여, 헌 광주리로 덮었다. 잠시 후, 큰 새로 변하였다. 광주리를 열어젖히고 보니, 날개를 푸덕이며 날아갔다.


  冠先,宋人也。釣魚為業。居睢水旁,百餘年,得魚,或放,或賣,或自食之。常冠帶,好種荔,食其葩實焉。宋景公問其道,不告,即殺之。後數十年,踞宋城門上,鼓琴,數十日乃去。宋人家家奉祠之。

  관선은, 송나라 사람이다. 물고기를 낚는 일이 직업이다. 수수 강가에 사는게, 백 년 남짓인데, 물고기를 낚으면, 놓아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직접 먹기도 하였다. 항시 관면을 쓰고 신대를 둘렀으며, 여지 심는 것을 좋아하고, 그 꽃과 열매를 먹었다. 송나라 경공이 그에게 도를 물었는데, 알려주지 않자, 죽였다. 수십 년 후, 송나라 성문 위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연주하였으며, 수십 일이 지나고 떠났다. 송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琴高,趙人也。能鼓琴。為宋康王舍人。行涓彭之術,浮游冀州、涿郡間二百餘年。後辭入涿水中,取龍子,與諸弟子期之。曰:「明日皆潔齋候。」於水旁設祠屋。果乘赤鯉魚出,來坐祠中。且有萬人觀之。留一月,乃復入水去。

  금고는, 조나라 사람이다.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다. 송나라 강왕의 식객이 되었다. 연자와 팽조의 술법을 부려, 기주와 탁주 사이를 이백 년동안 둥둥 떠다녔다. 나중에 탁수 안으로 들어가, 용의 자식을 잡아는다고, 여러 제자들에게 기약하며 말했다. 말하길:「내일 모두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고 기다려라 」물가에 사당을 세워라. 정말로 붉은 잉어를 타고 나타났고, 사당에 들어와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 한 달을 머물다, 다시 물로 들어가 버렸다.


  陶安公者,六安鑄冶師也。數行火。火一朝散上,紫色沖天。公伏冶下求哀。須臾。朱雀止冶上,曰:「安公!安公!冶與天通。七月七日,迎汝以赤龍。」至時,安公騎之,從東南去。城邑數萬人,豫祖安送之,皆辭訣。

  도안공은, 육안의 대장장이다. 자주 불을 다뤘다. 어느 날 불이 흩어져 오르며, 자주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풀무 아래 공손히 업드려 간곡히 빌었다. 잠시 후. 주작이 풀무 위에 내려앉아, 말했다:「도안공아!도안공아!풀무와 하늘이 통하였으니. 칠월 칠일에, 적룡을 따라오면 너를 맞이하겠다.」때가 이르고, 도안공은 말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 적룡을 따라갔다.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길제사를 지내 가시는 길 편하게 가시라고, 작별하는 인사의 말을 한다.


  有人入焦山七年,老君與之木鑽,使穿一盤石,石厚五尺,曰:「此石穿;當得道。」積四十年,石穿,遂得神仙丹訣。

  초산에 칠 년동안 들어가 있던 어떤 사람에게, 노군이 나무 송곳으로, 너럭바위 하나를 뚫게 했는데, 바위의 두께가 오척이었다, 말씀하길:「이 돌을 뚫으면;득도할 것이다.」사십 년이 지나자, 바위가 뚫렸고, 마침내 신선단의 비결을 얻었다.


  魯少千者,山陽人也。漢文帝嘗微服懷金過之,欲問其道。少千拄金杖,執象牙扇,出應門。

  노소천은, 산양 사람이다. 한나라 문제는 일찍이 남루한 옷에 금을 품고 찾아가, 그에게 도를 물었다. 노소천은 금지팡이를 짚고, 상아 부채를 들며, 집안에서 나와 답했다.


  淮南王安,好道術。設廚宰以候賓客。正月上午,有八老公詣門求見。門吏曰王,王使吏自以意難之,曰:「吾王好長生,先生無駐衰之術,未敢以聞。」公知不見,乃更形為八童子,色如桃花。王便見之,盛禮設樂,以享八公。援琴而弦,歌曰:「明明上天,照四海兮。知我好道,公來下兮。公將與余,生羽毛兮。升騰青雲,蹈梁甫兮。觀見三光,遇北斗兮。驅乘風雲,使玉女兮。」今所謂淮南操是也。

  회남왕 안은, 도술을 좋아했다. 주방에 요리사를 두고 손님을 대접했다. 정월 사오일, 여덟 명의 노공들이 궁궐로 찾아와 알현을 요청했다. 문지기는 왕이 말하길, 왕께서 나에게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태도를 정하라 하셨고, 그러하니:「우리 왕께서는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시나, 선생들께서는 늙는 것을 멈추게하는 술법이 없으니, 허락치 못하겠소이다.」노공들은 만나지 못하게 됨을 알자, 이내 여덟 명의 동자로 변하였는데, 얼굴빛이 복숭아 꽃 같더라. 왕을 곧 만나고, 극진한 예를 갖추며 연회를 베풀어, 여덟 명의 노공을 대접하였다.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아주 밝은 하느님이, 온 세상을 비추는구나. 내가 도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노공들을 보내셨네. 노공들이 장차 나와 함께, 깃털이 나겠구나. 푸른 구름에 올라, 양보산을 밟는구나」현재 불리는 회남조가 이것이다.


  劉根,字君安。京兆長安人也。漢成帝時,入嵩山學道。遇異人授以秘訣,遂得仙。能召鬼。潁川太守史祈以為妖,遣人召根,欲戮之。至府,語曰:「君能使人見鬼,可使形見。不者,加戮。」根曰:「甚易。」借府君前筆硯書符,因以叩几;須臾,忽見五六鬼,縛二囚於祈前。祈熟視,乃父母也。向根叩頭曰:「小兒無狀,分當萬死。」叱祈曰:「汝子孫不能光榮先祖,何得罪神仙,乃累親如此。」祈哀驚悲泣,頓首請罪。根默然忽去,不知所之。자손이 머리를 숙여 제사를 지내

  유근은, 자가 군안이다. 한나라 수도인 장안 사람이다. 한나라 성제 시대에, 숭산으로 도를 배우러 들어갔다. 이인을 만나 비결을 전수 받고,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귀신을 부를 수 있었다. 영천 태수 사기는 요사하다 여기며, 사람을 보내 유근을 불러, 죽이려 하였다. 관청에 이르자, 말했다:「자네가 사람들에게 귀신을 볼 수 있게 한다니, 귀신의 형체를 보여주어라. 그러지 못하면, 죽음을 내리겠다.」유근이 말하길:「아주 쉽지요」하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붓과 벼루를 빌려 부적을 써서, 책상에 고이 붙였다;잠시 후, 홀연히 대여섯 귀신이 나타났고, 사기 앞에 두 귀신이 묶여 있었다. 사기가 눈여겨 자세히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더라. 유근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하길:「어린 아이가 버릇이 없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사기를 꾸짖으며 말하길:「너는 자손이란 녀석이 조상을 영광스럽게 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신선에게 죄를 지어, 이 같이 부모에게 폐를 끼치냐.」사기는 몹시 놀라 슬피 울며,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었다. 유근은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다 홀연히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漢明帝時,尚書郎河東王喬,為鄴令。喬有神術,每月朔,嘗自縣詣台。帝怪其來數,而不見車騎;密令太史候望之。言其臨至時,輒有雙鳧,從東南飛來。因伏伺,見鳧,舉羅張之,但得一雙舄。使尚書識視,四年中所賜尚書官屬履也。

