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경(海外西經) 번역

산해경/해외서경 2018. 2. 28. 00:00

海外自西南陬至西北陬者1。

해외 서남쪽 구석에서 서북쪽 구석까지 기재하다.


1 필원(畢沅)云:「회남자(淮南子)지형훈(墬形訓)云:서북쪽에서 서남쪽까지(自西北至西南方),수고민과 숙신민으로 시작한다(起修股民肅慎民),이 문장이 쓰여있다(此文正倒)。이 경문에 알려진 그림 설명의 문장은(知此經是說圖之詞),또 오른쪽으로 가면 서남쪽에서 서부쪽까지 삼신국이 발생했고(或右行則自西南至西北起三身國),또 왼쪽으로 가면 서북쪽에서 서남쪽까지 수고민이 발생했다(或左行則自西北至西南起修股民)。이것은 오직 한나라 시대 산해경 그림에만 있고(是漢時猶有山海經圖),각각의 의견에 따라 설명되었으므로(各依所見為說),같지 않다(故不同也)。」


滅蒙鳥在結匈國北1,為鳥青,赤尾。

멸몽조는 결흉국 북쪽에 있다, 새는 푸르고, 꼬리는 붉다.


1 필원(畢沅)云:「결흉국에 가지고 있다(蓋結匈國所有),위 글에서 서남쪽 구석에서 발생했다와 이어지는데(承上文起西南陬言),그 그림은 결흉국 북쪽에 있다(其圖象在結匈國北也)。」학의행(郝懿行)云:「박물지(博物志)(외국(外國))云:『결흉국에 멸몽조가 있다(結匈國有滅蒙鳥)。』이것이 근거(本此)。해내서경(海內西經)又맹조가 있다(有孟鳥)。」

   원가기록(珂案):해내서경(海內西經)云:「맹조는 맥국 동북쪽에 있다(孟鳥在貊國東北),그 새의 무늬는 붉고 누렇고 푸르며(其鳥文赤、黃、青),동쪽을 보고 있다(東鄉)。」학의행(郝懿行)멸몽조가 맹조로 의심된다 했는데(謂滅蒙鳥疑即孟鳥),멸몽의 소리가 맹에 가깝다(滅蒙之聲近孟(자세하게(詳)해내서경(海內西經)「맹조(孟鳥)」節注),이 설명이 맞다(其說是也)。어찌 알겠는가(何以知其然也)?사기(史記)진본기(秦本紀)云:「진나라의 조상은(秦之先),제전욱의 핏줄이며 대수가 먼 후손이다(帝顓頊之苗裔孫),여수라 한다(曰女脩)。여수가 베를 짜고 있었는데(女脩織),현조가 알을 떨어뜨렸고(玄鳥隕卵),여수는 알을 삼키고(女脩吞之),대업이라는 자식을 낳았다(生子大業)。대업은 여화라 불리는 소전의 자식에게 장가를 들었다(大業取少典之子曰女華)。여화는 대비를 낳았고(女華生大費),우와 함께 물과 흙을 다스렸으며(與禹平水土),일이 끝나자(已成),제순이 현규를 하사하였다(帝賜玄珪)。우가 받으면서(禹受)曰:『혼자 해낸 것이 아니라(非予能成),대비가 도왔습니다(亦大費為輔)。』제순(帝舜)曰:『탄식하며(咨),비 그대는(爾費),우를 도와 업적을 쌓았으니(贊禹功),그대에게 조유를 하사하노라(其賜爾皁游),그대의 후손들은 앞으로 크게 번창하리라((爾後嗣將大出)。』이에 옥씨성의 옥녀를 아내로 삼았다(乃妻之姚姓之玉女)。대비는 삼가 받으며(大費拜受),순을 도와 새와 짐승을 길들였고(佐舜調馴鳥獸),새와 짐승이 길이 들어서 잘 따랐으며(鳥獸多馴服),이들이 백예가 되었다(是為柏翳(백익(伯益)))。순운 영씨 성을 하사하였다(舜賜姓嬴氏)。대비는 자식을 두 명 낳았는데(大費生子二人),대렴이라 하는 이는(一曰大廉),조속씨가 되었다(實鳥俗氏);다른 이는 약목으로(二曰若木),비씨가 되었다(實費氏)。그의 고손자를 비창이라 하는데(其玄孫曰費昌), 자손들이 중국에 있거나(子孫或在中國), 오랑캐 땅에 있다(或在夷狄)。비창은 하나라 걸왕의 시대에(費昌當夏桀之時), 하나라를 떠나 상나라로 돌아갔고(去夏歸商), 탕을 위해 어거하였으며(爲湯御), 명조에서 걸왕이 패하였다(以敗桀於鳴條)대비의 고손자는 명희와 중연이라 하는데(大廉玄孫曰孟戲、仲衍),몸은 새이고 사람 말을 했다(鳥身人言)。」태평어람(太平御覽)卷九一五引괄지도(括地圖)云:「맹휴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인데(孟虧人首鳥身),그의 조상 우씨는 온갖 짐승을 길들였다(其先為虞氏馴百獸),하후 말세부터(夏后之末世),백성들이 알을 먹기 시작했고(民始食卵),맹휴가 떠나자(孟虧去之),봉황도 맹휴를 따라 함께 하나라를 떠났다(鳳凰隨與止於此)。산에 대나무가 많은데(山多竹),크기는 천 길이고(長千仞),봉황은 대나무 열매의 씨를 먹는다(鳳凰食竹實),맹휴는 나무 열매만 먹었다(孟虧食木食)。거구는 일만 팔천 리로 의심(去九疑萬八千里)。」맹휴는 진본기의 맹희이고(孟虧即秦本紀之孟戲也),박물지(博物志)(외국(外國))又作맹서(孟舒)。云:「맹서국 백생은(孟舒國民),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이며(人首鳥身),그들의 조상 삽씨는 온갖 새를 길들였다(其先主為霅氏訓百禽)。하후의 시대부터(夏后之世),알을 먹기 시작했다(始食卵)。맹서가 떠나자(孟舒去之),봉황이 따라갔다(鳳皇隨焉)。」희와 휴와 서 모두 하나의 소리로 전해진다(戲、虧、舒均一音之轉)。대황동경(大荒東經)云:「제순은 희를 낳았고(帝舜生戲),희는 요민을 낳았다(戲生搖民)。」해내경(海內經)云:「영민이 있는데(有嬴民),발이 새이다(鳥足)。」영와 요 여시 하나의 소리로 전해진다(嬴、搖亦一聲之轉),영민이 요민이고(嬴民即搖民),희는 맹희다(戲即孟戲也),백예가 넘어가지 않아 조상이 되었다(不過原以柏翳(백익(伯益))為祖先者),또 순에게 옮기라 하였다(乃又移之於舜也)。순과 백익 모두 동쪽 은민족 전설의 조상신이고(舜與伯益蓋皆東方殷民族傳說中之祖宗神),시경 현조는 이른바 현조가 하늘의 명으로 땅에 내려와 상을 낳았다의 현조이며(亦即詩玄鳥所謂「현조가 하늘의 명으로(天命玄鳥),땅에 내려와 상을 낳았다(降而生商)」之玄鳥),연자가 변한 것이다(即燕子之化身)。현조 거듭 내려오며 신화가 변해(玄鳥再經神話化),봉황이 되었다(又為鳳凰)。그러므로 그 후손들이(故其子孫或「몸은 새이고 사람 말을 했다(鳥身人言)」),혹은(或「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새다(人首鳥身)」),또는(或「발이 새다(鳥足)」),또는(且有「봉황이 따라갔다(鳳凰隨焉)」)。이 수언의 봉황은(此「수언(隨焉)」之「봉황(鳳凰)」),여기에 기록된 멸몽조와 해내서경에 기록된 맹조가 맞다(即此處所記「멸몽조(滅蒙鳥)」及해내서경(海內西經)所記「맹조(孟鳥)」是也)。「새는 푸르고(為鳥青),꼬리는 붉다(赤尾)」或「그 새의 무늬는 붉고 누렇고 푸르며(其鳥文赤、黃、青)」云云,이른바(乃所謂「오채조(五采之鳥)」),산해경(山海經)많이 기록되어 있으며(多記有之),모두 봉황의 모양이다(皆鳳凰之象)。대황서경(大荒西經)云:「오채조가 있는데(有五采之鳥),갓이 있고(有冠),이름을 광조라 한다(名曰狂鳥)。」이아(爾雅)석조(釋鳥)云:「광은(狂),몽조다(鳥)。」사실 광조와 몽조 모두 봉황의 종류이며(實則狂鳥、鳥皆鳳凰屬也),광은 황이고(狂即皇),몸은 봉이라(即鳳),소리가 전해진다(音之轉也)。몽조 또한 맹조이나(鳥又即孟鳥),글자가 다르다(字之異也)。대황서경(大荒西經)又云:「엄주산에 있는(有弇州之山),오채조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五采之鳥仰天),이름을 명조라 한다(名曰鳴鳥)。」학의행(郝懿行)云:「명조는(鳴鳥),봉의 종류다(蓋鳳屬也)。」명조 역시 몽조와 맹조다(鳴鳥亦鳥、孟鳥也)。여기에 기록된(則此處所記之「멸종조(滅蒙鳥)」),틀림없이 광조와 몽조와 명조와 맹조는 봉의 다른 이름이다(固鳳屬之狂鳥、鳥、鳴鳥、孟鳥之異名也)。


大運山高三百仞,在滅蒙鳥北。

대운산은 높이가 삼백 길이고, 멸몽조 북쪽에 있다.


大樂之野,夏后啟于此九代1;

대악의 들판은, 하후계는 이곳에서 구대와 춤을 추었다.


乘兩龍,雲蓋三層2。

두 마리의 용을 타고, 구름이 세 겹으로 덮여 있다.


左手操翳3,右手操環4,佩玉璜5。

왼손에 우보당을 쥐고, 오른손에 옥고리를 쥐며, 옥황을 허리에 찼다.


在大運山北6。

대운산 북쪽에 있다(在大運山北).


一曰大遺之野7。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대유의 들판이라고도 한다.


1 곽박(郭璞)云:「구대는(九代),말의 이름(馬名),무는 반작의 영무를 일컫는다(謂盤作之令舞(장경(藏經)本作무(儛)——珂)也)。」학의행(郝懿行)云:「구대는(九代),음악의 이름으로 의심(疑樂名也)。죽서(竹書)(今本——珂)云:『하나라 제계 십 년에(夏帝啟十年),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녔는데(帝巡狩),대목의 들에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舞九韶于大穆之野)。』대황서경(大荒西經)亦云:『천목의 들은(天穆之野),계가 구초를 노래한 곳이다(啟始歌九招)。』초는 소이다(招即韶也)。(원가기록(珂案):장경(藏經)本「구초(九招)」正作「구소(九韶)」。)구대는 구소로 의심(疑九代即九招矣)。又회남자(淮南)제속훈(齊俗訓)云:『하후씨는 하악구성을 연주하였다(夏后氏其樂夏籥九成)。』구대는 구성으로 의심되고(疑九代本作九成),현재 책에는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 베껴 전해짐(今本傳寫形近而訛也)。이선(李善)注(문선(文選))왕융(王融)三月三日곡수시(曲水詩)序引이 경문에(此經)云:『구대 말과 춤을 추다(舞九代馬)。』마는 덧뭍인 것으로 의심(疑馬字衍)。而예문유취(藝文類聚)九十三卷及태평어랑(太平御覽)八十二卷引이 경문 역시(此經亦)마자가 있다(有馬字),또한 아울러 곽박의 설명한 문장에도 있다(或并引郭注之文也)。말놀음은 아마도 아주 옛날부터 있던 것(舞馬之戲恐非上古所有)。」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맞다(是也)。구대는 확실히 음악의 이름이고(九代確當是樂名),말놀음이 아니다(非舞馬之戲)。진몽가는 상나라 시대의 신화와 무술의 한 문장이라 짧게 설명(陳夢家商代的神話與巫術(연경학보(燕京學報)第二十期)一文略謂):「即九,象又持牛尾。구가(九歌):『혼례를 치를때는 반드시 북을 치며(成禮兮會鼓),파초를 건네고 번갈아 춤을 춘다(傳芭兮代舞)。』이무다(即舞也)。」설명 역시 참고 가능(說亦可供參考)。

2 곽박(郭璞)云:「층은(層),중이다(猶重也)。」학의행(郝懿行)云:「이선(李善)注(문선(文選))서경부(西京賦)량(兩)引이 설명과 모두 같다(此注並同)。또 반악은 가밀에게 육기가 시를 써 선물 하였다고 기록하였다고(又注潘岳為賈謐作贈陸機詩)引이 설명(此注)云:『층(層),중이다(重也),자와 등의 반절(慈登切)。』현재 책에는 곽박의 소리 세 글자가 빠짐(今本脫郭音三字)。또 층은(又層),경젠에 증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는데(經典通作曾),근거는 곽박은 소리이고(據郭音),이 경문의 층은 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알려졌다(益知此經層當為曾矣)。」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곽박(郭)설명(注)층은 증으로 썼다(層作曾)。모의(毛扆)校注云:「삼 층은(三層),증으로 써야하며(注作曾),경문에 층으로 쓰면 안된다(經文不應作層)。」더불어(與)학의행(郝)설명(說)조금 다르나(略異),경문에는 증으로 쓰야 한다고 일컫는다(而謂經文當作曾則同)。

3 곽박(郭璞)云:「우보당이다(羽葆幢也)。」원가기록(珂案):설문해자(說文)四云:「예는(翳),도다(翿也),들고 춤을 추는 것(所以舞也)。」

4 곽박(郭璞)云:「옥의 가운데가 빈 것이 환이 되었다(玉空邊等為環)。」원가기록(珂案):설문해자(說文)一云:「환은(環),벽이다(璧也),고기가 좋은 것을 환이라 한다(肉好若一謂之環)。」

5 곽박(郭璞)云:「반벽을 황이라 한다(半璧曰璜)。」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亦見설문해자(說文)一。

6 곽박(郭璞)云:「귀장(歸藏)정모경(鄭母經)曰:『하후계의 서(夏后啟筮):하늘에서 용을 올라 타고 날으니(御飛龍登于天),좋다(吉)。』계역시 선인으로 보인다(明啟亦仙也)。」학의행(郝懿行)云:「태평어람(太平御覽)八十二卷引사기(史記)曰:『옛날(昔)하후계의 서(夏后啟筮):용을 타고 하늘에 올라(乘龍以登于天),고요가 점을 치니(占于皋陶),고요(皋陶)曰:「좋음이 반드시 같이하니(吉而必同),더불어 신과 막힘이 없이 서로 오간다(與神交通);왕이 될 몸이니(以身為帝),가까운 고향에서도 왕이로다(以王四鄉)。」』현재 기록된(今案)태평어람(御覽)이 문장(此文)即與곽박(郭)설명(注)所引같은 일이 되었다(為一事也)。」

