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서경(海外西經) 번역

산해경/해내서경 2018. 2. 28. 00:00

海內西南陬以北者1

해내 서남쪽 구석 북쪽을 기재하다.


1 원가기록(珂案):이 경문의 위치와 해외성경의 위치가 서로 같다(此經方位與해외서경(海外西經)方位相同)。


貳負1之臣曰危,危與貳負殺窫窳2。

위부의 신하 위라 하는데, 위와 이부는 알유를 죽였다.


帝3乃梏之疏屬之山4,桎其右足5,反縛兩手與髮6,繫之山上木7。

황제는 이들을 소속산에 가두었는데, 그 오른발에 차꼬를 채우고, 두 손을 뒤로 젖히고 머리털과 함께 묶어, 산 위 나무에 매달았다.


在開題西北8。

개제 서북쪽에 있다.


1 원가기록(珂案):이부는(貳負),옛 천신이고(古天神),사람 얼굴에 뱀의 몸이다(人面蛇身)。해내북경(海內北經)云:「신 이부는 그 귀국 동쪽에 있고(貳負神在其(鬼國)東),그들은 사람 얼굴에 뱀의 몸으로 되어있다(其為物人面蛇身)。」오승지(吳承志)이 구절은 해내북경의 대행백이라는 사람이 있다라는 앞 구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以為此節當在해내북경(海內北經)「대행백이라는 사람이 있다(有人曰大行伯)」節上),맞다(是也),설명 앞 권에 끝부분 흉노 구절 설명(說見前卷末「흉노(匈奴)」節注)。

2 원가기록(珂案):알유의 이름은(窫窳之名),옛 책에는 없었다(古書無定)。문선(文選) 오도부(吳都賦) 유규(劉逵)注引作알유(猰貐),장협(張協) 칠명(七命) 이선(李善)注引作알유(猰㺠),이아(爾雅)석수(釋獸)作설유(貐),회남자(淮南子)본경편(本經篇)作알유(猰貐),그것들은 확실히 하나다(其實一也)。

3 학의행(郝懿行)云:「(문선(文選))이선(李善)注장협(張協) 칠명(七命)引此經作황제(黃帝),황자는 덧붙임(黃字衍)。」원가기록(珂案):산해경(山海經)에 임금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데(所載未著主名之「제(帝)」),모두 천제다(皆天帝),除중차칠경(中次七經)「고요산에서(姑媱之山),제의 딸이 죽었다(帝女死焉)」之「제(帝)」염제를 가르키고(指炎帝),중차십이경(中次十二經)「동정산에는(洞庭之山),제의 두 딸이 산다(帝之二女居之)」之「제(帝)」요임금을 가르키며(指堯),해외동경(海外東經)「제가 수해에게 명해(帝令豎亥)」之「제(帝)」우임금을 가르킨다 이것 이외의(指禹而外),나머지는 모두 황제를 가르킨다(餘均指黃帝)。학의행(郝懿行)謂「이선(李善)注장협(張協) 칠명(七命)引此經作황제(黃帝),황자는 덧붙임(黃字衍)」,황자는 확실히 덧붙인 것이 아니고(黃字其實不衍),이 제는 황제가 맞다(此「제(帝)」正是黃帝)。소속산 가까이의 개제는(疏屬山附近之開題),필원(畢沅)說「계두로 의심(疑即笄頭)」,계두는 계두이고(笄頭又即雞頭(팔 번 주석을 보아라(見注八))),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있는 황제는 有黃帝「공동 서쪽에 있는(西至崆峒),계두에 올랐다(登雞頭)」했는데(語),계두에 가까이 있다 볼 수 있고(可見雞頭(개제(開題))附近),황제 신화의 영향이 미치는 땅이 되었다(為黃帝神話所及之地)。서차삼경(西次三經)云:「종산은(鍾山),촉룡의 자손을 고라 하며(其(종산 산신 촉룡(鍾山山神燭龍))子曰鼓),고와 흠비는 보강을 곤륜의 남쪽에서 죽였고(是與欽殺葆江於昆侖之陽),황제는 이들을 종산의 동쪽 요애라는 곳에서 육시하였다(帝乃戮之鍾山之東曰瑤崖)。흠비는 큰 물수리로 되살아 났는데(欽化為大鶚),그 모양이 수리 같고(其狀如雕),검은 무늬에 흰 머리였으며(而黑文白首),붉은 부리에 범의 발톱을 했다(赤喙而虎爪),그 울음소리는 징경이 같고(其音如晨鵠),만나면 큰 전쟁이 난다(見則有大兵);고 역시 준조로 되살아 났는데(鼓亦化為鵔鳥),그 모양이 새매 같고(其狀如鴟),붉은 발에 곧은 부리가 달렸으며(赤足而直喙),누런 무늬에 흰 머리를 했다(黃文而白首),그 울음소리느느 백조 같고(其音如鵠),만나면 그 마을에 큰 가뭄이 든다(見則其邑大旱)。」이 기록이 서로 비슷한데(與此事相類),종산과 곤륜 역시 황제 신화의 영향이 미치는 땅이고(而鍾山與昆侖亦均黃帝神話所及地),글 가운데 제는 황제가 확실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文中之「제(帝)」自是黃帝無疑),더욱이 간접적이 증거를 보면 제는 황제가 맞다(尤可旁證此「제(帝)」之當是黃帝也)。

