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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2018. 10. 31. 00:00

  神農以赭鞭鞭百草,盡知其平毒寒溫之性,臭味所主,以播百穀,故天下號神農也。

  신농은 자편으로 온갖 약초를 다지고, 그 풀이 가진 독의 성질과 차가운 성질과 따뜻한 성질과, 냄와 맛의 원인을 알아냈다, 온갖 곡식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모두가 신농이라 불렀다.


  赤松子者,神農時雨師也,服冰玉散,以教神農,能入火不燒。至崑崙山,常入西王母石室中,隨風雨上下。炎帝少女追之,亦得仙,俱去。至高辛時,復為雨師,遊人間。今之雨師本是焉。

  적송자는, 신농 시대 우사이다, 빙옥산을 복용하였고, 신농에게 빙옥산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빙옥산을 먹으면 불에 들어가도 불에 타지 않았다. 곤륜산에서는, 서왕모 석실로 들어가기도 했으며, 바람과 비를 쫓아 하늘을 오르내렸다. 염제의 작은 딸이 쫓아다니다, 그녀 역시 득선하여, 함께 떠났다. 고신(제곡) 시대에는, 다시 우사가 되었고, 인간 세상을 유람하였다. 현재의 우사는 본래 이 모습이다.


  赤將子轝者,黃帝時人也。不食五穀,而啖百草華。至堯時,為木工。能隨風雨上下。時於市門中賣繳,故亦謂之繳父。

  적장자여는, 황제 시대 사람이다. 오곡은 먹지 않으나, 온갖 풀과 꽃은 씹어 먹었다.  요임금 시대에는, 목공이 되었다. 바람과 비를 쫓아 하늘을 오르내릴 수 있다. 당시 시문에서 작(주살끈)을 팔았기 때문에, 작보라고도 한다.


  寧封子,黃帝時人也。世傳為黃帝陶正,有異人過之,為其掌火。能出五色煙。久則以教封子,封子積火自燒,而隨煙氣上下。視其灰燼,猶有其骨。時人共葬之寧北山中。故謂之寧封子。

영봉자는, 황제 시대 사람이다. 대대로 황제의 도정(옹기장이)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이인(선인)이 지나가면서, 손바닥에 불을 만들었다. 오색 연기를 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봉자를 가르쳤고, 봉자는 불을 질르고 스스로 불태워, 연기를 따라 하늘을 오르내렸다. 그 타고남은 잿더미를 보니, 그의 뼈가 그대로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뼈를 한데 모아 영북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래서 그를 영봉자라 부른다.


  偓佺者,槐山採藥父也。好食松實。形體生毛,長七寸。兩目更方。能飛行逐走馬。以松子遺堯,堯不暇服。松者,簡松也。時受服者,皆三百歲。

  악전은, 괴산에서 약초를 캐는 노인이다. 솔방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온몸에 털이 났는데, 길이가 칠 촌이다. 두 눈은 네모나게 변했다. 날 수 있어 달리는 말을 따라 잡았다. 솔방울을 요임금에게 가져다 주었으나, 요임금은 먹을 겨를이 없었다. 그 소나무는, 간송이라는 소나무다. 당시에 솔방울을 받아 먹은 사람은, 모두 삼백 세까지 살았다.


  彭祖者,殷時大夫也。姓錢,名鏗。帝顓頊之孫,陸終氏之中子。歷夏而至商末,號七百歲。常食桂芝。歷陽有彭祖仙室。前世云:禱請風雨,莫不輒應。常有兩虎在祠左右。今日祠之訖地,則有兩虎跡。

  팽조는, 은나라 시대 대부다. 성은 전이고, 이름은 갱이다. 제전욱의 손자이자, 육종씨의 둘째이다. 하나라 때부터 상나라 말기까지, 칠백 살을 살았다. 항상 계수나무와 지초를 먹었다. 역양에 팽조의 선실이 있다. 선조들은: 팽조의 사당에서 바람과 비를 부탁하는 기도를 하면, 언제나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다. 항시 두 범이 사당 왼쪽과 오른쪽에 있다. 오늘날 사당은 사라졌으나, 두 범의 흔적은 남아 있다.