   원가기록(珂案):하후계의 신화 관련(關於夏后啟之神話),대황서경(大荒西經)云:「서남쪽 바다의 밖(西南海之外),적수의 남쪽(赤水之南),사막의 서쪽(流沙之西),두 마리 푸른 뱀을 귀에 건 사람이 있는데(有人珥兩青蛇),두 마리 용에 탔으며(乘兩龍),이름을 하후개라 한다(名曰夏后開)(개는 계이고(開即啟),한나라 경제의 이름이 계이다(漢景帝名啟),한나라 사람들은 임금을 공경하여 다른 글자로 고쳤다(漢人避諱改)),개는 하늘에 올라 세 번의 객지살이를 하였고(開上三嬪(빈(賓))于天),구변과 구가를 얻어서 내려왔다(得九辯與九歌以下)。이 천목의 들은(此天穆之野),높이가 이천 길이고(高二千仞),개가 여기서 처음으로 구가를 노래하였다(開焉得始歌九招)。」같은 일이다(即同一事也)。역사(繹史)卷十二引수소자(隨巢子):「우임금이 도산에게 장가를 들고(禹娶塗山),홍수를 다스렸는데(治鴻水),환원산을 내왕할 때(通轘轅山),곰으로 변하였다(化為熊)。도산씨는 보고(塗山氏見之),부끄러워하며 달아났고(慚而去),숭고산에 이르러(至嵩高山),돌로 변하였다(化為石)。우임금(禹)曰:『내 아이를 돌려주시오(歸我子)!』돌의 북쪽이 쪼개지면서 계를 낳았다(石破北方而生啟)。」이 계의 탄생이 일반적이지 않다(此啟之生為非同尋常矣),열린 곳이라 하여 계가 되었다(亦啟之所以為「계(啟)」(개(開))也)。사람과 신이 관계를 맺어 태어난 자식이 계가 되었고(啟為人神交配所生之子),원래의 몸은 이미 신의 몸을 갖추고 있는 것은(本身固具有神性),이유는(故能)「하늘에 세 번 올라(三嬪于天),구변과 구가를 얻어서 내려왔다(得九辯與九歌以下)」。이른바 득은(所謂「득得)」者),사실 절이다(實「절(竊)」也)。태평어람(御覽)九二九引귀장(歸藏)명이(明夷)云:「옛날에 하후계는 용을 타고 날아(昔夏后啟上乘龍飛),하늘에 올랐고(以登于天),고요는 점을 쳤다(皋陶占之),曰:『길(吉)。』」대황서경(大荒西經)곽박(郭)注引귀장(歸藏)하후계의 서(啟筮)云:「훔지지 않고는 구변과 구가를 나라에 가져 올 수 없었다(不可竊辯與九歌以國于下)。」그 일이다(即其事矣)。우임금은 계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었는데(蓋啟承禹位),나라의 여러 가지 일을 돌보지 않았고(不恤國事),오로지 술과 음식과 음악과 여색의 즐거움만 좇았으며(惟以酒食聲色自娛),훔쳐온 하늘의 음악으로 흥을 돋구었다(復竊天樂助興),나라를 망치는 비참하고 끔찍한 재난이 되었다(致遭亡國慘禍)。故묵자(墨子)비악(非樂)稱:「계가 그렇게 음란함을 탐닉하고(啟乃淫溢康樂),자유분방하게 먹고 마시며(野于飲食),시끄럽게(將將鍠鍠),피리와 경쇠를 연주하였다(筦磬以方)。술에 취해 깊이 빠져(湛濁于酒),들에서 먹고 마시고(渝食于野),흥겨운 춤만 추게 하니(萬舞翼翼),하늘에 큰 소문이나(章聞于天),하늘이 나쁘다 하여 벌을 내렸다(天用弗式(안에 있는 글자와 원문의 글은 약간 다른데(內數字與原文略有不同),손이양이 묵자를 검열하고 해석하며 고쳤기 때문이다(均據孫詒讓墨子閒詁校改)))。」시인 들은 이것 때문에 많이들 나무라고 꾸짖었다(詩人於此亦多所刺譏)。굴원(屈原)이소(離騷)云:「계는 구변과 구가를 하며(啟九辯與九歌兮),편안함과 즐거움을 좇아 하나라를 내버려 두었다(夏康娛以自縱);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뒤로 미루기만 했으니(不顧難以圖後兮),오자는 집을 잃었구나(五子用夫家巷(끝 구절 미는 원래 실호이고(末句「미(夫)」原作「실호(失乎)」),나아가(從)문일다(聞一多)초사포교(楚辭校補)고치고(改),「가항(家巷)」即「가홍(家鬨)」,내홍의 뜻이다(內訌之意也)))。」천문(天問)云:「계는 상에 초대되어 가져온 것이(啟棘賓商(제자로 의심(帝之形訛))),구변과 구가더라(九辯九歌),어찌 부지런한 자식이 어미를 죽여 죽은 몸을 땅에 떨어트렸는가(何勤子屠母而死分竟(境)地)?」그 일이다(即其事也)。이곳이 이른바 무구대이고(此處所謂「구대를 추고(九代)」),또는 가구초의 종류다(亦「구초를 노래한다(歌九招)」之類),비록 신선이라 하더라도(雖曰「역선(亦仙)」),계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쫓아 내버려 두다의 구체적 표현이며(固乃啟「편안함과 즐거움을 쫓아 내버려 두다(康娛自縱)」之具體表現),그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뒤로 미루기만 한다(其「不顧難以圖後」),역시 이미 명확하다(亦已明矣)。

7 곽박(郭璞)云:「대황경(大荒經)云:대목의 들판(大穆之野)。」학의행(郝懿行)云:「대황서경(大荒西經)作천목의 들판(天穆之野),이 설명에 대목의 들판은(此注云大穆之野),죽서(竹書)천목과 대목 두 문장 모두 보인다(天穆、大穆二文並見)。이 경문에 나온 대유의 들판과 대락의 들판은(此經文又云大遺之野、大樂之野),모든 문장이 모두 달라(諸文皆異),자세하지 않다(所未詳)。」원가기록(珂案):천과 대는 옛날에 한 글자였고(天、大古本一字),목과 유와 락는 모두 발음이 비슷하다(穆、遺、樂音皆相近)。


三身國1在夏后啟北,一首而三身2。

삼신국은 하후계 북쪽에 있다, 몸은 세 개에 머리는 하나있다.


1 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 삼신민이 있다(有三身民)。대황남경(大荒南經)云:「대황의 안에(大荒之中),부정산이 있는데(有不庭之山),여기서 영수가 끊어진다(滎水窮焉)。몸이 세 개인 사람이 있다(有人三身)。제준의 아내 아황은(帝俊妻娥皇),이 삼신국에서 태어났다(生此三身之國)。요씨 성을 쓰고(姚姓),기장을 먹으며(黍食),네 가지 짐승을 부린다(使四鳥)。」하도(河圖)괄지도(括地圖)(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모음(輯))則云:「용성씨의 막내 아들은(庸成氏實有季子),그 성품이 음란한 것을 좋아하고(其性喜淫),낮에 저잣거리에서 음란한 짓을 하였는데(晝淫於市),임금이 성이나(帝怒),서남쪽으로 내쫓았다(放之於西南)。막내 아들은 말과 식을 올리고 자식을 낳았는데(季子儀馬而產子),몸은 사람이나 말의 꼬리와 말의 굽을 하였다(身人也而尾蹄馬),이곳이 삼신국이 되었다(是為三身之國)。」뒤에 나오는 설명은(蓋後起之說),옛 신화의 처음 모양이 아니다(非古神話初相也)。

2 학의행(郝懿行)云:「예문유취(藝文類聚)三十五卷引박물지(博物志)云:『삼신국은 머리가 한 개 몸이 세 개 손이 세 개다(三身國一頭三身三手)。』현재 이 경문에는 손이 세 개가 없다(今此經無三手字)。」


一臂國1在其北,一臂一目一鼻孔2。

일비국은 그 북쪽에 있다, 팔이 하나에 눈이 하나이고 콧구멍이 하나이다.


有黃馬虎文,一目而一手3。

범무늬의 누런 말이 있는데, 앞다리가 하나에 눈이 하나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일비민이 있다(有一臂民)。」即此。

2 오임신(吳任臣)云:「회남자(淮南子)해외 서른 여섯 개의 나라는(海外三十六國),서남쪽에 일비민이 있다(西南方有一臂民)。여씨춘추(呂氏春秋)(구인편(求人篇))云:『기굉과 일비의 고향이다(其肱、一臂之鄉)。』이아(爾雅)(석지(釋地)):『북쪽에 있는 비견민은(北方有比肩民焉),번갈아 바라보며 번갈아 먹는다(迭食而迭望)。』곽박(郭璞)注云:『이는 몸이 절반인 사람이며(此即半體之人),각각 한 개의 눈과 한 개의 콧구멍과 한 개의 팔과 한 개의 다리가 있다(各有一目、一鼻孔、一臂、一腳)。』이역지(異域志)云:『반체국의 사람들은 눈이 한 개 손이 한 개 발이 한 개이다(半體國其人一目一手一足)。』교주기(交州記)曰:『담이국 동쪽에 일비국이 있고(儋耳國東有一臂國),사람들 모두 팔이 하나다(人皆一臂也)。』강엄(江淹)수고편(遂古篇)『일비인이라니(一臂人兮)』근거다(本此)。삼재도회(三才圖會)曰:『일비국은 서해의 북쪽에 있는데(一臂國在西海之北),몸이 절반이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半體比肩),마치 새와 물고기 같이 서로 잘 맞는다(猶魚鳥相合)。』(원가기록(珂案):한시외전(韓詩外傳)卷五云:「동해에 있는 물고기의 이름을 접이라 하는데(東海有魚名曰鰈),눈을 나란히 하고 다니며(比目而行),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니지 못한다(不相得不能達);남쪽에 있는 새의 이름을 겸이라 하는데(南方有鳥名曰鶼),서로 날개를 나란히 하고 날며(比翼而飛),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不相得不能舉)。」이른바 물고기와 새가 서로 잘 맞는다(即所謂「어조상합(魚鳥相合)」也)。)(문선(文選))왕융(王融)곡수시서(曲水詩序):『뒤꿈치가 몸에서 반대로 나온 임금은(離身反踵之君),북상투 머리에 가슴이 구멍난 어른이다(髽首貫胸之長)。』이신 역시 이런 종류다(離身亦斯類也)。」

3 학의행(郝懿行)云:「손은(手),말의 앞다리이고(馬臂也)。(예기(禮記))내칙(內則)云:『말이 검은 등마루에 앞다리는 얼룩덜룩하다(馬黑脊而般臂漏)。』」


奇肱之國1在其北,其人一臂三目,有陰有陽,乘文馬2。

기굉국은 그 북쪽에 있다, 그곳 사람은 팔이 하나에 눈이 세 개이다, 위는 검고 아래가 흰, 무늬있는 말을 탄다.


有鳥焉,兩頭,赤黃色,在其旁3。

여기 있는 새는, 머리가 두 개이고, 적황색을 띄며, 그 곁에 붙어 있다.


1 곽박(郭璞)云:「굉은 홍으로도 쓴다(肱或作弘);奇音기(羈)。」

2 곽박(郭璞)云:「어두은 것은 위에 있고(陰在上),밝은 것은 아래에 있다(陽在下);문마는 길량이다(文馬即吉良也)。」원가기록(珂案):해내북경(海內北經)云:「견웅국에 있는 문마는(犬戎國有文馬),흰 몸에 붉은 갈기이며(縞身朱鬣),눈은 황금 같고(目若黃金),이름을 길량이라 하는데(名曰吉量),말을 타면 천 살까지 살 수 있다(乘之壽千歲)。」길량은 길량이다(吉量即吉良也)。

3 곽박(郭璞)云:「그곳 사람들은 잔꾀와 솜씨가 좋아(其人善為機巧),온갖 새를 잡았다(以取百禽);나르는 수레를 만들 수 있었고(能作飛車),바람을 따라서 멀리까지 갔다(從風遠行)。탕임금 시대에 예주 근처에서 얻었는데(湯時得之於豫州界中),바로 부수었고(即壞之),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不以示人)。십 년이 지나고 서풍이 불자(後十年西風至),고쳐서 보냈다(復作遣之)。」학의행(郝懿行)云:「박물지(博物志)설명(說)기굉민은 잔꾀와 솜씨가 좋아(奇肱民善為栻扛),온갖 새를 죽였다(以殺百禽),식강은 기교 두 글자의 다름(栻扛蓋機巧二字之異)。탕임금이 그 수레를 부수어(又云湯破其車),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不以視民),시는 옛 시자다(視即古示字),시로도 쓴다(當作眎)。또 십 년이 지나고 동풍이 불자(又云十年東風至),고쳐서 수레를 돌려 보냈다(乃復作車遣返),곽박(郭)설명(注)作서풍이 불자(西風至),서자는 잘못됨(西字訛也)。그 나라는 옥문관에서 사만 리를 가야한다(云其國去玉門關四萬里),반드시 동풍이 불어야 되돌려 보낼 수 있다(當須東風至乃得遣返矣)。」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맞다(是也)。박물지(博物志)외국(外國)云:「기굉민은 잔꾀와 솜씨가 좋아(奇肱民善為栻扛),온갖 새를 죽였다(以殺百禽)。나는 수레는 만들 수 있었고(能為飛車),바람을 따라 멀리까지 갔다(從風遠行)。탕임금 시대에 서풍이 불어(湯時西風至),그 수레가 예주까지 이르렀고(吹其車至豫州),탕임금은 그 수레를 부수어(湯破其車),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不以視民)。십 년이 지나고 동풍이 불자(十年東風至),고친 수레를 되돌려 보냈다(乃復作車遣返)。그 나라는 옥문관에서 사만 리를 가야한다(其國去玉門關四萬里)。」회남자(淮南)지형편(墬形篇)作기고(奇股)。고유(高誘)注云:「기는(奇),척이다(隻也);고는(股),각이다(腳也)。」이는 독각인이다(則是獨腳人矣)。독비와 비교되며(以較獨臂),독각의 뜻은 장과 비슷하다(似獨腳於義為長)。이를테면 독비는(假令獨臂),즉 잔꾀와 솜씨가 좋다와 날으는 수레를 만들다 같이 참으로 어렵구나(則「잔꾀와 솜씨가 좋다(為機巧)」、「날으는 수레를 만들다(作飛車)」乃戛戛乎其難矣);다만 독각은(亦唯獨腳),비로소 길을 걷는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始痛感行路之艱),계가 높은 하늘을 그리워하며 빙빙 도는 까닭이다(翱翔雲天之思斯啟矣):그러므로 기고는 기굉보다 낫다(故奇股乃勝於奇肱)。


形天1與帝2至此3爭神,帝斷其首,葬之常羊之山4,乃以乳為目,以臍5為口,操干戚以舞6。

형천과 황제는 신이 되기 위해 싸웠는데, 황제는 형천의 머리를 베어, 상양산에 묻었다, 이에 형천은 젖꼭지는 눈이 되고, 배꼽은 입이 되었으며, 도끼와 방패를 들고 춤을 춘다.