  한나라 명제 시대에, 상서랑인 하동 사람 왕교는, 업의 관리가 되었다. 왕교는 신기한 술법을 부렸는데, 매월 초하루에, 업의 마을에서부터 누대까지 와 제사를 지냈다. 명제를 그가 자주 오는데, 수레와 마차를 보지 못해 괴이하게 여겼다;태사에게 명해 몰래 높은 곳에 올라 살펴보라고 했다. 태사는 왕교가 도착할 때 내려가보면, 문득 한 쌍의 오리만, 동남쪽으로부터 날아왔다고 말했다. 엎드려 엿보니, 오리가 보여서, 몸을 일으켜 그물을 던져 잡았더니, 신발 한 쌍만 있더라. 상서에게 알아보라 이르니, 명제 사 년에 상서 관리에게 하사한 신발이더라.


  薊子訓,不知所從來。東漢時,到洛陽見公卿,數十處,皆持斗酒片脯候之。曰:「遠來無所有,示致微意。」坐上數百人,飲啖終日不盡。去後,皆見白雲起,從旦至暮。時有百歲公說:小兒時見訓賣藥會稽市,顏色如此。訓不樂住洛,遂遁去。正始中,有人於長安東霸城,見與一老公共摩挲銅人,相謂曰:「適見鑄此,已近矣。」見者呼之曰:「薊先生小住。」並行應之。視若遲徐,而走馬不及。

  계자훈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동한 시대에, 낙양에서 고위 고관을 만난 일이, 수십 곳인데, 모두 술동이와 말린 고기를 들고 기다리더라. 말하길:「먼 곳에서 와 가진 것이 하나 없으니, 작은 성의를 보이고자 합니다.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술동이와 말린 고기를 온 종일 끊임없이 마시고 먹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모두 흰 구름이 생기는 것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았다. 그때 백 살된 노인이 설명했다: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 계자훈이 회계의 시장에서 약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 얼굴빛이 지금과 같았다. 낙양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북위 문선제 정시년에, 어떤 사람이 장안 동쪽 패성에서, 한 노인이 동상을 공손하게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공손하게 말했다:「여기서 부어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벌써 오백 년이 지났구나.」계자훈을 보고 부르며 말하기:「계선생님 잠시만 기다리세요」하니 알겠다고 하여 나란히 갔다.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였으나, 달리는 말이 따라잡지 못했다.


  漢陰生者,長安渭橋下乞小兒也。常於市中丐,市中厭苦,以糞灑之。旋復在市中乞,衣不見污如故。長吏知之,械收繫,著桎梏,而續在市乞。又械欲殺之,乃去。灑之者家,屋室自壞,殺十數人。長安中謠言曰:「見乞兒與美酒,以免破屋之咎。」

  한나라 태생 음생은, 장안 위수의 다리 아래에서 구걸을 하던 어린 아이 였다. 항상 시장 안에서 구걸을 하였고, 시장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해, 똥을 뿌렸다. 오래지 않아 다시 시장에서 구걸을 하면, 옷은 더럽지 않고 전과 같았다. 고을 현령이 이를 알고, 형틀에 묶고, 차꼬와 수갑을 채웠는데도, 계속해서 시장에서 구걸을 하였다. 또 형틀에 묶어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내 사라졌다. 똥을 뿌렸던 사람의 가족들은, 집이 절로 무너져, 열댓 명이 죽었다. 장안에 난 뜬 소문에 의하면:「구걸하는 아이를 보면 맛좋은 술을 베풀어라, 집이 허물어지는 일을 피하려면. 」


  谷城鄉平常生,不如何所人也。數死而復生。時人為不然。後大水出,所害非一,而平輒在缺門山上大呼言:「平常生在此。」云:「復雨,水五日必止。」止,則上山求祠之。但見平衣杖革帶。後數十年,復為華陰市門卒。

  곡성 시골 마을의 평상생은,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여러 번 축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중에 큰 홍수가 나, 여러 곳이 피해를 입었고, 평상생이 갑자기 결문산 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팽상생은 이곳에 있다.」말하며:「다시 비가 내려도, 홍수는 오 일내로 반드시 멈춘다.」머물렀고, 산에 올라 사당을 찾으려 하였다. 단지 평상생의 옷과 지팡이와 가죽띠만 보였다. 수십 년이 지나고, 돌아와서는 화음시의 문지기가 되었다.


  左慈,字符(元)放,廬江人也。少有神通。嘗在曹公座,公笑顧眾賓曰:「今日高會,珍羞略備。所少者,吳松江鱸魚為膾。」放曰:「此易得耳。」因求銅盤貯水,以竹竿餌釣於盤中,須臾,引一鱸魚出。公大拊掌,會者皆驚。公曰:「一魚不周坐客,得兩為佳。」放乃復餌釣之。須臾,引出,皆三尺餘,生鮮可愛。公便自前膾之,周賜座席。公曰:「今既得鱸,恨無蜀中生薑耳。」放曰:「亦可得也。」公恐其近道買,因曰:「吾昔使人至蜀買錦,可敕人告吾使;使增市二端。」人去,須臾還,得生薑。又云:「於錦肆下見公使,已敕增市二端。」後經歲餘,公使還,果增二端。問之,云:「昔某月某日,見人於肆下,以公敕敕之。」後公出近郊,士人從者百數,放乃賚酒一罌,脯一片,手自傾罌,行酒百官,百官莫不醉飽。公怪,使尋其故。行視沽酒家,昨悉亡其酒脯矣。公怒,陰欲殺放。放在公座,將收之,卻入壁中,霍然不見。乃募取之。或見於市,欲捕之,而市人皆放同形,莫知誰是。後人遇放於陽城山頭,因復逐之。遂走入羊群。公知不可得,乃令就羊中告之,曰:「曹公不復相殺,本試君術耳。今既驗,但欲與相見。」忽有一老羝,屈前兩膝,人立而言曰:「遽如許。」人即云:「此羊是。」競往赴之。而群羊數百,皆變為羝,並屈前膝,人立,云:「遽如許。」於是遂莫知所取焉。老子曰:「吾之所以為大患者,以吾有身也;及吾無身,吾有何患哉。」若老子之儔,可謂能無身矣。豈不遠哉也。