  師門者,嘯父弟子也。能使火。食桃葩。為孔甲龍師。孔甲不能修其心意,殺而埋之外野。一旦,風雨迎之。山木皆燔。孔甲祠而禱之,未還而死。

  사문은, 소보의 제자다. 불을 부릴 수 있다. 복숭아 꽃을 먹는다. 하나라 공갑 시대에 용을 기르는 관리가 되었다. 공갑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문을 죽여 성 밖 들판에 묻었다. 바람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산과 나무가 모두 불살랐다. 공갑이 사당에서 기도를 하다,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前周葛由,蜀羌人也。周成王時,好刻木作羊賣之。一旦,乘木羊入蜀中,蜀中王侯貴人追之,上綏山。綏山多桃,在峨眉山西南,高無極也。隨之者不復還,皆得仙道。故里諺曰:「得綏山一桃,雖不能仙,亦足以豪。」山下立祠數十處。

  사라진 주나라의 갈유는, 촉강 사람이다. 주나라 성왕 시대에, 나무를 깍아 양을 만들어 파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날, 나무로 만든 양을 타고 촉으로 들어갔는데, 촉의 왕족과 귀족들이 그를 따라, 수산을 올랐다. 수산은 복숭아나무가 많고, 아미산 서남쪽에 있으며, 높이가 끝이 없다. 따라갔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지 않고, 모두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속담에 따르면: 「수산에서 복숭아나무를 하나 얻어서는, 신선이 될 수 없지만, 호걸이 되기에는 충분하다.」산 아래 수십 곳의 사당을 세웠다.


  崔文子者,泰山人也。學仙於王子喬。子喬化為白蜺,而持藥與文子。文子驚怪,引戈擊蜺,中之,因墮其藥。俯而視之,王子喬之屍也。置之室中,覆以敝筐。須臾,化為大鳥。開而視之,翻然飛去。

  최문자는, 태산 사람이다. 왕자교에게 신선술을 배웠다. 왕자교는 흰 예로 변하여, 최문자에게 손에 쥔 약을 주려하였다. 최문자는 놀라고 괴이쩍게 여기며, 창으로 예를 내리쳐, 맞추었고, 그 약을 떨어트렸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왕교자의 시체였다. 방 안으로 들여, 헌 광주리로 덮었다. 잠시 후, 큰 새로 변하였다. 광주리를 열어젖히고 보니, 날개를 푸덕이며 날아갔다.


  冠先,宋人也。釣魚為業。居睢水旁,百餘年,得魚,或放,或賣,或自食之。常冠帶,好種荔,食其葩實焉。宋景公問其道,不告,即殺之。後數十年,踞宋城門上,鼓琴,數十日乃去。宋人家家奉祠之。

  관선은, 송나라 사람이다. 물고기를 낚는 일이 직업이다. 수수 강가에 사는게, 백 년 남짓인데, 물고기를 낚으면, 놓아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직접 먹기도 하였다. 항시 관면을 쓰고 신대를 둘렀으며, 여지 심는 것을 좋아하고, 그 꽃과 열매를 먹었다. 송나라 경공이 그에게 도를 물었는데, 알려주지 않자, 죽였다. 수십 년 후, 송나라 성문 위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연주하였으며, 수십 일이 지나고 떠났다. 송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琴高,趙人也。能鼓琴。為宋康王舍人。行涓彭之術,浮游冀州、涿郡間二百餘年。後辭入涿水中,取龍子,與諸弟子期之。曰:「明日皆潔齋候。」於水旁設祠屋。果乘赤鯉魚出,來坐祠中。且有萬人觀之。留一月,乃復入水去。

  금고는, 조나라 사람이다.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다. 송나라 강왕의 식객이 되었다. 연자와 팽조의 술법을 부려, 기주와 탁주 사이를 이백 년동안 둥둥 떠다녔다. 나중에 탁수 안으로 들어가, 용의 자식을 잡아는다고, 여러 제자들에게 기약하며 말했다. 말하길:「내일 모두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고 기다려라 」물가에 사당을 세워라. 정말로 붉은 잉어를 타고 나타났고, 사당에 들어와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 한 달을 머물다, 다시 물로 들어가 버렸다.


  陶安公者,六安鑄冶師也。數行火。火一朝散上,紫色沖天。公伏冶下求哀。須臾。朱雀止冶上,曰:「安公!安公!冶與天通。七月七日,迎汝以赤龍。」至時,安公騎之,從東南去。城邑數萬人,豫祖安送之,皆辭訣。

  도안공은, 육안의 대장장이다. 자주 불을 다뤘다. 어느 날 불이 흩어져 오르며, 자주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풀무 아래 공손히 업드려 간곡히 빌었다. 잠시 후. 주작이 풀무 위에 내려앉아, 말했다:「도안공아!도안공아!풀무와 하늘이 통하였으니. 칠월 칠일에, 적룡을 따라오면 너를 맞이하겠다.」때가 이르고, 도안공은 말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 적룡을 따라갔다.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길제사를 지내 가시는 길 편하게 가시라고, 작별하는 인사의 말을 한다.


  有人入焦山七年,老君與之木鑽,使穿一盤石,石厚五尺,曰:「此石穿;當得道。」積四十年,石穿,遂得神仙丹訣。

  초산에 칠 년동안 들어가 있던 어떤 사람에게, 노군이 나무 송곳으로, 너럭바위 하나를 뚫게 했는데, 바위의 두께가 오척이었다, 말씀하길:「이 돌을 뚫으면;득도할 것이다.」사십 년이 지나자, 바위가 뚫렸고, 마침내 신선단의 비결을 얻었다.