1 원가기록(珂案):형천(形天),책 마다 다르다(書各不同)。왕념손(王念孫)云:「도잠(陶潛)독산해경시(讀山海經詩)正作형요(形夭),見이노당시화(二老堂詩話),현재 책에 형천으로 고쳐 씀(今本改作形天)。당나라(唐)등자사비(等慈寺碑)(비석은 범수현에 있고(碑在氾水縣),당나라(唐)안사고(顏師古)지음(撰)『먼 친척의 죄로(疏屬之罪),길을 잃고 헤매네(方滯迷塗);형요의 넋은(刑夭之魂),오랜동안 기나긴 밤을 도는구나(久淪長夜)。』도장본(道藏本)산해경도찬(山海經圖讚)亦作형요(形夭)。회남자(淮南)지형편(墬形篇)『서쪽에 있는 형잔시(西方有形殘之尸)』,유적(劉績)注引이는 형요로 쓴다(此作形夭),유양잡조(酉陽雜俎)낙고기(諾皋記)作형요(形夭),초본(鈔本)태평어람(御覽)三百七十一、五百七十四、八百七十四並作형요(形夭),八百八十七同。」왕념손의 설명하는 형요와 비슷하다(王似主張作形夭者)。然查影송본(宋本)태평어람(御覽),卷五七四、三七一固作형요(形夭),卷五五五則作형천(邢天),卷八八七作형요(刑夭),포숭성(鮑崇城)校本卷五五五作형천(刑天),현재 책(今本)도정절집(陶靖節集)독산해경시(讀山海經詩)亦作형천(刑天),형요는 형천의 뜻을 따라간다(依義刑天長於形夭)。천은(天),갑골 문자로 게 쓰이고(甲骨文作),금문에는 게 쓰으며(金文作),와 은 모두 사람의 머리 모양이다(均象人首),정이 전의 뜻이 되었고(義為顛為頂),형천은 단수의 의미이다(刑天蓋即斷首之意)。형천의 뜻은(意此刑天者),처음 책에는 이름 없는 하늘 신이었으나(初本無名天神),머리가 잘리고 난 뒤에(斷首之後),처음으로 형천이라는 이름이 되었다(始名之為「형천(刑天)」。형요는(或作形夭),몸의 모양이 박살났다는 의미로(義為形體夭殘),통한다(亦通)。다만 형천과 형요는 의미가 같지 않다(惟作形天、刑夭則不可通)。

2 원가기록(珂案):제는(帝),천제다(天帝);이는 황제를 가리키며(此指黃帝),자세한 설명은 뒤 나옴(說詳後)。

3 원가기록(珂案):태평어람(御覽)各卷(三七一、五五五、五七四、八八七)引경문에 두 글자는 모두 없다(經均無「이차(至此)」二字),두 글자는 덧붙임 글자(「이차(至此)」二字衍)。

4 학의행(郝懿行)云:「송서(宋書)부서지(符瑞志)云:『여등은 상양산에서 머리가 용인 신에게 감응을 받아(有神龍首感女登於常羊山),염제 신농을 낳았다(生炎帝神農)。』이것이다(即此也)。대황서경(大荒西經)편구와 상양산이 있다(有偏勾、常羊之山),역시 이것이다(亦即此)。」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맞다(是也),자세한 설명은 뒤 나옴(說詳後)。

5 원가기록(珂案):제는(臍),태평어람(御覽)卷三七一、五七四、八八七均引作제(齊)。제는(齊),옛날에 제로 통했다(古通臍);춘추좌씨전(左傳)장공(莊公) 육 년(六年):「등국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亡鄧國者), 반드시 이 사람입니다(必此人也). 만약 일찍 계획하지 않는다면(若不早圖), 나중에 임금께서는 이미 때가 늦을 것입니다(後君噬齊)。서제(噬臍)사람에게 쫓긴 사향노루가 제 배꼽 향내 때문에 잡힌다고 여겨 자기 배꼽을 물어 뜯으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의미

6 곽박(郭璞)云:「간은(干),순이다(盾);척은(戚),부다(斧也):이것이 무수민이 되었다(是為無首之民)。」

   원가기록(珂案):형천은(刑天),염제의 신하다(炎帝之臣);형천의 신화는(刑天之神話),황제와 염제의 투쟁신화의 일부분이며(乃黃帝與炎帝鬥爭神話之一部分),글의 투는 쓰러지고 나태하다는 뜻이고(狀其鬥志靡懈),사는 생기가 없다는 뜻(死猶未已也)。태평어람(御覽)七九引귀장(歸藏):「옛날에 황제와 염제가 탁록의 들판에서 전쟁을 하였는데(昔黃神與炎神爭鬥涿鹿之野),전쟁에 앞서(將戰),무함에게 점을 쳤다(筮於巫咸),曰:『끝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果哉而有咎)。』」여씨춘추(呂氏春秋)탕병편(蕩兵篇):「전쟁에 참가했던 자들은(兵所自來者久矣),황제와 염제가 물과 불을 사용했다 하더라(黃炎故用水火矣)。」회남자(淮南子)병략편(兵略篇):「염제가 불을 일으켰기 때문에(炎帝為火災),황제에게 사로잡혔다(故黃帝禽之)。」대대례(大戴禮)오제덕(五帝德):「황제는 곰과 말곰과 비휴와 표범과 범으로 하여금(黃帝教熊、羆、貔、豹、虎),판천의 들판에서 적제와 전쟁을 하였고(以與赤帝戰於版泉之野),세 번의 싸움 끝에 그 뜻을 이루었다(三戰然後得行其志)。」이는 전국시대 부터 진한시대까지 황제와 염제의 투쟁전설이 관련되어 있다(是自戰國至秦漢咸有關於黃炎鬥爭之傳說)。염제가 전쟁에서 지자(炎帝兵敗),이에 치우가 들고 일어나 황제와 맞서 겨루었다(乃又有蚩尤崛起以與黃帝頡抗)。치우는(蚩尤者),「염제의 후손(炎帝之後)」(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모음(輯)둔갑개산도(遁甲開山圖)),염제의 신하이고(亦炎帝之臣也(세본(世本)송충(宋衷)설명(注))),대황북경(大荒北經)謂「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공격했다(蚩尤作兵伐黃帝)」者,염제의 복수를 위해 전쟁을 하다가 졌다(蓋為兵敗之炎帝復仇也)。치우와 황제의 싸움은(蚩尤與黃帝之戰),고대신화전설 중 큰 전쟁이고(乃古代神話傳說中一大戰爭),서경(書)여형(呂刑)「치우가 처음 반란을 하였다(蚩尤唯始作亂)」云云,그 줄거리는 이미 기록되었다(即已記其大要矣)。산해경(山海經)과보를 되돌아 보면(復涉夸父),謂「응룡은 치우을 이미 죽였고(應龍(황제의 신룡(黃帝神龍))已殺蚩尤),또한 과보도 죽였다(又殺夸父)」(대황북경(大荒北經)),「응룡은 치우와 과보를 죽였다(應龍殺蚩尤與夸父)」(대황동경(大荒東經))。과보는(夸父者),대황북경(大荒北經)云:「후토가 신을 낳았고(后土生信),신은 과보를 낳았다(信生夸父)。」而해내경(海內經)후토는 염제의 후손이라 하며(謂后土為炎帝之裔),이 과보 역시 염제의 후손이다(是夸父亦炎帝之裔也)。황제와 치우가 전쟁을 하는 중에(在黃帝與蚩尤之戰中),과보는 스스로 치우의 군단과 함께 하였고(夸父自亦當參加蚩尤戰團),응룡에게 잇따라 죽음을 당했다(因而始相繼為應龍所「살(殺)」)。치우와 과보가 목숨을 잃은 뒤에(蚩尤與夸父喪亡後),형천이 방패와 창을 쥐고 춤을 추었다(乃又有刑天舞其干戚),「신이 되기 위해 황제와 싸움(與帝爭神)」。형천은(刑天者),염제의 신하이고(炎帝之臣),또는 염제의 후손이다(或亦炎帝之後也)。노사(路史)후기삼(後紀三)云:「염제의 명으로 형천이 부리의 음악을 만들었고(炎帝乃命邢天作扶犁之樂),풍년이라는 시를 만들어(制豐年之詠),미래를 다스리기 위해 천거하였고(以薦釐來),이것을 하모라 하였다(是曰下謀)。」此형천(邢天)即송본(宋本)태평어람(御覽)五五五所引此經현천(邢天),亦포숭성(鮑)校本八八七所引此經형천(邢天)也。노사(路史)기록의 뒤부분이(所記雖較晚),옛날의 이야기가 들러붙으면서(當亦有古說憑依),안타깝게도 옛날 책에서 흩어져 없어저 잃어버렸고(惜典籍佚亡),찾아서 밝혀야 한다(難尋究矣)。그러므로(然「형천과 황제가 신이 되기 위해 싸우고(刑天與帝爭神),황제는 그의 머리를 잘라(帝斷其首),상양산에 묻었다(葬之常羊之山)」,상양산은 염제가 신인 된 곳이라고 전해지며(常羊山傳又為炎帝降生之處),춘추위원(春秋緯元)명포(命苞)(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모음(輯))云:「소전의 아내 안등은(少典妃安登),화양으로 놀러갔다(遊于華陽),상양산에서 머리가 용인 신에게 감응을 받아(有神龍首感之於常羊),신농을 낳았다(生神農)。」이는 상양에서 염제를 낳았다(是炎帝生於常羊),한인들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漢人已有成說矣)。대황서경(大荒西經)이른바(所謂)「편구와 산양산에 있다(有偏句、常羊之山)」者,이 상양과 형천의 머리가 상양에서 잘렸다는(此常羊與刑天斷首之常羊),염제는 상양에서 신이 되었고(炎帝降生之常羊),모두 서쪽에 있다(俱在西方),상양 하나임이 틀림없다(自是同一常羊無疑)。이 형천의 전설과 염제전설의 관계는(是刑天傳說與炎帝傳說之關係),글이 은근하여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거미가 줄을 뽑아내고 말이 발자국을 남기듯이 깊이 음미하여야 속뜻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豈不仍有蛛絲馬跡可尋乎)?형천은(則刑天者),치우와 과보처럼(亦猶蚩尤夸父),염제의 복수를 위해 들고 일어나(奮起而為炎帝復仇),황제에게 버티며 다투었다(以與黃帝抗爭者也)。상양산 북쪽은(常羊山北),여러 가지 일을 겪어 지내오며 나누어진 땅으로(經歷數地)헌원국이다(即是軒轅國),헌원은(軒轅),황제의 호이고(黃帝之號),형천의 머리가 묻힌 상양과 신이 되기 위한 황제의 싸움은(則葬首常羊之刑天所與「쟁신(爭神)」之「제(帝)」),어찌 황제라 하겠는가(豈非黃帝而何)?헌원은 상양의 한 지역이고(蓋軒轅常羊一帶),모두 황제와 염제의 투쟁신화전설의 범위에 들어간다(均屬黃炎鬥爭神話傳說之範圍)。「들판에 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野火燒不盡),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春風吹又生)」(백거이(白居)역초(易草)),이는 치우와 형천은 모두 거대한 사람이고 먼저 나아가고 뒤에서 따르는 투쟁정신의 가장 좋은 인물이다(是蚩尤刑天諸巨人前仆後繼鬥爭精神之最好寫照也)。而도잠(陶潛)독산해경시(讀山海經詩),稱「형천은 춤과 방패를 들고 춤을 추니(刑天舞干戚),용맹한 뜻이 언제나 변함없네(猛志固常在)」,치우는 이 목이 잘린 영웅의 뛰어나게 훌륭함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신의 모습을 얻을 수 있었다(為尤能得此斷頭英雄凌厲無前之神態)。


女祭女戚在其北,居兩水閒,戚操魚1,祭操俎2。

여제와 여척은 그 북쪽에 산다, 양수 사이에 살며, 척은 뿔잔을 쥐고, 제는 적대를 쥐었다.


1 곽박(郭璞)云:「선은(鱓),물고기 종류다(魚屬)。」왕념손(王念孫)云:「대황서경(大荒西經):『한황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有寒荒之國),여제와 여멸 두사람이 있다(有二人女祭女薎)。』注云:『선을 손에 쥐거나(或持鱓),조를 손에 쥐거나(或持俎)。』글에 나온 여척은 여멸로 바꾸어야 하므로(案此女戚亦當作女薎),위에 나온 척은 멸이 잘못된 것이다(因上文干戚文而誤為戚也)。어저는 뿔로 만든 잔으로 바꾸어야 하며(魚(원가기록(珂案):왕념손(王念孫)이 글자가 쓰인 항인본이 근거이고(所據項絪本作此字),송본(宋本)、장경(藏經)本同)當為角觶),注內『치는(觶),물고기 종류다(魚屬)』當為『각단은(角觛),뿔잔 종류(觶屬)』。설문해자(說文)(四):『단은(觛),작은 뿔잔(小觶也)。』」원가기록(珂案):王校語中「각치(角觶)」疑當作「각단(角觛)」,처음과 위아래 문장이 서로 어울린다(始與上下文相應)。이에 따라서(據此),여제와 여척 이들은 여자 무당이 제사를 지내는 그림(則女祭女戚當是女巫祀神之圖象也)。

2 곽박(郭璞)云:「고기를 놓는 작은 상(肉几)。」


䳐鳥、𪆻鳥1,其色青黃,所經國亡2。

차조와 첨조는, 그 색이 푸르고 누렇다, 지나간 나라는 망한다.


在女祭北。

여제 북쪽에 있다.


䳐鳥人面,居山上。

차조는 사람 얼굴을 하고, 산 위에 산다.


一曰維鳥,青鳥、黃鳥所集3。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유조인, 청조와 황조는 모여 산다.


1 곽박(郭璞)云:「차와 첨(次、瞻)兩音。」

2 곽박(郭璞)云:「이 불길한 새는(此應禍之鳥),현재 올빼미와 부엉이 종류(即今梟、鵂鶹之類)。」

3 필원(畢沅)云:「옛날에 차와 첨은 없는 글자이고(古無䳐、𪆻字),이것들은 유조라 해야(是云維鳥云云),맞다(是也),아래 나오는 장부국은 유조 북쪽에 있다(下丈夫國亦云在維鳥北)。」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원단산에(有元丹之山),오색조가 있는데(有五色之鳥),사람 얼굴에 머리털이 있다(人面有髮)。여기 있는 청문와 황오는(爰有青、黃鷔),푸른 새와 누런 새이고(青鳥、黃鳥),그것들이 모여 살면 그 나라는 망한다(其所集者其國亡)。」即此。문과 오는 바로 차와 첨의 다른 이름이다(乃䳐、𪆻之異名)。청조와 황조는 차조와 첨조고(青鳥、黃鳥即䳐鳥、𪆻鳥),亦即대황서경(大荒西經)之청문과 황오(青、黃鷔),자세한 설명(說詳)대황서경(大荒西經)該節注。


丈夫國在維鳥北,其為人衣冠帶劍1。

장부국은 유조 북쪽에 있다, 그곳 사람은 옷과 갓을 차려입고 칼을 차고 있다.


1 곽박(郭璞)云:「은나라 임금 태무는 왕맹에게 약을 채취하라 하였고(殷帝太戊使王孟採藥),서왕모를 찾아다니다 이곳에 이르렀는데(從西王母至此),식량이 다 떨어졌고(絕糧),더는 나아갈 수 없었기에(不能進),나무의 열매를 먹고(食木實),나무 껍질을 입었다(衣木皮),죽을 때까지 아내를 들이지 않았으나(終身無妻),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而生二子),낳다가 죽었다(從形中出),그 아비가 죽고(其父即死),이들이 무부민이 되었다(是為丈夫民)。」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무부민이 있다(有丈夫民);대황서경(大荒西經)亦云:「무부국이 있다(有丈夫之國)。」태평어람(太平御覽)卷三六一引현중기(玄中記)云:「무부민(丈夫民)。은나라 임금 태무는 왕영에게 서왕모가 있는 곳에서 약을 채취하라 하였고(殷帝太戊使王英採藥於西王母),이곳에 이르러 식량이 떨여저(至此絕糧),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不能進),이에 나무 열매를 먹고(乃食木實),나무 껍질을 입었다(衣以木皮)。죽을 때까지 아내를 들이지 않았으나(終身無妻),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產子二人),등과 옆구리 사이에서 나오며 죽었다(從背脅間出),그 아비가 죽고(其父則死),이들이 무부민이 되었다(是為丈夫民)。옥문에서 이만 리 가야한다(去玉門二萬里)。」같은 책(同書)卷七九0引괄지도(括地圖)글자도 거의 같다(文略同),唯「왕영(王英)」仍作「왕맹(王孟)」,「등과 옆구리 사이에서 나오며 죽었다(從背脅間出)」作「등 사이에서 나오며 죽었다(從背間出)」。


女丑之尸,生而十日炙殺之1。

여축시는, 산 채로 열 개의 해에 타죽었다.


在丈夫北。

장부국 북쪽에 있다.


以右手鄣其面2。

오른손으로 그 얼굴을 가렸다.


十日居上,女丑居山之上。

열 개의 해는 위에 있고, 여축은 산의 위에 산다.