  좌자의, 자는 원방이며, 여강 사람이다. 어릴적부터 특출난 재간이 있었다. 일찍이 조조가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 있었는데, 조조가 여러 손님들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길:「지금 성대한 모임에, 맛 좋은 음식을 간단하게 차렸습니다. 아쉽게도, 오나라 송강의 농어로 만든 회입니다.」좌자가 말했다:「이것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하며 구리쟁반을 가져와 물을 붙고, 쟁반에 미끼를 꿴 대나무 낚시대를 드리웠고. 잠시 후, 농어 한 마리를 낚았다. 조조는 크게 손뼉을 쳤고, 모여있던 사람들 모두 놀랐다. 조조가:「한 마리로는 모두 먹을 수 없으니, 두 마리를 더 잡으면 좋겠소이다.」하자 좌자는 이내 미끼를 꿰고 낚시를 하였다. 금세, 잡아냈고, 모두 삼척 남짓이라, 물고기가 먹음직스러웠다. 조조는 스스로 회를 떠,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조조가 말하길:「지금은 농어를 잡았으나, 촉나라의 생강이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좌자가 말하길:「그또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조는 아무래도 그가 지름길로가 생강을 사온다 여겼기 때문에, 말했다:「내가 얼마 전에 사람을 시켜 촉나라 비단을 사오게 하였는데, 나의 명령을 받는 사람에게 알려주게나; 시장에서 비단 두 단을 더 사오라.」 좌자는 사람을 보냈고, 잠시 후 돌아올 때는, 생강을 가져왔다. 그러며 말하길:「비단 가게에서 주공이 보낸 사람을 만났는데, 이미 비단 두 단을 더 사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중에 겨울이 지나고, 조조의 심부름꾼이 돌아왔는데, 비단 두 단을 더 사왔다. 조조가 묻자, 답하길:「옛날 몇월 며칠에, 비단 가게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주공의 명령을 전해주었습니다. 」 훗날 조조가 도시 변두리로 나갈때, 수 백의 선비들이 따랐고, 좌자는 술 한 병과, 말린 고기 한근을 가져와, 손수 술을 따라며, 모든이에게 술을 권했고, 모두 술에 취하고 배부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조조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찾았다. 술을 파는 술집에 다녀보니, 어제 술집의 술과 고기가 모조리 사라졌더라. 조조는 성을 내며, 신하들에게 좌자를 죽이라 하였다. 좌자는 조조의 연회 자리에 있다가, 장수들이 잡으려하자, 물러나며 벽 속으로 들어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에 사람을 뽑아 추적하였다. 시작에서 목격되어, 체포하고자 하였으나, 시장 사람들이 모두 좌자와 같은 모습이라,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양성산 꼭대기에서 좌자를 만나을 때, 다시 추적하였다. 양떼 속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양떼에게 알렸다, 말하길:「주군께서 더이상 죽이지 않겠다고 하셨고, 원래는 선생의 도술을 시험하려 했을 뿐이오. 이제 시험이 끝났고, 서로 만나고자 하시오.」 돌연 늙은 숫양 하나가, 두 앞다리를 굽히고, 사람처럼 일어서며 말했다: 「바쁘니 그럽시다.」 사람들이 말하길:「이 양이구나.」 하며 나란히 다가갔다. 그러나 무리의 수 백마리의 양들이, 모두 변해 숫양이 되었고, 나란히 앞다리를 구부리며, 사람처럼 일어섰다, 말하길:「바쁘니 그럽시다.」하니 어느 양을 쫓아서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자는 말했다:「나의 큰 근심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없었더라면, 내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노자와 필적하는 사람은, 몸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어긋나지 않겠는가.


  孫策欲渡江襲許,與于吉俱行。時大旱,所在熇厲。策催諸將士,使速引船,或身自早出督切。見將吏多在吉許。策因此激怒,言:「我為不如吉耶?而先趨附之。」便使收吉至,呵問之曰:「天旱不雨,道路艱澀,不時得過。故自早出,而卿不同憂慼,安坐船中,作鬼物態,敗吾部伍。今當相除。」令人縛置地上暴之,使請雨。若能感天,日中雨者,當原赦;不爾,行誅。俄而雲氣上蒸,膚寸而合;比至日中,大雨總至,谿澗盈溢。將士喜悅,以為吉必見原,並往慶慰。策遂殺之。將士哀惜,藏其屍。天夜,忽更興雲覆之。明旦往視,不知所在。策既殺吉,每獨坐,彷彿見吉在左右。意深惡之,頗有失常。後治瘡方差,而引鏡自照,見吉在鏡中,顧而弗見。如是再三。撲鏡大叫,瘡皆崩裂,須臾而死。(吉,瑯琊人,道士。)

  손택이 강을 건너 허창을 엄습하려고, 우길과 함께 갔다. 당시에 큰 가뭄이와, 불볕더위가 계속 되었다. 손책은 모든 군사들을 재촉하고 독촉하며, 빨리 배를 끌어오게 하였고, 아침 일찍 나가 직접 감독하며 밀어붙였다. 독촉하다 이때 격노하여, 말하길:「내가 우길만 못하느냐? 그래서 먼저 아부하는 것이구나.」하며 바로 우길을 잡아오게 하였고, 질책하며 물었다:「하늘이 가물어 비가 안내려, 길이 험해 다니가 어렵워, 지나갈 수 없는 시기이네. 그래서 직접 나와보니, 선생은 함께 근심하지 않고, 배 안에 편히 앉아, 도깨비 모습을 하여, 내 군대의 일을 못하게 하니. 지금 당장 그대를 숙청하여 군기를 바로잡아야겠소.」사람들에게 우길을 땅바닥에 묶어 햇빛에 말려, 비가 내리게 시켰다. 만약 하늘이 감동하여, 오늘 안으로 비가 내리면, 당연히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갑자기 엷게 흐르는 구름이 김 오르듯 올랐고, 얼마 안되어 합쳐졌다; 한낮에 이르자, 큰 비가 세차게 내렸고, 계곡물이 넘쳐 흘렀다. 군사들이 기뻐하며, 우길이 반드시 풀려날 것으로 여기고, 모두 다가가 축하하고 위로하였다. 허나 손책은 우길을 죽였다. 군사들은 안타까워하며, 우길의 시체를 묻었다. 깊은 밤, 돌연히 구름이 일어 우길의 시체를 덮었다. 다음 날 아침 가보니, 시체가 어디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손책은 우길을 죽이고 나서,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마치 주위에서 우길을 보는 것 같았다. 생각컨대 깊게 병들어, 몹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나중에 부르럼을 치료하여 병이 낫았으나, 거울을 들어 자기를 비추었고, 거울 안에 우길이 보여,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 반복되었다. 거울을 때려 눕히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부스럼이 모두 터지고 갈라져, 금세 죽었다. (우길은, 낭야 사람이며, 도사이다.)