  魯少千者,山陽人也。漢文帝嘗微服懷金過之,欲問其道。少千拄金杖,執象牙扇,出應門。

  노소천은, 산양 사람이다. 한나라 문제는 일찍이 남루한 옷에 금을 품고 찾아가, 그에게 도를 물었다. 노소천은 금지팡이를 짚고, 상아 부채를 들며, 집안에서 나와 답했다.


  淮南王安,好道術。設廚宰以候賓客。正月上午,有八老公詣門求見。門吏曰王,王使吏自以意難之,曰:「吾王好長生,先生無駐衰之術,未敢以聞。」公知不見,乃更形為八童子,色如桃花。王便見之,盛禮設樂,以享八公。援琴而弦,歌曰:「明明上天,照四海兮。知我好道,公來下兮。公將與余,生羽毛兮。升騰青雲,蹈梁甫兮。觀見三光,遇北斗兮。驅乘風雲,使玉女兮。」今所謂淮南操是也。

  회남왕 안은, 도술을 좋아했다. 주방에 요리사를 두고 손님을 대접했다. 정월 사오일, 여덟 명의 노공들이 궁궐로 찾아와 알현을 요청했다. 문지기는 왕이 말하길, 왕께서 나에게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태도를 정하라 하셨고, 그러하니:「우리 왕께서는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시나, 선생들께서는 늙는 것을 멈추게하는 술법이 없으니, 허락치 못하겠소이다.」노공들은 만나지 못하게 됨을 알자, 이내 여덟 명의 동자로 변하였는데, 얼굴빛이 복숭아 꽃 같더라. 왕을 곧 만나고, 극진한 예를 갖추며 연회를 베풀어, 여덟 명의 노공을 대접하였다.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아주 밝은 하느님이, 온 세상을 비추는구나. 내가 도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노공들을 보내셨네. 노공들이 장차 나와 함께, 깃털이 나겠구나. 푸른 구름에 올라, 양보산을 밟는구나」현재 불리는 회남조가 이것이다.


  劉根,字君安。京兆長安人也。漢成帝時,入嵩山學道。遇異人授以秘訣,遂得仙。能召鬼。潁川太守史祈以為妖,遣人召根,欲戮之。至府,語曰:「君能使人見鬼,可使形見。不者,加戮。」根曰:「甚易。」借府君前筆硯書符,因以叩几;須臾,忽見五六鬼,縛二囚於祈前。祈熟視,乃父母也。向根叩頭曰:「小兒無狀,分當萬死。」叱祈曰:「汝子孫不能光榮先祖,何得罪神仙,乃累親如此。」祈哀驚悲泣,頓首請罪。根默然忽去,不知所之。자손이 머리를 숙여 제사를 지내

  유근은, 자가 군안이다. 한나라 수도인 장안 사람이다. 한나라 성제 시대에, 숭산으로 도를 배우러 들어갔다. 이인을 만나 비결을 전수 받고,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귀신을 부를 수 있었다. 영천 태수 사기는 요사하다 여기며, 사람을 보내 유근을 불러, 죽이려 하였다. 관청에 이르자, 말했다:「자네가 사람들에게 귀신을 볼 수 있게 한다니, 귀신의 형체를 보여주어라. 그러지 못하면, 죽음을 내리겠다.」유근이 말하길:「아주 쉽지요」하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붓과 벼루를 빌려 부적을 써서, 책상에 고이 붙였다;잠시 후, 홀연히 대여섯 귀신이 나타났고, 사기 앞에 두 귀신이 묶여 있었다. 사기가 눈여겨 자세히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더라. 유근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하길:「어린 아이가 버릇이 없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사기를 꾸짖으며 말하길:「너는 자손이란 녀석이 조상을 영광스럽게 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신선에게 죄를 지어, 이 같이 부모에게 폐를 끼치냐.」사기는 몹시 놀라 슬피 울며,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었다. 유근은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다 홀연히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漢明帝時,尚書郎河東王喬,為鄴令。喬有神術,每月朔,嘗自縣詣台。帝怪其來數,而不見車騎;密令太史候望之。言其臨至時,輒有雙鳧,從東南飛來。因伏伺,見鳧,舉羅張之,但得一雙舄。使尚書識視,四年中所賜尚書官屬履也。

  한나라 명제 시대에, 상서랑인 하동 사람 왕교는, 업의 관리가 되었다. 왕교는 신기한 술법을 부렸는데, 매월 초하루에, 업의 마을에서부터 누대까지 와 제사를 지냈다. 명제를 그가 자주 오는데, 수레와 마차를 보지 못해 괴이하게 여겼다;태사에게 명해 몰래 높은 곳에 올라 살펴보라고 했다. 태사는 왕교가 도착할 때 내려가보면, 문득 한 쌍의 오리만, 동남쪽으로부터 날아왔다고 말했다. 엎드려 엿보니, 오리가 보여서, 몸을 일으켜 그물을 던져 잡았더니, 신발 한 쌍만 있더라. 상서에게 알아보라 이르니, 명제 사 년에 상서 관리에게 하사한 신발이더라.