1 학의행(郝懿行)云:「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떠서(十日并出),여축이 타죽자(炙殺女丑),이에 요임금은 명을 내려 예가 아홉 개의 해을 활로 쏴 죽였다(於是堯乃命羿射殺九日也)。」원가기록(珂案):이는 확실히 학의행이 생각한 글이기 때문에(此固郝推想之詞),주관적일 생각일 수 있다(然亦頗有此可能);열 개의 해가 나란이 뜬 이유는 옛날 책에 나오며(因十日並出事見於典籍者),제외(除)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떠서(十日并出),세상 모든 것을 비추었다(萬物皆照)」,초사(楚辭)초혼(招魂)「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떠서(十日并(병은 원래 대로 쓰여있고(並原作代),근거(據)문일다(聞一多)초사교보(楚辭校補)고침(改))出),금과 돌이 녹아 내렸다(流金礫石)」及곽박(郭璞)注해외동경(海外東經)引죽서(竹書)「윤갑이 서하에 자리잡자(胤甲居西河),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떴다(十日并出)」外,以회남자(淮南子)본경편(本經篇)나온(所著)「요임금 시대(堯之時),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떴다(十日并出)」가장 오래된 기록(事為最古)。그러므로(然)이른바(所謂)「자살(炙殺)」,이는 무당을 뙤약볕에 묶어 놓는 의식(疑乃暴巫之象),여축은 여자 무당으로 의심(女丑疑即女巫也)。옛날에 가뭄이 들면 비가 내리길 바랐는데(古天旱求雨),무당을 뙤약볕에 묶어 놓거나 무당을 불태우는 일이 있었다(有暴巫焚巫之舉)。논어(論衡)명우편(明雩篇):「노나라 목공 시대에(魯繆公之時),그 해에 가뭄이 들자(歲旱),목공이 현자에게 물었다(繆公問縣子):『과인이 폭무를 하고자 하는데(寡人欲暴巫),어떠한가(奚如)?』」춘추좌씨전(左傳)희공 이십 일 년(僖公二十一年):「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夏大旱),공이 무왕을 불태우려고 했다(公(노나라 희공(魯僖公)——珂)欲焚巫尪)。」이것이 그 증거이다(是其證矣)。폭무와 분무는(暴巫焚巫者),폭무와 분무가 아니고(非暴巫焚巫也),이는 여자 무당을 꾸며 햇볕에 말리고 불사질러 액막이를 해 가뭄을 물리치는 것(乃以女巫飾為旱魃而暴之焚之以禳災也),폭무는 폭발이다(暴巫即暴魃也)。여축은 푸른 옷을 입었다(女丑衣青(見대황서경(大荒西經))),한발 역시 푸른 옷을 입었으며(旱魃亦衣青(見대황북경(大荒北經))),이것은 여축을 꾸며 햇볕을 쬐게하여 가뭄을 물리치는 것((是女丑飾為旱魃而被暴也)。아래 나온(下文)「(여축(女丑))오른손으로 그 얼굴을 가렸다(以右手鄣其面)」及「열 개의 해 위에 있고(十日居上),여축은 산 위에 산다(女丑居山之上)」語,햇볕을 쬐게하여 몹시 괴롭고 힘들어 견디지 못하는 모양(均被暴而不勝其楚毒之象)。열 개의 해가 여축을 불태워 죽였다(及十日炙殺女丑),乃有「요임금은 예로 하여금(堯使羿)」或요임금이 스스로 활을 하늘로 쏘아 아홉 개의 해를 처리하였다(堯自身上射九日之舉也)(자세한 설명(說詳)해외동경(海外東經)「탕곡(湯谷)열 개의 해(十日)」節注)。

2 곽박(郭璞)云:「얼굴을 가리다(蔽面)。」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有人衣青),소매로 얼굴을 가렸다(以袂蔽面),이름을 여축시라 한다(名曰女丑之尸)。」곽박(郭)설명(注)근거(本此)。


巫咸國1在女丑北,右手操青蛇,左手操赤蛇,在登葆山,群巫所從上下也2。

무함국은 여축 북쪽에 있다, 오른손에 푸른 뱀을 쥐고, 왼손에 붉은 뱀을 쥐었다, 등보산이 있는데, 무당들이 무리지어 산을 오르내렸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대황의 안에(大荒之中),이름이 풍저옥문이라는 산이 있는데(有山名曰豐沮玉門),해와 달이 드나드는 곳이다(日月所入)。영산이 있는데(有靈山),무함과 무즉과 무분과 무팽과 무고와 무진과 무례와 무저와 무사와 무라라는 열 명의 무녀는(巫咸、巫即、巫、巫彭、巫姑、巫真、巫禮、巫抵、巫謝、巫羅十巫),무리지어 산을 오르내렸다(從此升降),온갖 약들이 있다(百藥爰在)。」대황남경(大荒南經)云:「대황의 안에(大荒之中),또 등비산이 있다(又有登備之山)。」곽박(郭璞)注:「등과산은(即登葆山),무당들이 무리지어 오르내리는 곳(群巫所從上下也)。」무함국은(則巫咸國者),한 무리의 무당들이 모여 만든 나라이다(乃一群巫師組織之國家也)。세본(世本)작편(作篇):「무함은 점을 본다(巫咸作筮)。」송충(宋衷)注:「무함은(巫咸),어느 시대 사람인지 알지 못함(不知何時人)。」而노사(路史)후기삼(後紀三)乃신농이 무함에게 점을 치라 한 것을 보면(謂神農使巫咸主筮),무함은 신농 시대 사람이다(則巫咸神農時人也);태평어람(御覽)七九引귀장(歸藏):「옛날에 황제와 염제가 탁록의 들판에서 전쟁을 하였는데(昔黃神與炎神爭鬥涿鹿之野),전쟁에 앞서(將戰),무함에게 점을 쳤다(筮於巫咸),曰:『끝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果哉而有咎)。』」무함은 황제 시대 사람이다(則巫咸黃帝時人也);태평어람(御覽)卷七二一引세본(世本)송주(宋注)云:「무함은(巫咸),요임금의 신하다(堯臣也),기러기를 수술하여 요임금의 의사가 되었다(以鴻術為帝堯醫)。」이 무함은 요임금 시대 사람이다(是巫咸又堯時人也):모든 설명이 같지 않다(諸說不同)。而태평어람(御覽)七九0引외국도(外國圖)云:「옛날에 은나라 임금 대무는 무함에게 산과 강에서 기도를 하게 하여(昔殷帝大戊使巫咸禱於山河),무함은 이곳에서 살았다(巫咸居於此),이들이 무함민이 되었다(是為巫咸民),남해에서 일만 일천 리 가야한다(去南海萬千里)。」가장 자세하고 분명하다(最為詳明)。왕일(王逸)注초사(楚辭)이소(離騷)亦云:「무함은(巫咸),옛날 영감무다(古神巫也),은나라 중종의 시대(當殷中宗之世)。」은나라 중종은 은나라 임금 대무고(殷中宗即殷帝大戊(사기(史記)은본기(殷本紀)作태무(太戊)),바로 이 무함은(是此巫咸),은나라 시대 무함이다(當即是殷時巫咸也)。그러므로 외국도에 나온 무함민은 남해에서 일만 일천 리 가야한다고 일컫었고(然外國圖謂巫咸民去南海萬千里),더불에 산해경이 말하는 서쪽의 무함국과 서로 맞지 않는다(又與山海經所說西方之巫咸國牴牾):끝나서 더는 알 수가 없다( 終莫可究詰矣)。

2 곽박(郭璞)云:「약초를 채집하기 위해 오가다(採藥往來)。」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蓋本대황서경(大荒西經)「열 명의 무녀는 무리지어 산을 오르내렸다(十巫從此升降),온갖 약들이 있다(百藥爰在)」為설명(說),자세히 들여다 보면(然細究之),「채약(採藥)」다만 이 무당의 무리들의 행위는 주된 직업이 아니고(只是群巫所作次要工作),그들의 주된 일은(其主要者),땅에는 신의 뜻을 베풀고 하늘에 백성들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다(厥為下宣神旨,上達民情)。등보산은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이고(登葆山蓋天梯也),「무당들이 무리지어 오르내리는 곳(群巫所從上下)」者,「오르고 내림(上下)」이는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이다(於此天梯也)。자세한 설명(說詳)해내경(海內經)「아홉 개의 언덕(九丘)건목(建木)」節注。


并封1在巫咸東,其狀如彘,前後皆有首,黑2。

병봉은 무함 동쪽에 있다, 그 모양이 멧돼지 같고, 앞 뒤로 모두 머리가 있고, 검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짐승이 있는데(有獸),왼쪽과 오른쪽에 머리가 있고(左右有首),이름을 병봉이라 한다(名曰屏蓬)。」주서(周書)왕회편(王會篇)云:「구양에 별봉이 있는데(區陽以鱉封),별봉은(鱉封者),멧돼지 같고(若彘),앞뒤에 모두 머리가 있다(前後皆有首)。」이 병봉과 병봉과 별봉은 모두 전해지는 소리이고(是并封、屏逢、鱉封皆聲之轉),하나의 물건이다(實一物也)。문일다(聞一多)복희고(伏羲考)(見문일다(聞一多)전집 제 일책(全集第一冊))병봉과 병봉은 본래 병봉으로 쓰여야 한다(謂并封、屏蓬本字當作「병봉(并逢)」),「병(并)」與「봉(逢)」모두 짝을 이룬다는 뜻이있고(俱有合義),이는 짐승의 암수가 합쳐진 모양(乃獸牝牡相合之象也),그 설명이 매우 맞다(其說甚是)。추측할 수 있는 말로(推而言之),뱀의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머리와 새의 두 개의 머리(蛇之兩頭、鳥之二首者),역시 모두 병봉과 병봉의 종류이고(亦均并封、屏蓬之類),신화가 변하여 다른 모양의 물건이 됨(神話化遂為異形之物矣)。

2 곽박(郭璞)云:「현재 뇌현사 역시 이 종류(今弩弦蛇亦此類也)。」학의행(郝懿行)云:「뇌현사는 두 개의 머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뱀이다(弩弦蛇即兩頭蛇也),見이아(爾雅)석지(釋地)지수사(枳首蛇)注。」원가기록(珂案):이아(爾雅)석지(釋地)지수사(枳首蛇)곽박(郭璞)注云:「기두사다(岐頭蛇也)。혹은 강동에서는 두 개의 머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뱀을 원왕약발이라 한다(或曰今江東呼兩頭蛇為越王約髮),역시 이름이 뇌현이다(亦名弩弦)。」


女子國1在巫咸北,兩女子居,水2周之3。

여자국은 무함 북쪽에 있다, 두 여자가 살며, 물이 둥글게 에워쌌다.


一曰居一門中4。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한 집에서 산다.


1 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여자민이 있다(有女子民)。대황서경(大荒西經)云:「여자국이 있다(有女子之國)。」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云:「(옥저(沃沮))노인이 말하길(耆老言):한 나라가 바다 안에 있는데(有一國亦在海中),오로지 여자고 남자는 없다(純女無男)。」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云:「그 나라에는 신령한 우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或傳其國有神井),들여다보면 바로 아이를 낳는다(窺之輒生子)。」이 종류다(即此類也)。

2 원가기록(珂案):태평어람(御覽)七九0引이 경문에는 물 다음에 외자가 있다(此經水下有外字)。

3 곽박(郭璞)云:「누런 연못이 있는데(有黃池),결혼한 여자가 들어가 몸을 씻으면(婦人入浴),임신과 출산을 한다(出即懷妊矣)。사내아이를 낳으면(若生男子),세 살이 되자마자 죽는다(三歲輒死)。주는 마땅히 요다(周猶繞也)。이소(離騷)曰:궁궐 아래쪽을 물이 에워쌌다(水周於堂下也)。」원가기록(珂案):태평어람(御覽)三九五引외국도(外國圖)云:「방구의 위쪽은(方丘之上),덥고 습하며 사내아이가 태어나면(暑溼生男子),삼 년이 되는 해에 죽는다(三年而死)。황수가 있는데(有黃水),혼인한 여자가 들어가 몸을 씻으면(婦人入浴),젖이 나온다(出則乳矣)。거구는 이만 사천 리로 의심(去九嶷二萬四千里)。」蓋本곽박(郭)설명(注)為설명(說)也。

4 학의행(郝懿行)云:「한 집에서 산다는(居一門中),여국이 함께 모여사는 곳이라 일컫는다(蓋謂女國所居同一聚落也)。」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틀림(非也)。이른바(所謂)「한 집에서 산다(居一門中)」者,그림과 같이(亦圖象如此),오히려 두 여자가 살며 물이 에워쌌다는 또 다른 그림이 된 이유다(猶「두 여자가 살며(兩女子居),물이 에워쌌다(水周之)」之為另一圖象然)。


軒轅之國1在此2窮山之際3,其不壽者八百歲。

헌원국은 궁산의 끝에 이 있다, 그곳에서는 일찍 죽은 사람이 팔백 살이다。


在女子國北。

여자국 북쪽에 있다.


人面蛇身4,尾交首上。

얼굴은 사람에 몸은 뱀이고, 꼬리가 머리 위에 맞닿아 있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헌원국이 있는데(有軒轅之國),강과 산의 남쪽에 살면 좋고(江山之南棲為吉),오래살지 못하는 사람이 팔백 살이다(不壽者乃八百歲)。」서차삼경(西次三經)헌원구가 있다(有軒轅之丘),곽박(郭)설명(注)云:「황제가 이곳에 산다(黃帝居此)。」

2 실명(失名)云:「박물지(博物志)차는 없는 글자(無此字),태평어람(太平御覽)(卷七九0)引경문 역시 차는 없는 글자(經亦無此字)。」학의행(郝懿行)云:「경문의 차는 덧붙인 것으로 의심(經文此字疑衍)。이선(李善)注(문선(文選))사현부(思玄賦)引경문(此經)云:『궁산의 끝에 있다(在窮山之際)。』사기(史記)오제기(五帝紀)색은(索隱)引이 경문과 같다(此經同),모두 차는 없는 글자(并無此字)。」

3 곽박(郭璞)云:「그 나라는 산의 남쪽 끝에 있다(其國在山南邊也)。대황경(大荒經)曰:민산 산맥의 남쪽(岷山之南)。」학의행(郝懿行)云:「대황서경(大荒西經)설명(說)헌원국과 강과 산의 남쪽은(軒轅之國江山之南),민산 산맥을 말하며(此云岷山者),민산 산맥에서 큰 강이 나오기 때문이다(以大江出岷山故也)。」

4 원가기록(珂案):옛날 하늘 신은 사람 얼굴에 뱀 몸이 많고(古天神多為人面蛇身),책을 지은 사람들이 추천한 것은(舉其著者),복희와 여왜와 공공과 상류와 알유와 이부 등이 이와 같다(如伏羲、女媧、共工、相柳、窫窳、貳負等是矣);혹은 용 몸에 사람 머리이다(或龍身人頭):뇌신과 촉룡과 고 등이 이와 같다(如雷神、燭龍、鼓等是矣),역시 사람 얼굴에 뱀 몸 같은 모양(亦人面蛇身之同型也)。이 말은 헌원국 사람들은 사람 얼굴에 뱀 몸이고(此言軒轅國人人面蛇身),확실히 이들은 신의 자식의 모양이고(固是神子之態),추측할 수 있는 말로(推而言之),옛부터 황제도 이런 모양으로 쓰여 졌다(古傳黃帝或亦當作此形貌也)。


窮山1在其北,不敢西射,畏軒轅之丘2。

궁산은 그 북쪽에 있다, 감히 서쪽으로 활을 쏘지 못하는 건, 헌원구가 두려워서다.


在軒轅國北。

헌원국 북쪽에 있다.


其丘方,四蛇相繞3。

그 언덕은 네모나며, 네 마리 뱀이 서로 감싸고 있다.