  介琰者,不知何許人也。住建安方山,從其師白羊公杜受玄一無為之道,能變化隱形。嘗往來東海,暫過秣陵,與吳主相聞。吳主留琰,乃為琰架宮廟。一日之中,數遣人往問起居。琰或為童子,或為老翁,無所食啖,不受餉遺。吳主欲學其術,琰以吳主多內御,積月不教。吳主怒,敕縛琰,著甲士引弩射之。弩發,而繩縛猶存不知琰之所之。

  개염은, 어느 곳의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건안 방산에 살며, 그의 스승 백양공 두필을 따라다니며 현일과 무위의 도를 배웠고, 변신도 하고 모습을 감출 수도 있다. 이전에 동해에 갈때, 말릉을 잠시 지나다, 오나라 임금을 만났다. 오나라 임금은 개염에게 머물게 하고, 개염을 위해 궁에 사당을 만들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개염은 사나아이로 변해 있거나, 할아버지로 변했있었고,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음식을 받지도 않았다. 오나라 임금은 그 술법을 배우고 싶었으나, 개염은 오나라 임금이 궁녀가 많다하여, 여러 달동안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나라 임금은 성내며, 명을 내려 개염을 포박하였고, 갑옷 입은 군사들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 그러나 포박했던 밧줄만 남아 개염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吳時有徐光者,嘗行術於市里:從人乞瓜,其主勿與,便從索瓣,杖地種之;俄而瓜生,蔓延,生花,成實;乃取食之,因賜觀者。鬻者反視所出賣,皆亡耗矣。凡言水旱甚驗。過大將軍孫綝門,褰衣而趨,左右唾踐。或問其故。答曰:「流血臭腥不可耐。」綝聞惡而殺之。斬其首,無血。及綝廢幼帝,更立景帝,將拜陵,上車,有大風蕩綝車,車為之傾。見光在松樹上拊手指揮嗤笑之,綝問侍從,皆無見者。俄而景帝誅綝。

  오나라 시대에 서광이라는 사람이 었었는데, 일찍이 도심에서 도술을 부리며 다녔다: 오이장수에게 오이를 구걸하였는데, 오이장수가 도와주지 않자, 그길로 오이의 씨를 찾아, 지팡이로 땅을 파 씨를 심었다; 갑자기 싹이나고, 덩굴이 널리 퍼지며, 꽃이 폈고, 열매가 열렸다; 열매를 따서 먹으며, 구경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이장수가 뒤돌아보니 팔려던 오이가, 모두 사라졌다. 대체로 수해와 가뭄을 예측하는게 아주 영험했다. 서광은 대장군 손침의 집을 지나칠때는, 옷을 걷어올리고 빨리 걸으며, 양옆으로 침을 뱉고 발로 밟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답하길:「피비린내를 참을 수 없어서다.」손침이 그 이야길 듣고 증오하며 죽였다. 서광의 머리를 잘랐으나, 피가 나지 않았다. 손침이 어린 임금 손량을 폐위하고, 손휴를 다시 경제 옹립하였다, 한편 능묘에 참배하려고, 수레에 올랐는데, 큰 바람이 불어 손침의 수레를 흔들었고, 수레가 쓰러졌다. 소나무 위에서 박수 치고 손으로 가르키며 비웃는 서광을 보고, 손침이 시종에게 서광을 보았냐고 묻자, 모두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얼마후 경제가 손침을 죽였다.


  葛玄,字孝先,從左元放受九丹液仙經。與客對食,言及變化之事,客曰:「事畢,先生作一事特戲者。」玄曰:「君得無即欲有所見乎?」乃嗽口中飯,盡變大蜂數百,皆集客身,亦不螫人。久之,玄乃張口,蜂皆飛入,玄嚼食之,是故飯也。又指蝦蟆及諸行蟲燕雀之屬,使舞,應節如人。冬為客設生瓜棗,夏致冰雪。又以數十錢使人散投井中,玄以一器於井上呼之,錢一一飛從井出。為客設酒,無人傳杯,杯自至前,如或不盡,杯不去也。嘗與吳主坐樓上,見作請雨土人,帝曰:「百姓思雨,寧可得乎?」玄曰:「雨易得耳!」乃書符著社中,頃刻間,天地晦冥,大雨流淹。帝曰:「水中有魚乎?」玄復書符擲水中,須臾,有大魚數百頭。使人治之。

  갈현의, 자는 효선이고, 좌자를 따라다니며 구단액선경을 전수 받았다. 손님과 마주보며 음식을 먹다가, 변화한 일에 대해 말했더니, 손님이 말하길:「일이 끝나고, 선생께서 하나의 특이한 놀이를 만들어주시지요. 」갈현이 말하길:「자네가 뭔가를 보고 싶구만?」하며 입 안의 밥을 뱉자, 모두 변해 수백의 큰 벌로 변했고, 전부 손님의 몸으로 모였으나, 벌에 쏘인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갈현이 입을 벌리자, 벌들이 모두 날아 들었고, 갈현은 씹어 먹었는데, 뱉었던 밥이었기 때문다. 또한 두꺼비와 벌레들과 제비와 참새의 무리들을, 춤을 추게 하자, 사람처럼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겨울에는 오이와 대추를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여름에는 얼음과 눈을 내주었다. 


  吳猛,濮陽人。仕吳,為西安令,因家分寧。性至孝。遇至人丁義,授以神方;又得秘法神符,道術大行。嘗見大風,書符擲屋上,有青烏銜去。風即止。或問其故。曰:「南湖有舟,遇此風,道士求救。」驗之果然。西安令於慶死,已三日,猛曰:「數未盡,當訴之於天。」遂臥屍旁,數日,與令俱起。後將弟子回豫章,江水大急,人不得渡;猛乃以手中白羽扇畫江水,橫流,遂成陸路,徐行而過,過訖,水復。觀者駭異。嘗守潯陽,參軍周家有狂風暴起,猛即書符擲屋上,須臾風靜。

  

  園客者,濟陰人也。貌美,邑人多欲妻之,客終不娶。嘗種五色香草,積數十年,服食其實。忽有五色神蛾,止香草之上,客收而薦之以布,生桑蠶焉。至蠶時,有神女夜至,助客養蠶,亦以香草食蠶。得繭百二十頭,大如甕,每一繭繅六七日乃盡。繅訖,女與客俱仙去,莫知所如。

  