  薊子訓,不知所從來。東漢時,到洛陽見公卿,數十處,皆持斗酒片脯候之。曰:「遠來無所有,示致微意。」坐上數百人,飲啖終日不盡。去後,皆見白雲起,從旦至暮。時有百歲公說:小兒時見訓賣藥會稽市,顏色如此。訓不樂住洛,遂遁去。正始中,有人於長安東霸城,見與一老公共摩挲銅人,相謂曰:「適見鑄此,已近矣。」見者呼之曰:「薊先生小住。」並行應之。視若遲徐,而走馬不及。

  계자훈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동한 시대에, 낙양에서 고위 고관을 만난 일이, 수십 곳인데, 모두 술동이와 말린 고기를 들고 기다리더라. 말하길:「먼 곳에서 와 가진 것이 하나 없으니, 작은 성의를 보이고자 합니다.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술동이와 말린 고기를 온 종일 끊임없이 마시고 먹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모두 흰 구름이 생기는 것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았다. 그때 백 살된 노인이 설명했다: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 계자훈이 회계의 시장에서 약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 얼굴빛이 지금과 같았다. 낙양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북위 문선제 정시년에, 어떤 사람이 장안 동쪽 패성에서, 한 노인이 동상을 공손하게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공손하게 말했다:「여기서 부어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벌써 오백 년이 지났구나.」계자훈을 보고 부르며 말하기:「계선생님 잠시만 기다리세요」하니 알겠다고 하여 나란히 갔다.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였으나, 달리는 말이 따라잡지 못했다.


  漢陰生者,長安渭橋下乞小兒也。常於市中丐,市中厭苦,以糞灑之。旋復在市中乞,衣不見污如故。長吏知之,械收繫,著桎梏,而續在市乞。又械欲殺之,乃去。灑之者家,屋室自壞,殺十數人。長安中謠言曰:「見乞兒與美酒,以免破屋之咎。」

  한나라 태생 음생은, 장안 위수의 다리 아래에서 구걸을 하던 어린 아이 였다. 항상 시장 안에서 구걸을 하였고, 시장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해, 똥을 뿌렸다. 오래지 않아 다시 시장에서 구걸을 하면, 옷은 더럽지 않고 전과 같았다. 고을 현령이 이를 알고, 형틀에 묶고, 차꼬와 수갑을 채웠는데도, 계속해서 시장에서 구걸을 하였다. 또 형틀에 묶어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내 사라졌다. 똥을 뿌렸던 사람의 가족들은, 집이 절로 무너져, 열댓 명이 죽었다. 장안에 난 뜬 소문에 의하면:「구걸하는 아이를 보면 맛좋은 술을 베풀어라, 집이 허물어지는 일을 피하려면. 」


  谷城鄉平常生,不如何所人也。數死而復生。時人為不然。後大水出,所害非一,而平輒在缺門山上大呼言:「平常生在此。」云:「復雨,水五日必止。」止,則上山求祠之。但見平衣杖革帶。後數十年,復為華陰市門卒。

  곡성 시골 마을의 평상생은,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여러 번 축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중에 큰 홍수가 나, 여러 곳이 피해를 입었고, 평상생이 갑자기 결문산 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팽상생은 이곳에 있다.」말하며:「다시 비가 내려도, 홍수는 오 일내로 반드시 멈춘다.」머물렀고, 산에 올라 사당을 찾으려 하였다. 단지 평상생의 옷과 지팡이와 가죽띠만 보였다. 수십 년이 지나고, 돌아와서는 화음시의 문지기가 되었다.