1 원가기록(珂案):초사(楚辭)천문(天問)云:「곤이 궁의 험난한 길을 걸어 서쪽으로 가니(阻窮西征),바위를 어찌 넘었을까(巖何越焉)?죽어서는 누런 곰이 되었으니(化為黃熊),무당이 어찌 되살릴 수 있는가(巫何活焉)?검은 기장을 충분히 뿌리고(咸播秬黍),부들과 물억새를 올바르게 관리하였다(莆雚是營);어찌 사흉으로 몰려 쫓겨나고(何由並投),곤의 결점만 오래도록 충만할까(而鯀疾修盈)?」이 몇 마디 말은 옛부터 지금까지 그 해석이 어쩔 수 없이 많다(此數語自來多不得其解)。自당란(唐蘭)천문(天問)「곤이 궁의 험난한 길을 걸어 서쪽으로 가니阻窮西征」새로운 해석(新解)(우공반월간(禹貢半月刊)第七卷第一二三期合刊)한 문에 나온(一文出),謂「궁(窮)」即산해경(山海經)해외서경(海外西經)「궁산(窮山)」,「곤의 주검을 가르자 우가 태어났다(鯀尸剖而生禹),그 시체는 누런 곰으로 변하여 서쪽으로 갔고(其尸體遂化為黃熊而西征),궁산에서 가로막혀(被阻於窮山),남쪽에 있는 바위를 넘어갔으며(卒越巖而南),모든 무당들에게 되살려달라 청하였다(求活於諸巫)」,이 활은 관으로 여겨진다(乃豁然貫通焉)。곤이 궁에서 막힘을 당한 곳은(鯀所被「조(阻)」之「궁(窮)」),확실히 궁산이고(確即此窮山),무함국은 그 남쪽에 있기 때문에(因巫咸國在其南),거리가 이곳에서 멀지 않다(去此不遠也)。

2 곽박(郭璞)云:「황제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공경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言敬畏黃帝威靈),서쪽을 향아여 함부로 활을 쏘지 못함(故不敢向西而射也)。」원가기록(珂案):헌원구는 서왕모가 사는 옥산의 서쪽으로 사백 팔십 리 떨어져 있다(軒轅之丘在西王母所居玉山之西四百八十里),見서차삼경(西次三經)。

3 곽박(郭璞)云:「칭칭 감겨 엉겨 붙어 얽힘(繚繞樛纏)。」원가기록(珂案):이 언덕을 경계하고 보호함(蓋護衛此丘也)。


此諸夭之野1,鸞鳥自歌,鳳鳥自舞;

이 제요의 들판은, 난조는 스스로 노래하고, 봉조는 스스로 춤을 춘다.


鳳皇卵,民食之;

봉황의 알은, 백성들의 먹거리다. 


甘露2,民飲之,所欲自從也3。

단 이슬은, 백성들의 마실거리다, 하고자 하는 일이 절로 이루어진다.


百獸相與群居。

온갖 짐승이 더불어 함께 산다.


在四蛇北。

네 마리의 뱀 북쪽에 있다.


其人兩手操卵食之,兩鳥居前導之4。

그곳 사람은 양 손에 알을 쥐고 먹는다, 두 마리의 새가 앞에서 이끌고 있다。


1 곽박(郭璞)云:「요(夭)音요(妖)。」학의행(郝懿行)云:「경문 차는 덧붙인 글자(經文此字亦衍)。요(夭)곽박(郭)音요(妖),잘못됨(蓋訛)。요야는(夭野),대황서경(大荒西經)作옥야(沃野),이 경문의 요는(是此經之夭),도리어 옥자는 문구를 생략했고(乃沃字省文),곽박이 설명한 요는 옥자가 잘못된 글(郭注之妖乃沃字訛文也)。제요는(諸夭),예문유취(藝文類聚)九十九卷引作청옥(清沃),박물지(博物志)作저옥(渚沃),회남자(淮南)지형훈(墬形訓)有옥민(沃民)。又云『서쪽은 금구라고 하며(西方曰金丘),옥야라고도 한다(曰沃野)』,고유(高誘)注云:『옥은 백이다(沃猶白也),서방 백이기 때문에 옥야라 한다(西方白故曰沃野)。』기록(案)고유(高)설명(說)틀림(非也),옥야는 그 땅이 기름지고 생산물이 풍족한 것을 말한다(沃野蓋謂其地沃饒耳)。」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맞다(是也)。송본(宋本)곽박(郭)注「요(夭)音요(妖)」,요는 옥으로 써야 한다(妖字正作沃),장경(藏經)本同,후세 사람들이 함부로 요로 고침(蓋後人妄改作妖耳)。그러므로 이 제요의 들판 글귀 다음에(然此「제요의 들판(諸夭之野)」句下),문자가 더해지고 빠진 것으로 의심(疑文字尚有闕脫)。다음 문장은(下文「봉황은 알은(鳳皇卵),백성의 먹거리이고(民食之),단 이슬은(甘露),백석의 마실거리다(民飲之)」),이와 함께(與「그곳 사람은 양 손에 알을 쥐고 먹으며(其人兩手操卵食之)」),어찌 그 민이 인인까(其「민(民)」其「인(人)」維何)?이유를 알 수 없다(無由知也)。대황서경(大荒西經)云:「옥국이 있는데(有沃之國),옥민이 이곳에 산다(沃民是處);옥의 들판에서(沃之野),봉조의 알을 먹고(鳳鳥之卵是食),단 이슬을 마신다(甘露是飲)。」그 민은 옥민이다(則其「민(民)」沃民也)。짐작하다(揆之)장형(張衡)사현부(思玄賦):「서해를 뛰어넘은 헌원은(超軒轅於西海),왕씨의 용어를 빼앗았다(跨汪氏之龍魚)。」필원(畢沅)설명(說)왕씨는 옥민은 잘못 쓴 것이(汪氏係沃民之誤),확실하다(良确);옥민의 뒤쪽에(以沃民之後),용어가 있다고 기록되었으므로(記有龍魚),옥민의 용어를 빼앗았다로 해야한다(故曰「跨沃民之龍魚」也)。경문에 알려진 이 글귀의 다음은(知經文此句之下),옥민 글자꼴이 있어야하고(當有「옥민(沃民)」字樣),대황서경에 나온 옥민이 이곳에 산다 그 다음 구절이 나온 것과 같다(如以대황서경(大荒西經)「옥민이 이곳에 산다(沃民是處)」補於其下),처와 무의 운는(則處與舞為韻),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솔기나 바느질한 흔적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다(亦天衣無縫也)。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해외 삼십 육 국 서북쪽에서 서남쪽까지에서 백민 뒤쪽에 옥민이 있다(海外三十六國自西北至西南方白民之後有沃民,以此)。해외서경(海外西經)서남쪽에서 서북쪽까지(係自西南至西北方),반대 반향이므로(方向適反),제요의 들판 뒤쪽에 백민국이 있다(故諸沃之野之後乃有白民之國)。기름진 들판에 민이나 인이 살고(則居於此沃野之其「민(民)」其「인(人))」,이들은 스스로 한 나라를 이루어 옥민이 되었다(當是自成一國之沃民也)。

2 원가기록(珂案):태평어람(太平御覽)卷十二引서응도(瑞應圖)云:「단 이슬은(甘露者),맛있는 이슬이다(美露也);영묘한 이슬의 종류이고(神露之精),인서의 연못(仁瑞之澤),그것의 굳기는 기름 같고(其凝如脂),그것의 달기는 엿 같으며(其甘如飴),고로라고도 하고(一名膏露),천주라고도 한다(一名天酒)。인서는 용이다」신이경(神異經)서북경(西北經)황경(荒經)云:「서북쪽 바다 밖(西北海外),키가 이천 리에 달하는 사람이 있는데(有人長二千里),두 다리 사이는 일천 리 떨어져 있고(兩腳中間相去千里),배의 둘레는 일천 육백 리에 이르며(腹圍一千六百里),하루에 천주 닷 말을 거림낌없이 마신다(但日飲天酒五斗)。」본래(原)注:「장화(張華)曰:천주는(天酒),단 이슬이다(甘露也)。」

3 곽박(郭璞)云:「영양분이 많고 맛이 좋은 음식이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은(言滋味無所不有),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며(所願得自在),이는 요야를 일컫는다(此謂夭野也)。」원가기록(珂案):곽박(郭)설명(注)요야(夭野),장경(藏經)本作옥야(沃野)。대황서경(大荒西經)云:「옥국이 있는데(有沃之國),옥민이 이곳에 산다(沃民是處),옥의 들판에서(沃之野),봉조의 알을 먹고(鳳鳥之卵是食),단 이슬을 마신다(甘露是飲)。모든 것이 있어(凡其所欲),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其味盡存)。여기에는 감화와 감사와 흰 버들과 시육과 삼추와 선괴와 요벽과 흰 나무와 낭간과 백단과 청단이 있다(爰有甘華、甘柤、白柳、視肉、三騅、璇瑰、瑤碧、白木、琅玕、白丹、青丹)。은과 쇠가 많다(多銀鐵)。난조는 스스로 노래하고(鸞鳥自歌),봉조는 스스로 춤을 춘다(鳳鳥自舞)。여기 있는 온갖 짐승은(爰有百獸),서로 무리지어 산다(相群爰處)。이곳을 일컬어 옥야라 한다(是謂沃之野)。」即此。

4 학의행(郝懿行)云:「그림도 이와 같다(亦言圖畫如此)。」


龍魚陵居在其北1,狀如貍2。

언덕에 사는 용어는 그 북쪽에 있고, 모양이 너구리 같다.


一曰3。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새우라고도 한다.


即有神聖乘此以行九野4。

신성한 자만이 이것을 타고 천하를 다닐 수 있다.


一曰鱉魚5在夭野北,其為魚也如鯉。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별어는 요야 북쪽에 있고, 그것은 잉어 같은 물고기다.


1 학의행(郝懿行)云:「용어는(龍魚),곽씨(郭氏)강부(江賦)作용리(龍鯉),장형(張衡)사현부(思玄賦)仍作용어(龍魚),회남자(淮南)지형훈(墬形訓)作농어(礲(현재 책에는 망이라 기록(按今本作硥)——珂)魚),고유(高誘)注云:『농어는 잉어 같다(礲魚如鯉魚也),신성한 사람이 있는데 구야를 타고 다니며(有神聖者乘行九野),무계민의 남쪽에 있다(在無繼民之南)。礲音방(蚌)。』」원가기록(珂案):용어는(龍魚),의심되는데(疑)即해내북경(海內北經)기록된(所記)능어(陵魚),모든 신화전설 속 인어의 종류다(蓋均神話傳說中人魚之類也)。용와 능은 하나의 소리로 전해지며(龍、陵一聲之轉),첫 번째(一也);용어는 언덕에 살고(龍魚陵居),능어는 물에서도 살 수 있고(陵魚當亦因其既可居水),또한 언덕에서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능어라 불리며(復可居陵而號陵魚),두 번째(二也);용어는 잉어와 비슷하고(龍魚似鯉),용리리고 일컫는다(謂之龍鯉),능어 역시 잉어와 비슷하고(陵魚亦似鯉),능이라고도 일컫는다(謂之陵鯉),세 번째(三也);龍魚「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一曰)새우(鰕)」,이아(爾雅)석어(釋魚)云「예 중에 큰 것을 하라고 일컫는다(鯢大者謂之鰕)」,본초강목(本草綱目)云「예어는(鯢魚),인어라고도 한다(一名人魚)」;이러한 능어(而「사람 얼굴에 손과 발은 물고기 몸을 했고 바다 속에 산다(人面手足魚身在海中)」之陵魚),바로 인어의 모양이다(正是人魚形貌),네 번째(四也)。이 네 번째에 있는(有此四者),용어라 일컫는 이유는 해내북경의 능어에 기록되어 있다(故謂龍魚即해내북경(海內北經)所記之陵魚)。

2 곽박(郭璞)云:「혹은(或)曰:용어는 너구리와 비슷하다(龍魚似貍),한 개의 뿔이 있다(一角)。」학의행(郝懿行)云:「너구리는 잉어로 바꾸어야 하며(貍當為鯉),잘못된 글자이다(字之訛)。이선(李善)注(문선(文選))강부(江賦)引이 경문(此經)云:『용리는 언덕에 살고(龍鯉陵居),그 모양은 잉어 같으며(其狀如鯉),혹은(或曰)용어는 한 개의 뿔이 있다(龍魚一角也)。』모두 다(蓋並)引곽박(郭)설명(注)。又설명(注)사현부(思玄賦)引이 경문(此經)云:『용어가 사는 언덕은 북쪽에 있고(龍魚陵居在北),모양은 잉어 같다(狀如鯉)。』고유(高誘)注회남자(淮南)지형훈(墬形訓)亦云『잉어 같다(如鯉魚也)』,증거가 된다(可證)。」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설명(說)맞다(是也),왕념손(王念孫)校亦同학의행(郝)설명(說)。송본(宋本)경문(經文)주석(注釋)리자는 모두 리로 쓰여있다(鯉字均作狸),장경(藏經)本주석(注釋)리로 쓰여 있다(作狸),역시 잘못됨(亦訛)。

3 곽박(郭璞)云:「音하(遐)。」필원(畢沅)云:「새우 같다고도 쓰며(一作如鰕),모양이 네 개의 다리가 있는 예어 같다(言狀如鯢魚有四腳也)。이아(爾雅)(석어(釋魚))云:『예 중에 큰 것을 하라고 일컫는다(鯢大者謂之鰕)。』」

4 곽박(郭璞)云:「구역의 들판(九域之野)。구역은 중국 전체 영토」원가기록(珂案):예문유취(藝文類聚)卷九十六引곽씨도찬(郭氏圖讚)曰:「용어는 한 개의 뿔이 있고(龍魚一角),잉어와 비슷하며 언덕에 산다(似鯉居陵);계절 마다 나오는데(候時而出),신성한 자만이 탄다(神聖攸乘);천하는 날라다니고(飛騖九域),구름 타고 하늘에 오른다(乘雲上升)。」알맞은 개요라 할 수 있다(可謂得其概要)。

5 곽박(郭璞)云:「별의 음은 나쁘게 뒤섞였다(鱉音惡橫也)。」학의행(郝懿行)云:「설명에 잘못된 글자가 있는데(注有訛字),所자세하지 않음(未詳);명장본(明藏本)作별(鱉),音유(猶)也,역시 잘못됨(亦訛)。」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곽박(郭)설명(注)「별음(鱉音)」다음에 공 한 글자(下空一字)。


白民之國1在龍魚北,白身被髮2。

백민국은 용어 북쪽에 있고, 흰 몸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有乘黃,其狀如狐,其背上有角3,乘之壽二千歲4。

승황이 있고(有乘黃), 그 모양(狀)이 여우(狐) 같다, 그 등 위에 뿔이 있고(其背上有角), 타고 다니면 이천 살까지 산다(乘之壽二千歲)


1 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백민이 있다(有白民)。대황서경(大荒西經)云:「대택장산이 있다(有大澤之長山)。백민국이 있다(有白民之國(백민은 원래 백씨이다(白民原作白氏),근거(據)송본(宋本)改——珂))。」이것이다(即此)。대황동경(大荒東經)云:「백민국이 있다(有白民之國)。제준은 제홍을 낳았고(帝俊生帝鴻),제홍은 백민을 낳았다(帝鴻生白民)。백민은 소씨 성을 쓰며(白民銷姓),기장을 먹고(黍食),네 마리 짐승을 부린다(使四鳥):범과 표범과 곰과 말곰(虎、豹、熊、羆)。」또 다른 나라이고(或當是另一國),틀렸다(非此)。참고(參見)대황동경(大荒東經)「백민국(白民國)」節注2。

2 곽박(郭璞)云:「그곳 사람들은 몸이 새하얗다(言其人體洞白)。」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고유(高誘)注云:「백민은 몸이 희고(白民白身),사람들은 머리털을 풀어헤치고 있으며(民被髮),머리털 역시 희다(髮亦白)。」