  漢,董永,千乘人。少偏孤,與父居肆,力田畝,鹿車載自隨。父亡,無以葬,乃自賣為奴,以供喪事。主人知其賢,與錢一萬,遣之。永行,三年喪畢,欲還主人,供其奴職。道逢一婦人曰:「願為子妻。」遂與之俱。主人謂永曰:「以錢與君矣。」永曰:「蒙君之惠,父喪收藏,永雖小人,必欲服勤致力,以報厚德。」主曰:「婦人何能?」永曰:「能織。」主曰:「必爾者,但令君婦為我織縑百疋。」於是永妻為主人家織,十日而畢。女出門,謂永曰:「我,天之織女也。緣君至孝,天帝令我助君償債耳。」語畢,凌空而去,不知所在。

  

  初,鉤弋夫人有罪,以譴死,既殯,屍不臭,而香聞十餘里。因葬雲陵,上哀悼之。又疑其非常人,乃發冢開視,棺空無屍,惟雙履存一云。昭帝即位,改葬之,棺空無屍,獨絲履存焉。

  

  漢時有杜蘭香者,自稱南康人氏。以建業四年春,數詣張傳。傳年十七,望見其車在門外,婢通言:「阿母所生,遺授配君,可不敬從?」傳,先名改碩,碩呼女前,視,可十六七,說事邈然久遠。有婢子二人:大者萱支,小者松支。鈿車青牛上,飲食皆備。作詩曰:「阿母處靈岳,時游雲霄際。眾女侍羽儀,不出墉宮外。飄輪送我來,豈復恥塵穢。從我與福俱,嫌我與禍會。」至其年八月旦,復來,作詩曰:「逍遙雲漢間,呼吸發九嶷。流汝不稽路,弱水何不之。」出薯蕷子三枚,大如雞子,云:「食此,令君不畏風波,辟寒溫。」碩食二枚,欲留一,不肯,令碩食盡。言:「本為君作妻,情無曠遠,以年命未合,且小乖,大歲東方卯,當還求君。」蘭香降時,碩問禱祀何如。香曰:「消魔自可愈疾,淫祀無益。」香以藥為消魔。

  

  魏濟北郡從事掾弦超,字義起,以嘉平中夜獨宿,夢有神女來從之。自稱:「天上玉女,東郡人,姓成公,字知瓊,早失父母,天帝哀其孤苦,遣令下嫁從夫。」超當其夢也,精爽感悟,嘉其美異,非常人之容,覺寤欽想,若存若亡,如此三四夕。一旦,顯然來游,駕輜軿車,從八婢,服綾羅綺繡之衣,姿顏容體,狀若飛仙,自言年七十,視之如十五六女。車上有壺榼,青白琉璃五具。食啖奇異,饌具醴酒,與超共飲食。謂超曰:「我,天上玉女,見遣下嫁,故來從君,不謂君德。宿時感運,宜為夫婦。不能有益,亦不能為損。然往來常可得駕輕車,乘肥馬,飲食常可得遠味,異膳,繒素常可得充用不乏。然我神人,不為君生子,亦無妒忌之性,不害君婚姻之義。遂為夫婦。」贈詩一篇,其文曰:「飄浮勃逢敖,曹雲石滋芝。一英不須潤,至德與時期。神仙豈虛感,應運來相之。納我榮五族,逆我致禍菑。」此其詩之大較,其文二百餘言,不能盡錄。兼注易七卷,有卦,有象,以彖為屬。故其文言既有義理,又可以占吉凶,猶揚子之太玄,薛氏之中經也。超皆能通其旨意,用之占候,作夫婦經。七八年,父母為超娶婦之後,分日而燕,分夕而寢,夜來晨去,倏忽若飛,唯超見之,他人不見。雖居闇室,輒聞人聲,常見蹤跡,然不睹其形。後人怪問,漏泄其事;玉女遂求去。云:「我,神人也。雖與君交,不願人知,而君性疏漏,我今本末已露,不復與君通接。積年交結,恩義不輕;一旦分別,豈不愴恨?勢不得不爾。各自努力!」又呼侍御下酒,飲啖,發簏,取織成裙衫兩副遺超。又贈詩一首,把臂告辭,涕泣流離,肅然升車,去若飛迅。超憂感積日,殆至委頓。去後五年。超奉郡使至洛,到濟北魚山下,陌上西行,遙望曲道頭有一馬車,似知瓊。驅馳至前,果是也。遂披帷相見,悲喜交切。控左援綏,同乘至洛。遂為室家,克復舊好。至太康中,猶在。但不日日往來,每於三月三日,五月五日,七月七日,九月九日旦,十五日輒下,往來經宿而去。張茂先為之作神女賦。

부록(附錄) 번역

산해경 2018. 2. 28. 00:00

山海經敘錄

西漢劉秀上山海經表曰:侍中奉車都尉光祿大夫臣秀領校、祕書言校、祕書太常屬臣望所校山海經凡三十二篇,今定為一十八篇,已定。山海經者,出於唐虞之際。昔洪水洋溢,漫衍中國,民人失據,

 䧢(崎嶇)於丘陵,巢於樹木。鯀既無功,而帝堯使禹繼之。禹乘四載,隨山(刊)木,定高山大川。益(珂案:益字何焯校蓋)與伯翳主驅禽獸,命山川,類草木,別水土。四嶽佐之,以周四方,逮人跡之所希至,及舟輿之所罕到。內別五方之山,外分八方之海,紀其珍寶奇物,異方之所生,水土草木禽獸昆蟲麟鳳之所止,禎祥之所隱,及四海之外,絕域之國,殊類之人。禹別九州,任土作貢;而益等類物善惡,著山海經。皆聖賢之遺事,古文之著明者也。其事質明有信。孝武皇帝時嘗有獻異鳥者,食之百物,所不(肯)食。東方朔見之,言其鳥名,又言其所當食,如朔言。問朔何以知之,即山海經所出也。孝宣帝時,擊磻石於上郡,陷得石室,其中有反縛盜械人。時臣秀父向為諫議大夫,言此貳負之臣也。詔問何以知之,亦以山海經對。其文曰:「貳負殺窫窳,帝乃梏之疏屬之山,桎其右足,反縛兩手。」上大驚。朝士由是多奇山海經者,文學大儒皆讀學,以為奇可以考禎祥變怪之物,見遠國異人之謠俗。故易曰:「言天下之至賾而不可亂也。」博物之君子,其可不惑焉。臣秀昧死謹上。