  左慈,字符(元)放,廬江人也。少有神通。嘗在曹公座,公笑顧眾賓曰:「今日高會,珍羞略備。所少者,吳松江鱸魚為膾。」放曰:「此易得耳。」因求銅盤貯水,以竹竿餌釣於盤中,須臾,引一鱸魚出。公大拊掌,會者皆驚。公曰:「一魚不周坐客,得兩為佳。」放乃復餌釣之。須臾,引出,皆三尺餘,生鮮可愛。公便自前膾之,周賜座席。公曰:「今既得鱸,恨無蜀中生薑耳。」放曰:「亦可得也。」公恐其近道買,因曰:「吾昔使人至蜀買錦,可敕人告吾使;使增市二端。」人去,須臾還,得生薑。又云:「於錦肆下見公使,已敕增市二端。」後經歲餘,公使還,果增二端。問之,云:「昔某月某日,見人於肆下,以公敕敕之。」後公出近郊,士人從者百數,放乃賚酒一罌,脯一片,手自傾罌,行酒百官,百官莫不醉飽。公怪,使尋其故。行視沽酒家,昨悉亡其酒脯矣。公怒,陰欲殺放。放在公座,將收之,卻入壁中,霍然不見。乃募取之。或見於市,欲捕之,而市人皆放同形,莫知誰是。後人遇放於陽城山頭,因復逐之。遂走入羊群。公知不可得,乃令就羊中告之,曰:「曹公不復相殺,本試君術耳。今既驗,但欲與相見。」忽有一老羝,屈前兩膝,人立而言曰:「遽如許。」人即云:「此羊是。」競往赴之。而群羊數百,皆變為羝,並屈前膝,人立,云:「遽如許。」於是遂莫知所取焉。老子曰:「吾之所以為大患者,以吾有身也;及吾無身,吾有何患哉。」若老子之儔,可謂能無身矣。豈不遠哉也。

  좌자의, 자는 원방이며, 여강 사람이다. 어릴적부터 특출난 재간이 있었다. 일찍이 조조가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 있었는데, 조조가 여러 손님들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길:「지금 성대한 모임에, 맛 좋은 음식을 간단하게 차렸습니다. 아쉽게도, 오나라 송강의 농어로 만든 회입니다.」좌자가 말했다:「이것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하며 구리쟁반을 가져와 물을 붙고, 쟁반에 미끼를 꿴 대나무 낚시대를 드리웠고. 잠시 후, 농어 한 마리를 낚았다. 조조는 크게 손뼉을 쳤고, 모여있던 사람들 모두 놀랐다. 조조가:「한 마리로는 모두 먹을 수 없으니, 두 마리를 더 잡으면 좋겠소이다.」하자 좌자는 이내 미끼를 꿰고 낚시를 하였다. 금세, 잡아냈고, 모두 삼척 남짓이라, 물고기가 먹음직스러웠다. 조조는 스스로 회를 떠,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조조가 말하길:「지금은 농어를 잡았으나, 촉나라의 생강이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좌자가 말하길:「그또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조는 아무래도 그가 지름길로가 생강을 사온다 여겼기 때문에, 말했다:「내가 얼마 전에 사람을 시켜 촉나라 비단을 사오게 하였는데, 나의 명령을 받는 사람에게 알려주게나; 시장에서 비단 두 단을 더 사오라.」 좌자는 사람을 보냈고, 잠시 후 돌아올 때는, 생강을 가져왔다. 그러며 말하길:「비단 가게에서 주공이 보낸 사람을 만났는데, 이미 비단 두 단을 더 사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중에 겨울이 지나고, 조조의 심부름꾼이 돌아왔는데, 비단 두 단을 더 사왔다. 조조가 묻자, 답하길:「옛날 몇월 며칠에, 비단 가게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주공의 명령을 전해주었습니다. 」 훗날 조조가 도시 변두리로 나갈때, 수 백의 선비들이 따랐고, 좌자는 술 한 병과, 말린 고기 한근을 가져와, 손수 술을 따라며, 모든이에게 술을 권했고, 모두 술에 취하고 배부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조조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찾았다. 술을 파는 술집에 다녀보니, 어제 술집의 술과 고기가 모조리 사라졌더라. 조조는 성을 내며, 신하들에게 좌자를 죽이라 하였다. 좌자는 조조의 연회 자리에 있다가, 장수들이 잡으려하자, 물러나며 벽 속으로 들어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에 사람을 뽑아 추적하였다. 시작에서 목격되어, 체포하고자 하였으나, 시장 사람들이 모두 좌자와 같은 모습이라,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양성산 꼭대기에서 좌자를 만나을 때, 다시 추적하였다. 양떼 속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양떼에게 알렸다, 말하길:「주군께서 더이상 죽이지 않겠다고 하셨고, 원래는 선생의 도술을 시험하려 했을 뿐이오. 이제 시험이 끝났고, 서로 만나고자 하시오.」 돌연 늙은 숫양 하나가, 두 앞다리를 굽히고, 사람처럼 일어서며 말했다: 「바쁘니 그럽시다.」 사람들이 말하길:「이 양이구나.」 하며 나란히 다가갔다. 그러나 무리의 수 백마리의 양들이, 모두 변해 숫양이 되었고, 나란히 앞다리를 구부리며, 사람처럼 일어섰다, 말하길:「바쁘니 그럽시다.」하니 어느 양을 쫓아서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자는 말했다:「나의 큰 근심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없었더라면, 내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노자와 필적하는 사람은, 몸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어긋나지 않겠는가.