3 곽박(郭璞)云:「주서(周書)曰:『백민에 승황이 있는데(白民乘黃),여우 비슷하고(似狐),등 위로 두 개의 뿔이 있다(背上有兩角)。』비황이다(即飛黃也)。회남자(淮南子)曰:『천하가 태평하고(天下有道),비황은 마판에 엎드려 있다(飛黃伏皁)。』학의행(郝懿行)云:「주서(周書)왕회편(王會篇)云:『승황은 검푸른 말과 비슷하다(乘黃似騏)。』곽박(郭)引여우와 비슷하다고 했다(作似狐)。초학기(初學記)(卷二十九)引與곽박(郭)같다(同)。박물지(博物志)(외국(外國))亦作여우(狐)。두 개의 뿔은(兩角),초학기(初學記)作육각(肉角),모든 의견이 책과 다름(皆所見本異也)。곽박(郭)又引회남자(淮南子)者,남명훈(覽冥訓)云:『청룡은 멍에를 쓰고 다니고(青龍進駕),비황은 마판에 엎드려 있다(飛黃伏皁)。』승황(乘黃)又即자황(訾黃)。한서(漢書)예악지(禮樂志)云:『자황은 어찌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는가(訾黃何不徠下)?』응소(應劭)설명(注)云:『자황은 승황의 다른 이름이고(訾黃一名乘黃),말의 몸에 용의 날개가 달렸으며(龍翼而馬身),황제가 타고 신선이 되었다(黃帝乘之而仙)。』」

4 원가기록(珂案):초학기와 박물지 모두 삼천 살로 쓰여 있다(初學記、博物志並作三千歲)。


肅慎之國1在白民北,有樹名曰雄2常3,先入伐4帝,于此取之5。

숙신국은 백민국 북쪽에 있다, 웅상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먼저 임금이 죽고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사람이, 이 나무로 옷을 만들었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북경(大荒北經)云:「대황의 안에(大荒之中),이름이 불함이라는 산이 있다(有山名曰不咸)。숙신씨국에 있다(有肅慎氏之國)。」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숙신민이 있다(有肅慎民)。주서(周書)왕회편(王會篇)云:「직신은 큰 사슴이다(稷慎大麈)。」공조(孔晁)설명(注云):「직신은(稷慎),숙신이다(肅慎也)。」

2 곽박(郭璞)云:「락이라고도 쓴다(或作雒)。」

3 원가기록(珂案):경문의 웅상은(經文雄常),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作낙당(雒棠),云「낙당과 무인은 서북쪽 구석에 있다(雒棠、武人在西北陬)」,고유(高誘)注云:「모두 해가 들어가는 산의 이름(皆日所入之山名也)。」틀린 것으로 의심(疑非)。낙당은 이 경문의 웅상(雒棠當即此經之雄(곽박(郭)云「락이라고도 쓴다(或作雒)」)常),나무의 이름(木名也)。

4 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오관(吳寬)초본(抄本)、모의(毛扆)本、장경(藏經)本모두 대로 쓰임(俱作代)。

5 곽박(郭璞)云:「그곳은 옷을 입지 않고 살며(其俗無衣服),중국에서 성제 시대에(中國有聖帝代立者),이 나무에서 나는 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則此木生皮可衣也)。」원가기록(珂案):경문에 먼저 임금이 죽고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사람이(經文先入伐帝),이 나라를 이어받았다(于此取之),왕념손(王念孫)云:「태평어람(御覽)동이(東夷)五(卷七八四)作『먼저 임금이 죽고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사람이(先人代帝),이 나무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於此取衣)』,목부(木部)十(卷九六一)作『뛰어난 사람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고(聖人代立),이 나무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於此取衣)』。」원가기록(珂案):근거(據)곽박(郭)注,作「뛰어난 사람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고(聖人代立),이 나무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於此取衣)」맞다(是也)。손성연(孫星衍)校亦作「뛰어난 사람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고(聖人代立),이 나무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於此取衣)」。처음과 곽박의 설명이 서로 같다(如此始與郭注相應)。


長股之國1在雄常北,被髮2。

장고국은 웅상 북쪽에 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一曰長腳3。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장각이라고도 한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서북쪽 바다 밖(西北海之外),적수의 동쪽(赤水之東),장경국이 있다(有長脛之國)。」장고국이다(即長股國也)。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장고민이 있다(有長股民)。

2 곽박(郭璞)云:「나라는 적수 동쪽에 있다(國在赤水東也)。장비인은 몸은 보통 사람 같고 팔의 길이가 이 장이다(長臂人身如中人而臂長二丈),미루어 짐작해 보면(以類推之),이 사람들은 다리가 삼 장에 달한다(則此人腳過三丈矣)。황제 시대에 이르다(黃帝時至)。혹은(或曰),장각인 항상 장비인을 업고 바다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長腳人常負長臂人入海中捕魚也)。」학의행(郝懿行)云:「장비국(長臂國)已見해외남경(海外南經)。곽바(郭)云팔의 길이가 이 장이고(臂長二丈),이는 삼으로 바꾸어야 하며(二當為三),잘못된 글자(字之訛也)。초학기(初學記)十九卷引곽씨도찬(郭氏讚)云:『두 팔이 삼 장에(雙臂三丈),몸은 보통 사람 같다(體如中人);그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나(彼曷為者),장비인(長臂之人);이들 수각을 업고(修腳是負),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捕魚海濱)。』기록에 수족은 장각이다(案修足即長腳)。곽박(郭)설명(注)목천자전(穆天子傳)(卷二)云:『장각국은(長腳人國),또한 적수 동쪽에 있다(又在赤海東)。』맞다고 본다(謂是也)。」원가기록(珂案):곽박(郭)설명(注)장고국(長股國)「황제 시대에 이르러(黃帝時至)」者,노사(路史)후기오(後紀五)注引시자(尸子)云:「사이민에는 관흉과 심목과 장고가 있는데(四夷之民有貫胸者,深目者,長股者),황제의 덕이 모두에게 이르렀다(黃帝之德皆致之)。」蓋본문의 이것(本此)。

3 곽박(郭璞)云:「혹은 교국이 있다고 하는데(或曰有喬國),현재는 집에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며(今伎家喬人),이런 모양이나 몸(蓋象此身)。」오임신(吳任臣)曰:「교인은(喬人),두 나무의 뿌리가 연결되어 죽은 것이고(雙木續足之戲),현재는 사교하 한다(今曰蹻)。」


西方蓐收,左耳有蛇,乘兩龍1。

서방 욕수는, 왼쪽 귀에 뱀이 있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


1 곽박(郭璞)曰:「쇠의 신(金神也);사람 얼굴과 범의 발톱과 흰 털이며(人面、虎爪、白毛),도끼를 잡고 있다(執鉞)。見외전(外傳)。」

   원가기록(珂案):곽박(郭)설명(說)욕수는(蓐收),본국어(本國語)진어(晉語)두 글(二文)。진어이(晉語二)云:「괵공의 사당이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虢公夢在廟),사람 얼굴과 흰털과 범의 손톱을 한 신이(有神人面、白毛、虎爪),도끼를 잡고(執鉞),서쪽에 처마에 서 있었고(立於西阿),괵공이 두려워 달아나자(公懼而走)。신(神)曰:『달아나지 마라(無走)。임금의 명(帝命)曰:진나라로 하여금 이 문으로 들어오게하였다(使晉襲於爾門)。』괴공이 절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고(公拜稽首),잠을(覺),사은을 불러 점을 치라 하였는데(召史囂占之),대답(對)曰:『임금의 말과 같다면(如君之言),욕수라 하는데(則蓐收也),하늘의 형벌을 관리하는 신입니다(天之刑神也),하늘의 일을 관리하고 이루게 합니다(天事官成)。』괴공은 사은을 감금하며(公使囚之),나라 사람들에게 꿈을 축하를 하라 하였다(且使國人賀夢)。주지교가 그 모든 가족을에게 말하였다(舟之僑告其諸族)曰:『사람들이 굉나라가 머지않아 망한다고 말하는 것을(衆謂虢亡不久),내 이제야 알았습니다(吾乃今知之)。임금께서는 깨닫지 못하고 큰 나라가 들어오는 것을 축하하니(君不度而賀大國之襲),스스로에게 좋을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於己也何瘳)?제가 듣기에(吾聞之)曰:『큰 나라가 도덕적으로(大國道),작은 나라로 들어가서 복종하라고 말한다(小國襲焉曰服)。작은 나라가 거만하게(小國敖),큰 나라로 들어가면 처벌한다고 말한다(大國襲焉曰誅)。』백성들은 임금의 사치스러움이 고통스러워(民疾君之侈也),이들은 끝내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是以遂於逆命)。지금 그 꿈을 경사스러워하시니(今嘉其夢),사치스러움이 반드시 더해질 것이며(侈必展),이는 하늘이 넋을 빼앗아 그 괴로움을 더하여 본보기로 삼는 것입니다(是天奪之鑒而益其疾也)。백성들은 그 상황이 고통스럽고(民疾其態),하늘 또한 기만하네(天又誑之);큰 나라가 처벌하러 오는데(大國來誅),명령내리는 것을 거스르니(出令乃逆);나라의 근본이 이미 쇠하여(宗國旣卑),모든 제후들이 이미 멀어졌구다(諸侯遠己)。안팎으로 아무도 없으니(內外無親),그 누가 구제하리오(其誰云救之)?저는 차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吾不忍俟也),곧 떠닙니다(將行)!』그 가족들은 진나라고 갔다(以其族適晉)。육 년만에(六年),굉나라가 망했다(虢乃亡)。」이 형륙의 신은(此一刑戮之神),이르러(至)산해경(山海經)서차삼경(西次三經)又해가 들어가는 것을 관리하는 신이 되었다(為司日入之神)。서차삼경(西次三經)云:「유산은(泑山),신 욕수가 사는 곳이며(神蓐收居之),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는데(西望日之所入),그 노을은(其氣員),신 홍광이 관리한다(神紅光之所司也)。」학의행(郝懿行)云:「홍광은 욕수다(紅光蓋即蓐收也)。」가깝다(近是)。이 신 또한 소호씨의 자식이다(此神或以為是少皞之子)。여씨춘추(呂氏春秋)맹추편(孟秋篇)「그 신은 욕수다(其神蓐收)」고유(高誘)注云:「소호씨의 후손을 해라 하는데(少皞氏裔子曰該),모두 금덕이 있고(皆(실(實)?)有金德),죽어서 금신이 되길 기도했다(死託祀為金神)。」혹은 소호의 숙부가 된다(或以為是少皞之叔)。춘추좌씨전(左傳) 소공 이십구 년(昭公二十九年):「소호씨는 네명의 숙부가 있는데(少皞氏有四叔),중(曰重),해(曰該),수(曰修),희(曰熙)라하며,금과 목과 수를 책임졌다(實能金木及水)。중은 구망이 되었고(使重為句芒),해는 욕수가 되었고(該為蓐收),수와 희는 현명이 되었다(修及熙為玄冥)。대대로 직책을 잃지 않아(世不失職),마침내 궁상에 도읍을 세웠다(遂濟窮桑)。」상서대전(尚書大傳)云:「서쪽의 끝은(西方之極),사막 서쪽에서 삼위의 들판까지(自流沙西至三危之野),제소호는 신 욕수에게 다스리라 하였다(帝少皞神蓐收司之)。」욕수는(蓐收),소호의 신하(少皞之佐也)。초사(楚辭)대초(大招)云:「넋아 서쪽으로 가지마라(魂乎無西),서쪽 사막은(西方流沙),끝없이 넓구나(漭洋洋只);돼지 머리에 눈은 세로로 박혀 있고(豕首縱目),풀어헤친 머리는 엉클어져 있다(被髮鬤只);기다란 손톱에 톱 같은 어금니로(長爪踞牙),미친듯이 웃으며 기다리네(俟笑狂只)。」왕일(王逸)注:「이는 욕수 신의 모양이다(此蓋蓐收神之狀也)。」일반 사람 마음 속에 있고(則在世人心目中),이 형륙의 신은(此一刑戮之神),모질고 사나운 기세가 배로 늘어났다(又倍增其獰猛之氣矣)。

해외서경(海外西經) 원문

산해경/해외서경 2018. 2. 28. 00:00

海外自西南陬至西北陬者1。

1 畢沅云:「淮南子墬形訓云:自西北至西南方,起修股民肅慎民,此文正倒。知此經是說圖之詞,或右行則自西南至西北起三身國,或左行則自西北至西南起修股民。是漢時猶有山海經圖,各依所見為說,故不同也。」


滅蒙鳥在結匈國北1,為鳥青,赤尾。

1 畢沅云:「蓋結匈國所有,承上文起西南陬言,其圖象在結匈國北也。」郝懿行云:「博物志(外國)云:『結匈國有滅蒙鳥。』本此。海內西經又有孟鳥。」

   珂案:海內西經云:「孟鳥在貊國東北,其鳥文赤、黃、青,東鄉。」郝懿行謂滅蒙鳥疑即孟鳥,滅蒙之聲近孟(詳海內西經「孟鳥」節注),其說是也。何以知其然也?史記秦本紀云:「秦之先,帝顓頊之苗裔孫,曰女脩。女脩織,玄鳥隕卵,女脩吞之,生子大業。大業取少典之子曰女華。女華生大費,與禹平水土,已成,帝賜玄珪。禹受曰:『非予能成,亦大費為輔。』帝舜曰:『咨,爾費,贊禹功,其賜爾皁游,爾後嗣將大出。』乃妻之姚姓之玉女。大費拜受,佐舜調馴鳥獸,鳥獸多馴服,是為柏翳(伯益)。舜賜姓嬴氏。大費生子二人,一曰大廉,實鳥俗氏;二曰若木,實費氏。……大廉玄孫曰孟戲、仲衍,鳥身人言。」太平御覽卷九一五引括地圖云:「孟虧人首鳥身,其先為虞氏馴百獸,夏后之末世,民始食卵,孟虧去之,鳳凰隨與止於此。山多竹,長千仞,鳳凰食竹實,孟虧食木食。去九疑萬八千里。」孟虧即秦本紀之孟戲也,博物志(外國)又作孟舒。云:「孟舒國民,人首鳥身,其先主為霅氏訓百禽。夏后之世,始食卵。孟舒去之,鳳皇隨焉。」戲、虧、舒均一音之轉。大荒東經云:「帝舜生戲,戲生搖民。」海內經云:「有嬴民,鳥足。」嬴、搖亦一聲之轉,嬴民即搖民,戲即孟戲也,不過原以柏翳(伯益)為祖先者,乃又移之於舜也。舜與伯益蓋皆東方殷民族傳說中之祖宗神,亦即詩玄鳥所謂「天命玄鳥,降而生商」之玄鳥,即燕子之化身。玄鳥再經神話化,又為鳳凰。故其子孫或「鳥身人言」,或「人首鳥身」,或「鳥足」,且有「鳳凰隨焉」。此「隨焉」之「鳳凰」,即此處所記「滅蒙鳥」及海內西經所記「孟鳥」是也。「為鳥青,赤尾」或「其鳥文赤、黃、青」云云,乃所謂「五采之鳥」,山海經多記有之,皆鳳凰之象。大荒西經云:「有五采之鳥,有冠,名曰狂鳥。」爾雅釋鳥云:「狂,●鳥。」實則狂鳥、●鳥皆鳳凰屬也,狂即皇,●即鳳,音之轉也。●鳥又即孟鳥,字之異也。大荒西經又云:「有弇州之山,五采之鳥仰天,名曰鳴鳥。」郝懿行云:「鳴鳥,蓋鳳屬也。」鳴鳥亦●鳥、孟鳥也。則此處所記之「滅蒙鳥」,固鳳屬之狂鳥、●鳥、鳴鳥、孟鳥之異名也。


大運山高三百仞,在滅蒙鳥北。


大樂之野,夏后啟于此九代1;乘兩龍,雲蓋三層2。左手操翳3,右手操環4,佩玉璜5。在大運山北6。一曰大遺之野7。

1 郭璞云:「九代,馬名,謂盤作之令舞(藏經本作——珂)也。」郝懿行云:「九代,疑樂名也。竹書(今本——珂)云:『夏帝啟十年,帝巡狩,舞九韶于大穆之野。』大荒西經亦云:『天穆之野,啟始歌九招。』招即韶也。(珂案:藏經本「九招」正作「九韶」。)疑九代即九招矣。又淮南齊俗訓云:『夏后氏其樂夏籥九成。』疑九代本作九成,今本傳寫形近而訛也。李善注(文選)王融三月三日曲水詩序引此經云:『舞九代馬。』疑馬字衍。而藝文類聚九十三卷及太平御覽八十二卷引此經亦有馬字,或并引郭注之文也。舞馬之戲恐非上古所有。」珂案:郝說是也。九代確當是樂名,非舞馬之戲。陳夢家商代的神話與巫術(燕京學報第二十期)一文略謂:「即九,,象又持牛尾。九歌:『成禮兮會鼓,傳芭兮代舞。』即舞也。」說亦可供參考。