東晉記室參軍郭璞注山海經敘曰:世之覽山海經者,皆以其閎誕迂誇,多奇怪俶儻之言,莫不疑焉。嘗試論之曰,莊生有云:「人之所知,莫若其所不知。」吾於山海經見之矣。夫以宇宙之寥廓,群生之紛●(紜),陰陽之煦蒸,萬殊之區分,精氣渾淆,自相濆薄,遊魂靈怪,觸象而構,流形於山川,麗狀於木石者,惡可勝言乎?然則總其所以●(乖),鼓之於一響;成其所以變,混之於一象。世之所謂異,未知其所以異;世之所謂不異,未知其所以不異。何者?物不自異,待我而後異,異果在我,非物異也。故胡人見布而疑黂,越人見罽而駭毳。夫翫所(珂案:夫翫所三字何焯校作蓋信其)習見而奇所希聞,此人情之常蔽也。今略舉可以明之者:陽火出於冰水,陰鼠生於炎山,而俗之論者,莫之或怪;及談山海經所載,而咸怪之: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不怪所可怪,則幾於無怪矣;怪所不可怪,則未始有可怪也。夫能然所不可,不可所不可然,則理無不然矣。案汲郡竹書及穆天子傳:穆王西征見西王母,執璧帛之好,獻錦組之屬。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賦詩往來,辭義可觀。遂襲昆侖之丘,遊軒轅之宮,眺鍾山之嶺,玩帝者之寶,勒石王母之山,紀跡玄圃之上。乃取其嘉木豔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金膏燭銀之寶,歸而殖養之於中國。穆王駕八駿之乘,右服盜驪,左驂騄耳,造父為御,奔戎為右,萬里長騖,以周歷四荒,名山大川,靡不登濟。東升大人之堂,西燕王母之廬,南轢黿鼉之梁,北躡積羽之衢。窮歡極娛,然後旋歸。案史記說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使造父御之,以西巡狩,見西王母,樂而忘歸,亦與竹書同。左傳曰:「穆王欲肆其心,使天下皆有車轍馬跡焉。」竹書所載,則是其事也。而譙周之徒,足為通識瑰儒,而雅不平此,驗之史考,以著其妄。司馬遷敘大宛傳亦云:「自張騫使大夏之後,窮河源,惡睹所謂昆侖者乎?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余不敢言也。」不亦悲乎!若竹書不潛出於千載,以作徵於今日者,則山海之言,其幾乎廢矣。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劉子政辨盜械之尸,王頎訪兩面之客,海民獲長臂之衣:精驗潛效,絕代縣符。於戲!群惑者其可以少寤乎?是故聖皇原化以極變,象物以應怪,鑒無滯賾,曲盡幽情,神焉廋哉!神焉廋哉!蓋此書跨世七代,歷載三千,雖暫顯於漢而尋亦寢廢。其山川名號,所在多有舛謬,與今不同,師訓莫傳,遂將湮泯。道之所存,俗之喪,悲夫!余有懼焉,故為之創傳,疏其壅閡,闢其茀蕪,領其玄致,標其洞涉。庶幾令逸文不墜於世,奇言不絕於今,夏后之跡,靡於將來;八荒之事,有聞於後裔,不亦可乎。夫蘙薈之翔,叵以論垂天之凌;涔之遊,無以知絳虯之騰;鈞天之庭,豈伶人之所躡;無航之津,豈蒼兕之所涉:非天下之至通,難與言山海之義矣。嗚呼!達觀博物之客,其鑒之哉。

  山海經目錄總十八卷 本三萬九百十九字,注二萬三百五十字,總五萬一千二百六十九字。郝懿行云:此玉海所校也,今校經三萬八百二十五字,注二萬三百八十三字,總五萬一千二百八字。