  孫策欲渡江襲許,與于吉俱行。時大旱,所在熇厲。策催諸將士,使速引船,或身自早出督切。見將吏多在吉許。策因此激怒,言:「我為不如吉耶?而先趨附之。」便使收吉至,呵問之曰:「天旱不雨,道路艱澀,不時得過。故自早出,而卿不同憂慼,安坐船中,作鬼物態,敗吾部伍。今當相除。」令人縛置地上暴之,使請雨。若能感天,日中雨者,當原赦;不爾,行誅。俄而雲氣上蒸,膚寸而合;比至日中,大雨總至,谿澗盈溢。將士喜悅,以為吉必見原,並往慶慰。策遂殺之。將士哀惜,藏其屍。天夜,忽更興雲覆之。明旦往視,不知所在。策既殺吉,每獨坐,彷彿見吉在左右。意深惡之,頗有失常。後治瘡方差,而引鏡自照,見吉在鏡中,顧而弗見。如是再三。撲鏡大叫,瘡皆崩裂,須臾而死。(吉,瑯琊人,道士。)

  손택이 강을 건너 허창을 엄습하려고, 우길과 함께 갔다. 당시에 큰 가뭄이와, 불볕더위가 계속 되었다. 손책은 모든 군사들을 재촉하고 독촉하며, 빨리 배를 끌어오게 하였고, 아침 일찍 나가 직접 감독하며 밀어붙였다. 독촉하다 이때 격노하여, 말하길:「내가 우길만 못하느냐? 그래서 먼저 아부하는 것이구나.」하며 바로 우길을 잡아오게 하였고, 질책하며 물었다:「하늘이 가물어 비가 안내려, 길이 험해 다니가 어렵워, 지나갈 수 없는 시기이네. 그래서 직접 나와보니, 선생은 함께 근심하지 않고, 배 안에 편히 앉아, 도깨비 모습을 하여, 내 군대의 일을 못하게 하니. 지금 당장 그대를 숙청하여 군기를 바로잡아야겠소.」사람들에게 우길을 땅바닥에 묶어 햇빛에 말려, 비가 내리게 시켰다. 만약 하늘이 감동하여, 오늘 안으로 비가 내리면, 당연히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갑자기 엷게 흐르는 구름이 김 오르듯 올랐고, 얼마 안되어 합쳐졌다; 한낮에 이르자, 큰 비가 세차게 내렸고, 계곡물이 넘쳐 흘렀다. 군사들이 기뻐하며, 우길이 반드시 풀려날 것으로 여기고, 모두 다가가 축하하고 위로하였다. 허나 손책은 우길을 죽였다. 군사들은 안타까워하며, 우길의 시체를 묻었다. 깊은 밤, 돌연히 구름이 일어 우길의 시체를 덮었다. 다음 날 아침 가보니, 시체가 어디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손책은 우길을 죽이고 나서, 홀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마치 주위에서 우길을 보는 것 같았다. 생각컨대 깊게 병들어, 몹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나중에 부르럼을 치료하여 병이 낫았으나, 거울을 들어 자기를 비추었고, 거울 안에 우길이 보여,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 반복되었다. 거울을 때려 눕히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부스럼이 모두 터지고 갈라져, 금세 죽었다. (우길은, 낭야 사람이며, 도사이다.)


  介琰者,不知何許人也。住建安方山,從其師白羊公杜受玄一無為之道,能變化隱形。嘗往來東海,暫過秣陵,與吳主相聞。吳主留琰,乃為琰架宮廟。一日之中,數遣人往問起居。琰或為童子,或為老翁,無所食啖,不受餉遺。吳主欲學其術,琰以吳主多內御,積月不教。吳主怒,敕縛琰,著甲士引弩射之。弩發,而繩縛猶存不知琰之所之。

  개염은, 어느 곳의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건안 방산에 살며, 그의 스승 백양공 두필을 따라다니며 현일과 무위의 도를 배웠고, 변신도 하고 모습을 감출 수도 있다. 이전에 동해에 갈때, 말릉을 잠시 지나다, 오나라 임금을 만났다. 오나라 임금은 개염에게 머물게 하고, 개염을 위해 궁에 사당을 만들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개염은 사나아이로 변해 있거나, 할아버지로 변했있었고,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음식을 받지도 않았다. 오나라 임금은 그 술법을 배우고 싶었으나, 개염은 오나라 임금이 궁녀가 많다하여, 여러 달동안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나라 임금은 성내며, 명을 내려 개염을 포박하였고, 갑옷 입은 군사들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 그러나 포박했던 밧줄만 남아 개염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吳時有徐光者,嘗行術於市里:從人乞瓜,其主勿與,便從索瓣,杖地種之;俄而瓜生,蔓延,生花,成實;乃取食之,因賜觀者。鬻者反視所出賣,皆亡耗矣。凡言水旱甚驗。過大將軍孫綝門,褰衣而趨,左右唾踐。或問其故。答曰:「流血臭腥不可耐。」綝聞惡而殺之。斬其首,無血。及綝廢幼帝,更立景帝,將拜陵,上車,有大風蕩綝車,車為之傾。見光在松樹上拊手指揮嗤笑之,綝問侍從,皆無見者。俄而景帝誅綝。