2 郭璞云:「層,猶重也。」郝懿行云:「李善注(文選)西京賦兩引此注並同。又注潘岳為賈謐作贈陸機詩引此注云:『層,重也,慈登切。』今本脫郭音三字。又層,經典通作曾,據郭音,益知此經層當為曾矣。」珂案:宋本郭注層作曾。毛扆校注云:「三層,注作曾,經文不應作層。」與郝說略異,而謂經文當作曾則同。

3 郭璞云:「羽葆幢也。」珂案:說文四云:「翳,翿也,所以舞也。」

4 郭璞云:「玉空邊等為環。」珂案:說文一云:「環,璧也,肉好若一謂之環。」

5 郭璞云:「半璧曰璜。」珂案:郭注亦見說文一。

6 郭璞云:「歸藏鄭母經曰:『夏后啟筮:御飛龍登于天,吉。』明啟亦仙也。」郝懿行云:「太平御覽八十二卷引史記曰:『昔夏后啟筮:乘龍以登于天,占于皋陶,皋陶曰:「吉而必同,與神交通;以身為帝,以王四鄉。」』今案御覽此文即與郭注所引為一事也。」

   珂案:關於夏后啟之神話,大荒西經云:「西南海之外,赤水之南,流沙之西,有人珥兩青蛇,乘兩龍,名曰夏后開(開即啟,漢景帝名啟,漢人避諱改),開上三嬪(賓)于天,得九辯與九歌以下。此天穆之野,高二千仞,開焉得始歌九招。」即同一事也。繹史卷十二引隨巢子:「禹娶塗山,治鴻水,通轘轅山,化為熊。塗山氏見之,慚而去,至嵩高山,化為石。禹曰:『歸我子!』石破北方而生啟。」此啟之生為非同尋常矣,亦啟之所以為「啟」(開)也。啟為人神交配所生之子,本身固具有神性,故能「三嬪于天,得九辯與九歌以下」。所謂「得」者,實「竊」也。御覽九二九引歸藏明夷云:「昔夏后啟上乘龍飛,以登于天,皋陶占之,曰:『吉。』」大荒西經郭注引歸藏啟筮云:「不可竊辯與九歌以國于下。」即其事矣。蓋啟承禹位,不恤國事,惟以酒食聲色自娛,復竊天樂助興,致遭亡國慘禍。故墨子非樂稱:「啟乃淫溢康樂,野于飲食,將將鍠鍠,筦磬以方。湛濁于酒,渝食于野,萬舞翼翼,章聞于天,天用弗式(內數字與原文略有不同,均據孫詒讓墨子閒詁校改)。」詩人於此亦多所刺譏。屈原離騷云:「啟九辯與九歌兮,夏康娛以自縱;不顧難以圖後兮,五子用夫家巷(末句「夫」原作「失乎」,從聞一多楚辭校補改,「家巷」即「家鬨」,內訌之意也)。」天問云:「啟棘賓商(

帝之形訛),九辯九歌,何勤子屠母而死分竟(境)地?」即其事也。此處所謂「九代」,亦「歌九招」之類,雖曰「亦仙」,固乃啟「康娛自縱」之具體表現,其「不顧難以圖後」,亦已明矣。

7 郭璞云:「大荒經云:大穆之野。」郝懿行云:「大荒西經作天穆之野,此注云大穆之野,竹書天穆、大穆二文並見。此經文又云大遺之野、大樂之野,諸文皆異,所未詳。」珂案:天、大古本一字,穆、遺、樂音皆相近。


三身國1在夏后啟北,一首而三身2。

1 珂案:淮南子墬形篇有三身民。大荒南經云:「大荒之中,有不庭之山,滎水窮焉。有人三身。帝俊妻娥皇,生此三身之國。姚姓,黍食,使四鳥。」河圖括地圖(玉函山房輯佚書輯)則云:「庸成氏實有季子,其性喜淫,晝淫於市,帝怒,放之於西南。季子儀馬而產子,身人也而尾蹄馬,是為三身之國。」蓋後起之說,非古神話初相也。

2 郝懿行云:「藝文類聚三十五卷引博物志云:『三身國一頭三身三手。』今此經無三手字。」


一臂國1在其北,一臂一目一鼻孔2。有黃馬虎文,一目而一手3。

1 珂案:大荒西經云:「有一臂民。」即此。

2 吳任臣云:「淮南子海外三十六國,西南方有一臂民。呂氏春秋(求人篇)云:『其肱、一臂之鄉。』爾雅(釋地):『北方有比肩民焉,迭食而迭望。』郭璞注云:『此即半體之人,各有一目、一鼻孔、一臂、一腳。』異域志云:『半體國其人一目一手一足。』交州記曰:『儋耳國東有一臂國,人皆一臂也。』江淹遂古篇『一臂人兮』本此。三才圖會曰:『一臂國在西海之北,半體比肩,猶魚鳥相合。』(珂案:韓詩外傳卷五云:「東海有魚名曰鰈,比目而行,不相得不能達;南方有鳥名曰鶼,比翼而飛,不相得不能舉。」即所謂「魚鳥相合」也。)(文選)王融曲水詩序:『離身反踵之君,髽首貫胸之長。』離身亦斯類也。」

3 郝懿行云:「手,馬臂也。(禮記)內則云:『馬黑脊而般臂漏。』」


奇肱之國1在其北,其人一臂三目,有陰有陽,乘文馬2。有鳥焉,兩頭,赤黃色,在其旁3。

1 郭璞云:「肱或作弘;奇音羈。」

2 郭璞云:「陰在上,陽在下;文馬即吉良也。」珂案:海內北經云:「犬戎國有文馬,縞身朱鬣,目若黃金,名曰吉量,乘之壽千歲。」吉量即吉良也。

3 郭璞云:「其人善為機巧,以取百禽;能作飛車,從風遠行。湯時得之於豫州界中,即壞之,不以示人。後十年西風至,復作遣之。」郝懿行云:「博物志說奇肱民善為栻扛,以殺百禽,栻扛蓋機巧二字之異。又云湯破其車,不以視民,視即古示字,當作。又云十年東風至,乃復作車遣返,郭注作西風至,西字訛也。云其國去玉門關四萬里,當須東風至乃得遣返矣。」珂案:郝說是也。博物志外國云:「奇肱民善為栻扛,以殺百禽。能為飛車,從風遠行。湯時西風至,吹其車至豫州,湯破其車,不以視民。十年東風至,乃復作車遣返。其國去玉門關四萬里。」淮南墬形篇作奇股。高誘注云:「奇,隻也;股,腳也。」則是獨腳人矣。以較獨臂,似獨腳於義為長。假令獨臂,則「為機巧」、「作飛車」乃戛戛乎其難矣;亦唯獨腳,始痛感行路之艱,翱翔雲天之思斯由啟矣:故奇股乃勝於奇肱。


形天1與帝2至此3爭神,帝斷其首,葬之常羊之山4,乃以乳為目,以臍5為口,操干戚以舞6。

1 珂案:形天,書各不同。王念孫云:「陶潛讀山海經詩正作形夭,見二老堂詩話,今本改作形天。唐等慈寺碑(碑在氾水縣,唐顏師古撰)『疏屬之罪,方滯迷塗;刑夭之魂,久淪長夜。』道藏本山海經圖讚亦作形夭。淮南墬形篇『西方有形殘之尸』,劉績注引此作形夭,酉陽雜俎諾皋記作形夭,鈔本御覽三百七十一、五百七十四、八百七十四並作形夭,八百八十七同。」王似主張作形夭者。然查影宋本御覽,卷五七四、三七一固作形夭,卷五五五則作邢天,卷八八七作刑夭,鮑崇城校本卷五五五作刑天,今本陶靖節集讀山海經詩亦作刑天,依義刑天長於形夭。天,甲骨文作●,金文作●,口與●均象人首,義為顛為頂,刑天蓋即斷首之意。意此刑天者,初本無名天神,斷首之後,始名之為「刑天」。或作形夭,義為形體夭殘,亦通。惟作形天、刑夭則不可通。

2 珂案:帝,天帝;此指黃帝,說詳後。

3 珂案:御覽各卷(三七一、五五五、五七四、八八七)引經均無「至此」二字,「至此」二字衍。

4 郝懿行云:「宋書符瑞志云:『有神龍首感女登於常羊山,生炎帝神農。』即此也。大荒西經有偏勾、常羊之山,亦即此。」珂案:郝說是也,說詳後。

5 珂案:臍,御覽卷三七一、五七四、八八七均引作齊。齊,古通臍;左傳莊公六年:「後君噬齊。」

6 郭璞云:「干,盾;戚,斧也:是為無首之民。」

   珂案:刑天,炎帝之臣;刑天之神話,乃黃帝與炎帝鬥爭神話之一部分,狀其鬥志靡懈,死猶未已也。御覽七九引歸藏:「昔黃神與炎神爭鬥涿鹿之野,將戰,筮於巫咸,曰:『果哉而有咎。』」呂氏春秋蕩兵篇:「兵所自來者久矣,黃炎故用水火矣。」淮南子兵略篇:「炎帝為火災,故黃帝禽之。」大戴禮五帝德:「黃帝教熊、羆、貔、豹、虎,以與赤帝戰於版泉之野,三戰然後得行其志。」是自戰國至秦漢咸有關於黃炎鬥爭之傳說。炎帝兵敗,乃又有蚩尤崛起以與黃帝頡抗。蚩尤者,「炎帝之後」(玉函山房輯佚書輯遁甲開山圖),亦炎帝之臣也(世本宋衷注),大荒北經謂「蚩尤作兵伐黃帝」者,蓋為兵敗之炎帝復仇也。蚩尤與黃帝之戰,乃古代神話傳說中一大戰爭,書呂刑「蚩尤唯始作亂」云云,即已記其大要矣。山海經復涉夸父,謂「應龍(黃帝神龍)已殺蚩尤,又殺夸父」(大荒北經),「應龍殺蚩尤與夸父」(大荒東經)。夸父者,大荒北經云:「后土生信,信生夸父。」而海內經謂后土為炎帝之裔,是夸父亦炎帝之裔也。在黃帝與蚩尤之戰中,夸父自亦當參加蚩尤戰團,因而始相繼為應龍所「殺」。蚩尤與夸父喪亡後,乃又有刑天舞其干戚,「與帝爭神」。刑天者,炎帝之臣,或亦炎帝之後也。路史後紀三云:「炎帝乃命邢天作扶犁之樂,制豐年之詠,以薦釐來,是曰下謀。」此邢天即宋本御覽五五五所引此經邢天,亦鮑校本八八七所引此經邢天也。路史所記雖較晚,當亦有古說憑依,惜典籍佚亡,難尋究矣。然「刑天與帝爭神,帝斷其首,葬之常羊之山」,常羊山傳又為炎帝降生之處,春秋緯元命苞(玉函山房輯佚書輯)云:「少典妃安登,遊于華陽,有神龍首感之於常羊,生神農。」是炎帝生於常羊,漢人已有成說矣。大荒西經所謂「有偏句、常羊之山」者,此常羊與刑天斷首之常羊,炎帝降生之常羊,俱在西方,自是同一常羊無疑。是刑天傳說與炎帝傳說之關係,豈不仍有蛛絲馬跡可尋乎?則刑天者,亦猶蚩尤夸父,奮起而為炎帝復仇,以與黃帝抗爭者也。常羊山北,經歷數地即是軒轅國,軒轅,黃帝之號,則葬首常羊之刑天所與「爭神」之「帝」,豈非黃帝而何?蓋軒轅常羊一帶,均屬黃炎鬥爭神話傳說之範圍。「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白居易草),是蚩尤刑天諸巨人前仆後繼鬥爭精神之最好寫照也。而陶潛讀山海經詩,稱「刑天舞干戚,猛志固常在」,為尤能得此斷頭英雄凌厲無前之神態。

女祭女戚在其北,居兩水閒,戚操魚1,祭操俎2。

1 郭璞云:「,魚屬。」王念孫云:「大荒西經:『有寒荒之國,有二人女祭女薎。』注云:『或持,或持俎。』案此女戚亦當作女薎,因上文干戚文而誤為戚也。魚(珂案:王念孫所據項絪本作此字,宋本、藏經本同)當為角觶,注內『,魚屬』當為『角觛,觶屬』。說文(四):『觛,小觶也。』」珂案:王校語中「角觶」疑當作「角觛」,始與上下文相應。據此,則女祭女戚當是女巫祀神之圖象也。

2 郭璞云:「肉几。」


[上次下鳥]鳥、[詹鳥]鳥1,其色青黃,所經國亡2。在女祭北。[上次下鳥]鳥人面,居山上。一曰維鳥,青鳥、黃鳥所集3。

1 郭璞云:「次、瞻兩音。」

2 郭璞云:「此應禍之鳥,即今梟、鵂鶹之類。」

3 畢沅云:「古無[上次下鳥]、[詹鳥]字,是云維鳥云云,是也,下丈夫國亦云在維鳥北。」

   珂案:大荒西經云:「有元丹之山,有五色之鳥,人面有髮。爰有青、黃,青鳥、黃鳥,其所集者其國亡。」即此。、乃[上次下鳥]、[詹鳥]之異名。青鳥、黃鳥即[上次下鳥]鳥、[詹鳥]鳥,亦即大荒西經之青、黃,說詳大荒西經該節注。


丈夫國在維鳥北,其為人衣冠帶劍1。

1 郭璞云:「殷帝太戊使王孟採藥,從西王母至此,絕糧,不能進,食木實,衣木皮,終身無妻,而生二子,從形中出,其父即死,是為丈夫民。」珂案:淮南子墬形篇有丈夫民;大荒西經亦云:「有丈夫之國。」太平御覽卷三六一引玄中記云:「丈夫民。殷帝太戊使王英採藥於西王母,至此絕糧,不能進,乃食木實,衣以木皮。終身無妻,產子二人,從背脅間出,其父則死,是為丈夫民。去玉門二萬里。」同書卷七九0引括地圖文略同,唯「王英」仍作「王孟」,「從背脅間出」作「從背間出」。


女丑之尸,生而十日炙殺之1。在丈夫北。以右手鄣其面2。十日居上,女丑居山之上。

1 郝懿行云:「十日并出,炙殺女丑,於是堯乃命羿射殺九日也。」珂案:此固郝推想之詞,然亦頗有此可能;因十日並出事見於典籍者,除莊子齊物論「十日并出,萬物皆照」,楚辭招魂「十日并(並原作代,據聞一多楚辭校補改)出,流金礫石」及郭璞注海外東經引竹書「胤甲居西河,十日并出」外,以淮南子本經篇所著「堯之時,十日并出」事為最古。然所謂「炙殺」,疑乃暴巫之象,女丑疑即女巫也。古天旱求雨,有暴巫焚巫之舉。論衡明雩篇:「魯繆公之時,歲旱,繆公問縣子:『寡人欲暴巫,奚如?』」左傳僖公二十一年:「夏大旱,公(魯僖公——珂)欲焚巫尪。」是其證矣。暴巫焚巫者,非暴巫焚巫也,乃以女巫飾為旱魃而暴之焚之以禳災也,暴巫即暴魃也。女丑衣青(見大荒西經),旱魃亦衣青(見大荒北經),是女丑飾為旱魃而被暴也。下文「(女丑)以右手鄣其面」及「十日居上,女丑居山之上」語,均被暴而不勝其楚毒之象。及十日炙殺女丑,乃有「堯使羿」或堯自身上射九日之舉也(說詳海外東經「湯谷十日」節注)。