    南山經第一 本三千五百四十七字,注二千一百七字。郝懿行云:此已下明藏經本所校也,今校經一千八百六十一字,注一千二百四十六字。

    西山經第二 本五千六百七十二字,注三千二百二字。今校經四千六百四十四字,注三千七百二十六字。

    北山經第三 本五千七百四十六字,注二千三百八十二字。今校經四千二百四十一字,注一千六百三十九字。

    東山經第四 本二千四十字,注三百七十五字。今校經二千一百三字,注四百五十五字。

    中山經第五 本四千七百一十八字,注三千四百八十五字。今校經八千四百一十六字,注三千五百八十二字。

    右五臧山經五篇,經二萬一千二百六十五字,注一萬六百六十一字,總三萬一千九百二十六字。

    海外南經第六 本五百一十一字,注六百二十二字。今校經五百七十五字,注六百八十五字。

    海外西經第七 本五百三十七字,注四百五十二字。今校經五百五十九字,注四百五十八字。

    海外北經第八 本五百八十四字,注四百九十三字。今校經六百一字,注五百二十四字。

    海外東經第九 本四百四十二字,注五百九十五字。今校經四百五十七字,注五百九十六字。

    海內南經第十 本三百六十四字,注七百九字。今校經三百七十七字,注六百五十六字。

    海內西經第十一 本四百三十九字,注六百九十五字。今校經五百一十四字,注七百四字。

    海內北經第十二 本五百九十四字,注四百九十五字。今校經五百十字,注五百九十二字。

    海內東經第十三 本六百二十四字,注一千四百九十五字。今校經六百三十五字,注一千七十二字。

    右海外、海內經八篇,經四千二百二十八字,注五千二百八十四字,總九千五百一十二字。

    大荒東經第十四 本八百六十四字,注八百一十三字。今校經八百五十八字,注九百二十四字。

    大荒南經第十五 本九百七十二字,注五百九十八字。今校經九百七十七字,注六百一十七字。

    大荒西經第十六 本一千二百八十二字,注一千二百三字。今校經一千一百一十八字,注一千二百八十五字。

    大荒北經第十七 本一千五百六字,注七百六十七字。今校經一千七十一字,注八百四字。

    海內經第十八 本一千一百十一字,注九百六十七字。此海內經及大荒經本皆進在外(珂案:宋本、毛扆本作逸在外)。今校經一千一百四十一字,注九百七十五字。

    右大荒經海內經五篇,經五千三百三十二字,注四千四百三十八字,總九千七百七十字。

清郝懿行山海經箋疏敘曰:山海經古本三十二篇,劉子駿校定為一十八篇,即郭景純所傳是也。今考南山經三篇,西山經四篇,北山經三篇,東山經四篇,中山經十二篇,並海外經四篇,海內經四篇,除大荒經已下不數,已得三十四篇,則與古經三十二篇之目不符也。隋書經籍志山海經二十三卷。舊唐書十八卷,又圖讚二卷,音二卷,並郭璞撰;此則十八卷又加四卷,才二十二卷,復與經籍志二十三卷之目不符也。漢書藝文志山海經十三篇,在形法家,不言有十八篇。所謂十八篇者,南山經至中山經本二十六篇合為五臧山經五篇,加海外經已下八篇,及大荒經已下五篇為十八篇也。所謂十三篇者,去荒經已下五篇,正得十三篇也。古本此五篇皆在外,與經別行,為釋經之外篇。及郭作傳,據劉氏定本,復為十八篇,即又與藝文志十三篇之目不符也。酈善長注水經云:「山海經薶縕歲久,編韋稀絕,書策落次,難以緝綴。後人假合,多差遠意。」然則古經殘簡,非復完篇,殆自昔而然矣。藝文志不言此經誰作,劉子駿表云:出於唐虞之際。以為禹別九州,任土作貢,而益等類物善惡,著山海經。王仲任論衡、趙長君吳越春秋亦稱禹益所作。顏氏家訓書證篇云:「山海經禹益所記,而有長沙零陵桂陽諸暨,由後人所羼,非本文也。」今考海外南經之篇,而有說文王葬所,海外西經之篇,而有說夏后啟事。夫經稱夏后,明非禹書;篇有文王,又疑周簡:是亦後人所羼也。至於郡縣之名,起自周代,周書作雒篇云:「為方千里,分以百縣,縣有四郡。」春秋哀公二年左傳云:「克敵者上大夫受縣,下大夫受郡。」杜元凱注云:「縣百里,郡五十里。」今考南次二經云:「縣多土功」、「縣多放士」,又云「郡縣大水」、「縣有大繇」:是又後人所羼也。大戴禮五帝德篇云:「使禹敷土,主名山川。」爾雅亦云:「從釋地已下至九河皆禹所名也。」觀禹貢一書,足覘梗概。因知五臧山經五篇,主於紀道里、說山川,真為禹書無疑矣。而中次三經說青要之山云:「南望墠渚,禹父之所化。」中次十二經說天下名山,首引「禹曰」。一則稱禹父,再則述禹言,亦知此語,必皆後人所羼矣。然以此類致疑本經,則非也。何以明之?周官大司徒以天下土地之圖,周知九州之地域,廣輪之數。土訓掌道地圖,道地慝。夏官職方亦掌天下地圖。山師、川師掌山林川澤,致其珍異。邍(原)師辨其丘陵墳衍邍●之名物,秋官復有冥氏、庶氏、穴氏、翨氏、柞氏、薙氏之屬,掌攻夭鳥猛獸蟲豸草木之怪蠥。左傳稱禹鑄鼎象物而為之備,使民知神姦,民入山林川澤,禁禦不若,螭魅,莫能逢旃。周官左氏所述即與此經義合。禹作司空,灑沈澹災,燒不暇撌,濡不給扢,身執虆垂,以為民先。爰有禹貢,復著此經。尋山脈川,周覽無垠,中述怪變,俾民不眩。美哉禹功,明德遠矣;自非神聖,孰能修之。而後之讀者,類以夷堅所志,方諸齊諧,不亦悲乎!古之為書,有圖有說,周官地圖,各有掌故,是其證已。後漢書王景傳云:「

賜景山海經、河渠書、禹貢圖。」是漢世禹貢尚有圖也。郭注此經而云:「圖亦作牛形」,又云:「在畏獸畫中」;陶徵士讀是經詩亦云:「流觀山海圖」:是晉代此經尚有圖也。中興書目云:「山海經圖十卷,本梁張僧繇畫,咸平二年校理舒雅重繪為十卷,每卷中先類所畫名,凡二百四十七種。」是其圖畫已異郭陶所見。今所見圖復與繇雅有異,良不足据。然郭所見圖,即已非古,古圖當有山川道里。今考郭所標出,但有畏獸仙人,而於山川脈絡,即不能案圖會意,是知郭亦未見古圖也。今禹貢及山海圖遂絕跡不復可得。禹貢雖無圖,其書說要為有師法,而此經師訓莫傳,遂將湮泯。郭作傳後,讀家稀絕,途徑榛蕪。迄於今日,脫亂淆訛,益復難讀。又郭注南山經兩引「璨曰」,其注南荒經「昆吾之師」又引音義云云,是必郭已前音訓注解人,惜其姓字爵里與時代俱湮,良可於邑。今世名家則有吳氏、畢氏。吳徵引極博,汎濫於群書;畢山水方滋,取證於耳目。二書於此經,厥功偉矣。至於辨析異同,正訛謬,蓋猶未暇以詳。今之所述,并採二家所長,作為箋疏。箋以補注,疏以證經。卷如其舊,別為訂訛一卷,附於篇末。計創通大義百餘事,是正訛文三百餘事,凡所指擿,雖頗有依據,仍用舊文,因而無改,蓋放鄭君康成注經不敢改字之例云。嘉慶九年甲子二月廿八日棲霞郝懿行撰。

 

 

    所據板本及諸家舊注書目

山海經傳十八卷 晉郭璞撰

 宋淳熙七年池陽郡齋尤袤刻本

 明正統十年刻道藏本(涵芬樓影印,原缺十四、十五卷)

 明成化元年吳寬抄本

 明刻本(毛扆校)

 明萬曆十三年吳琯刻山海經水經合刻本(黃丕烈、周叔弢校)

 同上刻本(邵恩多校)

 清康熙五十三年至五十四年項絪群玉書堂刻本(王念孫校注)

 同上刻本(何焯校——□□泰臨)

 清乾隆黃晟槐蔭草堂刻本(失名校注)

山海經補注一卷 明楊慎撰

 清光緒元年湖北崇文書局刻百子全書本

山海經釋義十八卷 圖一卷 明王崇慶撰

 明萬曆二十五年蔣一葵堯山堂刻本

山海經廣注十八卷 圖五卷 清吳任臣撰

 清乾隆五十一年金閶書業堂刻本

山海經存九卷(附圖) 清汪紱撰

 清光緒二十一年立雪齋原本石印本

山海經新校正一卷 古今篇目考一卷 清畢沅撰

 清乾隆四十六年畢沅靈巖山館刻經訓堂叢書本(孫星衍校)

山海經箋疏十八卷 圖讚一卷 訂偽一卷 清郝懿行撰

 清嘉慶十四年儀徵阮氏瑯環仙館刻本

山海經地理今釋六卷 清吳承志撰

 民國十一年南林劉氏求恕齋刻本

 

 

    引用書目

書(周)

孟子(戰國鄒孟軻)

史記(漢司馬遷)

莊子(戰國宋莊周)

墨子(戰國宋墨翟)

墨子閒詁(清孫詒讓)

管子(周管仲?)

文選(六朝梁蕭統)

後漢書(六朝宋范曄)

山海經箋疏(清郝懿行)

讀山海經(晉陶潛——陶淵明集)

爾雅(漢)

埤雅(宋陸佃)

博物志(六朝)

周書(周)

嬛記(元伊士珍)

楚辭(戰國楚屈原等)

山海經圖贊(晉郭璞)

神異經(六朝)

集韻(宋丁度等)

廣雅(三國魏張揖)

駢雅(明朱謀)

匡謬正俗(唐顏師古)

讀書偶識(清鄒漢勛)

丹朱與驩兜(童書業——浙江圖書館館刊四卷五期)

竹書紀年(戰國魏。佚)

呂氏春秋(秦呂不韋)

六韜(漢。佚)

藝文類聚(唐歐陽詢)

太平御覽(宋李昉等)

赤雅(明鄺露)

情史(明馮夢龍)

原化記(唐皇甫氏)

初學記(唐徐堅等)

說文(漢許慎)

括地圖(漢?佚)

玉篇(六朝梁顧野王)

異域志(元周致中)

山海經廣注(清吳任臣)

尸子(戰國楚尸佼。佚)

廣韻(隋陸法言)

異物志(漢楊孚。佚)

外國圖(六朝?佚)

抱朴子(晉葛洪)

神仙傳(晉葛洪)

論衡(漢王充)

小說(六朝梁殷芸。佚)

古小說鉤沈(魯迅)

大戴禮(漢戴德)

水經注(北魏酈道元)

詩含神霧(漢。佚)

國語(周左丘明)

括地志(唐李泰。佚)

法苑珠林(唐釋道世)

淵鑑類函(清張英等)

太平廣記(宋李昉等)

述異記(六朝梁任昉?)