  오나라 시대에 서광이라는 사람이 었었는데, 일찍이 도심에서 도술을 부리며 다녔다: 오이장수에게 오이를 구걸하였는데, 오이장수가 도와주지 않자, 그길로 오이의 씨를 찾아, 지팡이로 땅을 파 씨를 심었다; 갑자기 싹이나고, 덩굴이 널리 퍼지며, 꽃이 폈고, 열매가 열렸다; 열매를 따서 먹으며, 구경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이장수가 뒤돌아보니 팔려던 오이가, 모두 사라졌다. 대체로 수해와 가뭄을 예측하는게 아주 영험했다. 서광은 대장군 손침의 집을 지나칠때는, 옷을 걷어올리고 빨리 걸으며, 양옆으로 침을 뱉고 발로 밟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답하길:「피비린내를 참을 수 없어서다.」손침이 그 이야길 듣고 증오하며 죽였다. 서광의 머리를 잘랐으나, 피가 나지 않았다. 손침이 어린 임금 손량을 폐위하고, 손휴를 다시 경제 옹립하였다, 한편 능묘에 참배하려고, 수레에 올랐는데, 큰 바람이 불어 손침의 수레를 흔들었고, 수레가 쓰러졌다. 소나무 위에서 박수 치고 손으로 가르키며 비웃는 서광을 보고, 손침이 시종에게 서광을 보았냐고 묻자, 모두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얼마후 경제가 손침을 죽였다.


  葛玄,字孝先,從左元放受九丹液仙經。與客對食,言及變化之事,客曰:「事畢,先生作一事特戲者。」玄曰:「君得無即欲有所見乎?」乃嗽口中飯,盡變大蜂數百,皆集客身,亦不螫人。久之,玄乃張口,蜂皆飛入,玄嚼食之,是故飯也。又指蝦蟆及諸行蟲燕雀之屬,使舞,應節如人。冬為客設生瓜棗,夏致冰雪。又以數十錢使人散投井中,玄以一器於井上呼之,錢一一飛從井出。為客設酒,無人傳杯,杯自至前,如或不盡,杯不去也。嘗與吳主坐樓上,見作請雨土人,帝曰:「百姓思雨,寧可得乎?」玄曰:「雨易得耳!」乃書符著社中,頃刻間,天地晦冥,大雨流淹。帝曰:「水中有魚乎?」玄復書符擲水中,須臾,有大魚數百頭。使人治之。

  갈현의, 자는 효선이고, 좌자를 따라다니며 구단액선경을 전수 받았다. 손님과 마주보며 음식을 먹다가, 변화한 일에 대해 말했더니, 손님이 말하길:「일이 끝나고, 선생께서 하나의 특이한 놀이를 만들어주시지요. 」갈현이 말하길:「자네가 뭔가를 보고 싶구만?」하며 입 안의 밥을 뱉자, 모두 변해 수백의 큰 벌로 변했고, 전부 손님의 몸으로 모였으나, 벌에 쏘인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갈현이 입을 벌리자, 벌들이 모두 날아 들었고, 갈현은 씹어 먹었는데, 뱉었던 밥이었기 때문다. 또한 두꺼비와 벌레들과 제비와 참새의 무리들을, 춤을 추게 하자, 사람처럼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겨울에는 오이와 대추를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여름에는 얼음과 눈을 내주었다. 


  吳猛,濮陽人。仕吳,為西安令,因家分寧。性至孝。遇至人丁義,授以神方;又得秘法神符,道術大行。嘗見大風,書符擲屋上,有青烏銜去。風即止。或問其故。曰:「南湖有舟,遇此風,道士求救。」驗之果然。西安令於慶死,已三日,猛曰:「數未盡,當訴之於天。」遂臥屍旁,數日,與令俱起。後將弟子回豫章,江水大急,人不得渡;猛乃以手中白羽扇畫江水,橫流,遂成陸路,徐行而過,過訖,水復。觀者駭異。嘗守潯陽,參軍周家有狂風暴起,猛即書符擲屋上,須臾風靜。

  

  園客者,濟陰人也。貌美,邑人多欲妻之,客終不娶。嘗種五色香草,積數十年,服食其實。忽有五色神蛾,止香草之上,客收而薦之以布,生桑蠶焉。至蠶時,有神女夜至,助客養蠶,亦以香草食蠶。得繭百二十頭,大如甕,每一繭繅六七日乃盡。繅訖,女與客俱仙去,莫知所如。