2 郭璞云:「蔽面。」珂案:大荒西經云:「有人衣青,以袂蔽面,名曰女丑之尸。」郭注本此。


巫咸國1在女丑北,右手操青蛇,左手操赤蛇,在登葆山,群巫所從上下也2。

1 珂案:大荒西經云:「大荒之中,有山名曰豐沮玉門,日月所入。有靈山,巫咸、巫即、巫、巫彭、巫姑、巫真、巫禮、巫抵、巫謝、巫羅十巫,從此升降,百藥爰在。」大荒南經云:「大荒之中,又有登備之山。」郭璞注:「即登葆山,群巫所從上下也。」則巫咸國者,乃一群巫師組織之國家也。世本作篇:「巫咸作筮。」宋衷注:「巫咸,不知何時人。」而路史後紀三乃謂神農使巫咸主筮,則巫咸神農時人也;御覽七九引歸藏:「昔黃神與炎神爭鬥涿鹿之野,將戰,筮於巫咸,曰:『果哉而有咎。』」則巫咸黃帝時人也;御覽卷七二一引世本宋注云:「巫咸,堯臣也,以鴻術為帝堯醫。」是巫咸又堯時人也:諸說不同。而御覽七九0引外國圖云:「昔殷帝大戊使巫咸禱於山河,巫咸居於此,是為巫咸民,去南海萬千里。」最為詳明。王逸注楚辭離騷亦云:「巫咸,古神巫也,當殷中宗之世。」殷中宗即殷帝大戊(史記殷本紀作太戊),是此巫咸,當即是殷時巫咸也。然外國圖謂巫咸民去南海萬千里,又與山海經所說西方之巫咸國牴牾:終莫可究詰矣。

2 郭璞云:「採藥往來。」珂案:郭注蓋本大荒西經「十巫從此升降,百藥爰在」為說,然細究之,「採藥」只是群巫所作次要工作,其主要者,厥為下宣神旨,上達民情。登葆山蓋天梯也,「群巫所從上下」者,「上下」於此天梯也。說詳海內經「九丘建木」節注。


并封1在巫咸東,其狀如彘,前後皆有首,黑2。

1 珂案:大荒西經云:「有獸,左右有首,名曰屏蓬。」周書王會篇云:「區陽以鱉封,鱉封者,若彘,前後皆有首。」是并封、屏逢、鱉封皆聲之轉,實一物也。聞一多伏羲考(見聞一多全集第一冊)謂并封、屏蓬本字當作「并逢」,「并」與「逢」俱有合義,乃獸牝牡相合之象也,其說甚是。推而言之,蛇之兩頭、鳥之二首者,亦均并封、屏蓬之類,神話化遂為異形之物矣。

2 郭璞云:「今弩弦蛇亦此類也。」郝懿行云:「弩弦蛇即兩頭蛇也,見爾雅釋地枳首蛇注。」珂案:爾雅釋地枳首蛇郭璞注云:「岐頭蛇也。或曰今江東呼兩頭蛇為越王約髮,亦名弩弦。」

女子國1在巫咸北,兩女子居,水2周之3。一曰居一門中4。

1 珂案:淮南子墬形篇有女子民。大荒西經云:「有女子之國。」三國志魏志東夷傳云:「(沃沮)耆老言:有一國亦在海中,純女無男。」後漢書東夷傳云:「或傳其國有神井,窺之輒生子。」即此類也。

2 珂案:御覽七九0引此經水下有外字。

3 郭璞云:「有黃池,婦人入浴,出即懷妊矣。若生男子,三歲輒死。周猶繞也。離騷曰:水周於堂下也。」珂案:御覽三九五引外國圖云:「方丘之上,暑溼生男子,三年而死。有黃水,婦人入浴,出則乳矣。去九嶷二萬四千里。」蓋本郭注為說也。

4 郝懿行云:「居一門中,蓋謂女國所居同一聚落也。」珂案:郝說非也。所謂「居一門中」者,亦圖象如此,猶「兩女子居,水周之」之為另一圖象然。


軒轅之國1在此2窮山之際3,其不壽者八百歲。在女子國北。人面蛇身4,尾交首上。

1 珂案:大荒西經云:「有軒轅之國,江山之南棲為吉,不壽者乃八百歲。」西次三經有軒轅之丘,郭注云:「黃帝居此。」

2 失名云:「博物志無此字,太平御覽(卷七九0)引經亦無此字。」郝懿行云:「經文此字疑衍。李善注(文選)思玄賦引此經云:『在窮山之際。』史記五帝紀索隱引此經同,并無此字。」

3 郭璞云:「其國在山南邊也。大荒經曰:岷山之南。」郝懿行云:「大荒西經說軒轅之國江山之南,此云岷山者,以大江出岷山故也。」

4 珂案:古天神多為人面蛇身,舉其著者,如伏羲、女媧、共工、相柳、窫窳、貳負等是矣;或龍身人頭:如雷神、燭龍、鼓等是矣,亦人面蛇身之同型也。此言軒轅國人人面蛇身,固是神子之態,推而言之,古傳黃帝或亦當作此形貌也。


窮山1在其北,不敢西射,畏軒轅之丘2。在軒轅國北。其丘方,四蛇相繞3。

1 珂案:楚辭天問云:「阻窮西征,巖何越焉?化為黃熊,巫何活焉?咸播秬黍,莆雚是營;何由並投,而鯀疾修盈?」此數語自來多不得其解。自唐蘭天問「阻窮西征」新解(禹貢半月刊第七卷第一二三期合刊)一文出,謂「窮」即山海經海外西經「窮山」,「鯀尸剖而生禹,其尸體遂化為黃熊而西征,被阻於窮山,卒越巖而南,求活於諸巫」,乃豁然貫通焉。鯀所被「阻」之「窮」,確即此窮山,因巫咸國在其南,去此不遠也。

2 郭璞云:「言敬畏黃帝威靈,故不敢向西而射也。」珂案:軒轅之丘在西王母所居玉山之西四百八十里,見西次三經。

3 郭璞云:「繚繞樛纏。」珂案:蓋護衛此丘也。


此諸夭之野1,鸞鳥自歌,鳳鳥自舞;鳳皇卵,民食之;甘露2,民飲之,所欲自從也3。百獸相與群居。在四蛇北。其人兩手操卵食之,兩鳥居前導之4。

1 郭璞云:「夭音妖。」郝懿行云:「經文此字亦衍。夭郭音妖,蓋訛。夭野,大荒西經作沃野,是此經之夭,乃沃字省文,郭注之妖乃沃字訛文也。諸夭,藝文類聚九十九卷引作清沃,博物志作渚沃,淮南墬形訓有沃民。又云『西方曰金丘,曰沃野』,高誘注云:『沃猶白也,西方白故曰沃野。』案高說非也,沃野蓋謂其地沃饒耳。」珂案:郝說是也。宋本郭注「夭音妖」,妖字正作沃,藏經本同,蓋後人妄改作妖耳。然此「諸夭之野」句下,疑文字尚有闕脫。下文「

鳳皇卵,民食之,甘露,民飲之」,與「其人兩手操卵食之」,其「民」其「人」維何?無由知也。大荒西經云:「有沃之國,沃民是處;沃之野,鳳鳥之卵是食,甘露是飲。」則其「民」沃民也。揆之張衡思玄賦:「超軒轅於西海,跨汪氏之龍魚。」畢沅說汪氏係沃民之誤,良确;以沃民之後,記有龍魚,故曰「跨沃民之龍魚」也。知經文此句之下,當有「沃民」字樣,如以大荒西經「沃民是處」補於其下,則處與舞為韻,亦天衣無縫也。淮南子墬形篇海外三十六國自西北至西南方白民之後有沃民,以此。海外西經係自西南至西北方,方向適反,故諸沃之野之後乃有白民之國。則居於此沃野之其「民」其「人」,正當是自成一國之沃民也。

2 珂案:太平御覽卷十二引瑞應圖云:「甘露者,美露也;神露之精,仁瑞之澤,其凝如脂,其甘如飴,一名膏露,一名天酒。」神異經西北經荒經云:「西北海外,有人長二千里,兩腳中間相去千里,腹圍一千六百里,但日飲天酒五斗。」原注:「張華曰:天酒,甘露也。」

3 郭璞云:「言滋味無所不有,所願得自在,此謂夭野也。」珂案:郭注夭野,藏經本作沃野。大荒西經云:「有沃之國,沃民是處,沃之野,鳳鳥之卵是食,甘露是飲。凡其所欲,其味盡存。爰有甘華、甘柤、白柳、視肉、三騅、璇瑰、瑤碧、白木、琅玕、白丹、青丹。多銀鐵。鸞鳥自歌,鳳鳥自舞。爰有百獸,相群爰處。是謂沃之野。」即此。

4 郝懿行云:「亦言圖畫如此。」


龍魚陵居在其北1,狀如貍2。一曰3。即有神聖乘此以行九野4。一曰鱉魚5在夭野北,其為魚也如鯉。

1 郝懿行云:「龍魚,郭氏江賦作龍鯉,張衡思玄賦仍作龍魚,淮南墬形訓作[石龍](按今本作硥——珂)魚,高誘注云:『[石龍]魚如鯉魚也,有神聖者乘行九野,在無繼民之南。[石龍]音蚌。』」珂案:龍魚,疑即海內北經所記陵魚,蓋均神話傳說中人魚之類也。龍、陵一聲之轉,一也;龍魚陵居,陵魚當亦因其既可居水,復可居陵而號陵魚,二也;龍魚似鯉,謂之龍鯉,陵魚亦似鯉,謂之陵鯉,三也;龍魚「一曰」,爾雅釋魚云「鯢大者謂之」,本草綱目云「鯢魚,一名人魚」;而「人面手足魚身在海中」之陵魚,正是人魚形貌,四也。有此四者,故謂龍魚即海內北經所記之陵魚。

2 郭璞云:「或曰:龍魚似貍,一角。」郝懿行云:「貍當為鯉,字之訛。李善注(文選)江賦引此經云:『龍鯉陵居,其狀如鯉,或曰龍魚一角也。』蓋並引郭注。又注思玄賦引此經云:『龍魚陵居在北,狀如鯉。』高誘注淮南墬形訓亦云『如鯉魚也』,可證。」珂案:郝說是也,王念孫校亦同郝說。宋本經文注釋鯉字均作狸,藏經本注釋作狸,亦訛。

3 郭璞云:「音遐。」畢沅云:「一作如,言狀如鯢魚有四腳也。爾雅(釋魚)云:『鯢大者謂之。』」

4 郭璞云:「九域之野。」珂案:藝文類聚卷九十六引郭氏圖讚曰:「龍魚一角,似鯉居陵;候時而出,神聖攸乘;飛騖九域,乘雲上升。」可謂得其概要。

5 郭璞云:「鱉音惡橫也。」郝懿行云:「注有訛字,所未詳;明藏本作鱉,音猶也,亦訛。」珂案:宋本郭注「鱉音」下空一字。


白民之國1在龍魚北,白身被髮2。有乘黃,其狀如狐,其背上有角3,乘之壽二千歲4。

1 珂案:淮南子墬形篇有白民。大荒西經云:「有大澤之長山。有白民之國(白民原作白氏,據宋本改——珂)。」即此。大荒東經云:「有白民之國。帝俊生帝鴻,帝鴻生白民。白民銷姓,黍食,使四鳥:虎、豹、熊、羆。」或當是另一國,非此。參見大荒東經「白民國」節注2。

2 郭璞云:「言其人體洞白。」珂案:淮南子墬形篇高誘注云:「白民白身,民被髮,髮亦白。」

3 郭璞云:「周書曰:『白民乘黃,似狐,背上有兩角。』即飛黃也。淮南子曰:『天下有道,飛黃伏皁。』郝懿行云:「周書王會篇云:『乘黃似騏。』郭引作似狐。初學記(卷二十九)引與郭同。博物志(外國)亦作狐。兩角,初學記作肉角,皆所見本異也。郭又引淮南子者,覽冥訓云:『青龍進駕,飛黃伏皁。』乘黃又即訾黃。漢書禮樂志云:『訾黃何不徠下?』應劭注云:『訾黃一名乘黃,龍翼而馬身,黃帝乘之而仙。』」

4 珂案:初學記、博物志並作三千歲。


肅慎之國1在白民北,有樹名曰雄2常3,先入伐4帝,于此取之5。

1 珂案:大荒北經云:「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淮南子墬形篇有肅慎民。周書王會篇云:「稷慎大麈。」孔晁注云:「稷慎,肅慎也。」

2 郭璞云:「或作雒。」

3 珂案:經文雄常,淮南子墬形篇作雒棠,云「雒棠、武人在西北陬」,高誘注云:「皆日所入之山名也。」疑非。雒棠當即此經之雄(郭云「或作雒」)常,木名也。

4 珂案:宋本、吳寬抄本、毛扆本、藏經本俱作代。

5 郭璞云:「其俗無衣服,中國有聖帝代立者,則此木生皮可衣也。」珂案:經文先入伐帝,于此取之,王念孫云:「御覽東夷五(卷七八四)作『先人代帝,於此取衣』,木部十(卷九六一)作『聖人代立,於此取衣』。」珂案:據郭注,作「聖人代立,於此取衣」是也。孫星衍校亦作「聖人代立,於此取衣」。如此始與郭注相應。


長股之國1在雄常北,被髮2。一曰長腳3。

1 珂案:大荒西經云:「西北海之外,赤水之東,有長脛之國。」即長股國也。淮南子墬形篇有長股民。

2 郭璞云:「國在赤水東也。長臂人身如中人而臂長二丈,以類推之,則此人腳過三丈矣。黃帝時至。或曰,長腳人常負長臂人入海中捕魚也。」郝懿行云:「長臂國已見海外南經。郭云臂長二丈,二當為三,字之訛也。初學記十九卷引郭氏讚云:『雙臂三丈,體如中人;彼曷為者,長臂之人;修腳是負,捕魚海濱。』案修足即長腳。郭注穆天子傳(卷二)云:『長腳人國,又在赤海東。』謂是也。」珂案:郭注長股國「黃帝時至」者,路史後紀五注引尸子云:「四夷之民有貫胸者,深目者,長股者,黃帝之德皆致之。」蓋本此。

3 郭璞云:「或曰有喬國,今伎家喬人,蓋象此身。」吳任臣曰:「喬人,雙木續足之戲,今曰蹻。」


西方蓐收,左耳有蛇,乘兩龍1。

1 郭璞曰:「金神也;人面、虎爪、白毛,執鉞。見外傳。」

   珂案:郭說蓐收,本國語晉語二文。晉語二云:「虢公夢在廟,有神人面、白毛、虎爪,執鉞,立於西阿,公懼而走。神曰:『無走。帝命曰:使晉襲於爾門。』公拜稽首,覺,召史囂占之,對曰:『如君之言,則蓐收也,天之刑神也,天事官成。』公使囚之,且使國人賀夢。……六年,虢乃亡。」此一刑戮之神,至山海經西次三經又為司日入之神。西次三經云:「泑山,神蓐收居之,西望日之所入,其氣員,神紅光之所司也。」郝懿行云:「紅光蓋即蓐收也。」近是。此神或以為是少皞之子。呂氏春秋孟秋篇「其神蓐收」高誘注云:「少皞氏裔子曰該,皆(實?)有金德,死託祀為金神。」或以為是少皞之叔。左傳昭公二十九年:「少皞氏有四叔,曰重,曰該,曰修,曰熙,實能金木及水。使重為句芒,該為蓐收,修及熙為玄冥。世不失職,遂濟窮桑。」尚書大傳云:「西方之極,自流沙西至三危之野,帝少皞神蓐收司之。」蓐收,少皞之佐也。楚辭大招云:「魂乎無西,西方流沙,漭洋洋只;豕首縱目,被髮鬤只;長爪踞牙,俟笑狂只。」王逸注:「此蓋蓐收神之狀也。」則在世人心目中,此一刑戮之神,又倍增其獰猛之氣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