西遊記(明吳承恩)

漢武故事(六朝。佚)

洞冥記(六朝)

三國志(晉陳壽)

穆天子傳(戰國)

皇覽(三國魏王象等。佚)

北堂書鈔(唐虞世南)

玄中記(晉郭璞。佚)

蜀典(清張澍)

涼州異物志(六朝。佚)

繹史(清馬驌)

新書(漢賈誼)

尚書大傳(漢伏勝。佚)

太公金匱(六朝。佚)

補史記三皇本紀(唐司馬貞)

  ——以上海外南經,以下書名重見者不錄

詩(周)

商代的神話與巫術(陳夢家——燕京學報第二十期)

隨巢子(戰國。佚)

楚辭校補(聞一多——聞一多全集)

玉函山房輯佚書(清馬國翰)

三才圖會(明王圻)

韓詩外傳(漢韓嬰)

禮記(周)

宋書(六朝梁沈約)

左傳(周左丘明)

遁甲開山圖(漢。佚)

世本(秦漢。佚)

路史(宋羅泌)

春秋緯元命苞(漢。佚)

伏羲考(聞一多——聞一多全集)

天問「阻窮西征」新解(唐蘭——禹貢半月刊第七卷一二三期合刊)

瑞應圖(六朝梁孫柔之。佚)

本草綱目(明李時珍)

漢書(漢班固)

  ——以上海外西經

酉陽雜俎(唐段成式)

廣博物志(明董斯張)

五運歷年紀(三國吳徐整。佚)

琱玉集(唐。殘)

獨異志(唐李冗)

龍魚河圖(漢。佚)

中國古代旅行之研究(江紹原)

太古蠶馬記(三國吳張儼?)

搜神記(晉干寶?)

荀子(戰國趙荀況)

啟蒙記(晉顧愷之。佚)

齊民要術(後魏賈思勰)

天中記(明陳耀文)

  ——以上海外北經

穀梁傳(戰國穀梁赤?)

列子(晉張湛?)

列子集釋(楊伯峻)

毛詩正義(唐孔穎達)

古微書(明孫)

高唐神女傳說之分析(聞一多——聞一多全集)

異苑(六朝宋劉敬叔)

茅亭客話(宋黃休復)

吳越春秋(漢趙曄)

白虎通(漢班固)

十洲記(六朝)

列仙傳(漢劉向?)

風俗通義(漢應劭)

焦氏易林(漢焦延壽)

臨海異物志(三國吳沈瑩。佚)

  ——以上海外東經

晉書(唐房喬等)

閩書(明何喬遠)

桂海虞衡志(宋范成大)

荊楚歲時記(六朝梁宗懍)

祖沖之述異記(六朝齊祖沖之。佚)

金樓子(六朝梁蕭繹)

巫山縣志(清李友梁)

河圖玉版(漢?佚)

江源記(六朝宋庾仲雍。佚)

岳陽風土記(宋范致明)

山海經地理今釋(吳承志)

  ——以上海內南經

輿地志(六朝陳顧野王。佚)

漢唐地理書鈔(清王謨)

上山海經表(漢劉秀——見山海經)

華陽國志(晉常璩)

蜀中名勝記(明曹學佺)

山海經補注(明楊慎)

夢溪筆談(宋沈括)

讀書雜志(清王念孫)

拾遺記(六朝梁蕭綺?)

  ——以上海內西經

魏略(三國魏魚豢。佚)

漢魏叢書本搜神記(唐?)

敦煌寫本搜神記(唐句道興——見王重民等輯敦煌變文集)

三五曆紀(三國吳徐整。佚)

嶺表紀蠻(劉錫蕃)

沙坪壩出土之石棺畫象研究(常任俠——說文月刊第一卷第十、十一期合刊)

殷虛書契前編(羅振玉)

鐵雲藏龜(清劉鶚)

九歌古劇懸解(聞一多——聞一多全集)

殷王亥慘死及后君王恆上甲微復仇之傳說(江紹原——一九三六年十一月二十八日北平華北日報副刊「中國古占卜術研究」)

列女傳(漢劉向)

嶺南異物志(唐孟琯。佚)

洽聞記(唐鄭遂。殘)

徂異記(宋聶田。殘)

  ——以上海內北經

帝王世紀(晉皇甫謐。佚)

漢書人表考(清梁玉繩)

殷虛卜辭綜述(陳夢家)

卜辭所見殷先公先王三續考(吳其昌——燕京學報第十四期)

易(周)

中國古代宗教與神話考(丁山)

軒轅本紀(唐王瓘——見雲笈七籤卷一百)

黃帝內傳(佚)

廣成子傳(佚)

  ——以上大荒東經

公羊傳(漢公羊壽)

博古圖(宋王黼等)

墉城集仙錄(五代蜀杜光庭)

屈原賦今譯(郭沫若)

事物紺珠(明黃正一)

  ——以上大荒南經

說郛(明陶宗儀)

三餘帖(宋?)

通志(宋鄭樵)

商君書(秦商鞅?)

鶡冠子(周?)

壬癸之際胎觀(清龔自珍——龔自珍全集)

開元占經(唐瞿曇悉達)

潛夫論(漢王符)

孝經援神契(漢。佚)

開闢衍繹(明周游)

  ——以上大荒西經

中國神話研究ABC(玄珠)

方言(漢揚雄)

稽瑞(唐劉賡)

黃帝玄女戰法(六朝?佚)

志林(晉虞喜。佚)

通典(唐杜佑)

通考(元馬端臨)

  ——以上大荒北經

弘明集(六朝梁釋僧祐)

說文繫傳(南唐徐鍇)

游氏臆見(佚)

花的故事(盛森)

春旺和九仙姑(見中國民間故事選第一集)

白氏六帖(唐白居易)

論語(周)

爾雅翼(宋羅願)

元和郡縣圖志(唐李吉甫)

神農本草經(三國魏吳普。佚)

王隱晉書(晉王隱。佚)

幽明錄(六朝宋劉義慶。佚)

新序(漢劉向)

說苑(漢劉向)

桓譚新論(漢桓譚)

發蒙記(晉束皙。佚)

周禮(周)

  ——以上海內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