  

  漢,董永,千乘人。少偏孤,與父居肆,力田畝,鹿車載自隨。父亡,無以葬,乃自賣為奴,以供喪事。主人知其賢,與錢一萬,遣之。永行,三年喪畢,欲還主人,供其奴職。道逢一婦人曰:「願為子妻。」遂與之俱。主人謂永曰:「以錢與君矣。」永曰:「蒙君之惠,父喪收藏,永雖小人,必欲服勤致力,以報厚德。」主曰:「婦人何能?」永曰:「能織。」主曰:「必爾者,但令君婦為我織縑百疋。」於是永妻為主人家織,十日而畢。女出門,謂永曰:「我,天之織女也。緣君至孝,天帝令我助君償債耳。」語畢,凌空而去,不知所在。

  

  初,鉤弋夫人有罪,以譴死,既殯,屍不臭,而香聞十餘里。因葬雲陵,上哀悼之。又疑其非常人,乃發冢開視,棺空無屍,惟雙履存一云。昭帝即位,改葬之,棺空無屍,獨絲履存焉。

  

  漢時有杜蘭香者,自稱南康人氏。以建業四年春,數詣張傳。傳年十七,望見其車在門外,婢通言:「阿母所生,遺授配君,可不敬從?」傳,先名改碩,碩呼女前,視,可十六七,說事邈然久遠。有婢子二人:大者萱支,小者松支。鈿車青牛上,飲食皆備。作詩曰:「阿母處靈岳,時游雲霄際。眾女侍羽儀,不出墉宮外。飄輪送我來,豈復恥塵穢。從我與福俱,嫌我與禍會。」至其年八月旦,復來,作詩曰:「逍遙雲漢間,呼吸發九嶷。流汝不稽路,弱水何不之。」出薯蕷子三枚,大如雞子,云:「食此,令君不畏風波,辟寒溫。」碩食二枚,欲留一,不肯,令碩食盡。言:「本為君作妻,情無曠遠,以年命未合,且小乖,大歲東方卯,當還求君。」蘭香降時,碩問禱祀何如。香曰:「消魔自可愈疾,淫祀無益。」香以藥為消魔。

  

  魏濟北郡從事掾弦超,字義起,以嘉平中夜獨宿,夢有神女來從之。自稱:「天上玉女,東郡人,姓成公,字知瓊,早失父母,天帝哀其孤苦,遣令下嫁從夫。」超當其夢也,精爽感悟,嘉其美異,非常人之容,覺寤欽想,若存若亡,如此三四夕。一旦,顯然來游,駕輜軿車,從八婢,服綾羅綺繡之衣,姿顏容體,狀若飛仙,自言年七十,視之如十五六女。車上有壺榼,青白琉璃五具。食啖奇異,饌具醴酒,與超共飲食。謂超曰:「我,天上玉女,見遣下嫁,故來從君,不謂君德。宿時感運,宜為夫婦。不能有益,亦不能為損。然往來常可得駕輕車,乘肥馬,飲食常可得遠味,異膳,繒素常可得充用不乏。然我神人,不為君生子,亦無妒忌之性,不害君婚姻之義。遂為夫婦。」贈詩一篇,其文曰:「飄浮勃逢敖,曹雲石滋芝。一英不須潤,至德與時期。神仙豈虛感,應運來相之。納我榮五族,逆我致禍菑。」此其詩之大較,其文二百餘言,不能盡錄。兼注易七卷,有卦,有象,以彖為屬。故其文言既有義理,又可以占吉凶,猶揚子之太玄,薛氏之中經也。超皆能通其旨意,用之占候,作夫婦經。七八年,父母為超娶婦之後,分日而燕,分夕而寢,夜來晨去,倏忽若飛,唯超見之,他人不見。雖居闇室,輒聞人聲,常見蹤跡,然不睹其形。後人怪問,漏泄其事;玉女遂求去。云:「我,神人也。雖與君交,不願人知,而君性疏漏,我今本末已露,不復與君通接。積年交結,恩義不輕;一旦分別,豈不愴恨?勢不得不爾。各自努力!」又呼侍御下酒,飲啖,發簏,取織成裙衫兩副遺超。又贈詩一首,把臂告辭,涕泣流離,肅然升車,去若飛迅。超憂感積日,殆至委頓。去後五年。超奉郡使至洛,到濟北魚山下,陌上西行,遙望曲道頭有一馬車,似知瓊。驅馳至前,果是也。遂披帷相見,悲喜交切。控左援綏,同乘至洛。遂為室家,克復舊好。至太康中,猶在。但不日日往來,每於三月三日,五月五日,七月七日,九月九日旦,十五日輒下,往來經宿而去。張茂先為之作神女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