4 곽박(郭璞)云:「곡은(梏),얽어맨다는 뜻(猶繫縛也);고와 옥의 반절(古沃切)。」오임신(吳任臣)云:「유회맹(劉會孟)曰:『소속산은 현재 섬서 연안부 수덕현이다(疏屬山今陝西延安府綏德縣)。』」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고와 옥의 반절(古沃切)」태평어람(御覽)卷五十引없다(無),송본(宋本)、장경(藏經)本作「音활(活)」,왕념손(王念孫)云:「송본(宋本)音고(苦)。」생각하는 것이 달리 있다(或別有所見也)。

5 곽박(郭璞)云:「질은(桎),계다(械也) 형틀。」학의행(郝懿行)云:「설문해자(說文)(六)云:차꼬는(桎),발에 채우는 형구이다(足械也);곡은(梏),손에 채우는 형구다(手械也)。」

6 곽박(郭璞)云:「머리털과 함께 묶는다(并髮合縛之也)。」원가기록(珂案):문선(文選) 오도부(吳都賦) 유규(劉逵)注、장협(張協) 칠명(七命) 이선(李善)注引이 경문은 모두 머리털과 함께 두 글자는 없다(此經並無「머리털과 함께(與髮)」二字),유수(劉秀) 앞쪽(上) 산해경(山海經) 순서(表敘) 그 부 유향에게 한나라 선제가 산해경에 대하여 물은 일이 있는데(其父劉向以山海經對漢宣帝問事),亦僅云「그 문장(其文)曰:『이부가 알유를 죽여서(貳負殺窫窳),황제는 소속산에 가두었으며(帝乃梏之疏屬之山),그 오른발에 차꼬를 채우고(桎其右足),두 손을 뒤로 젖혀서 묶었다(反縛兩手)。』」역시 머리털과 함께 두 글자가 없다(亦無「머리털과 함께(與髮)」二字)。이것은 문장이 최초로 직접 인용된 것으로(此為最早而又最直接之引文),증거로 충분하며 머리털과 함께 두 글자는 덧붙은게 확실하다(足證「머리털과 함께(與髮)」二字實衍)。又곽박(郭)注「머리털과 함께 묶는다(並髮合縛之也)」,태평어람(御覽)卷五十引此注병은 약으로 쓰여 있고(并作約),머리털을 꼬아 묶는다로 의심(疑本當作「머리털을 꼬아 묶는다(約髮而縛之也)」),이는 합과 비슷하여 잘못 바뀐 모양(而、合形近易訛)。「머리털을 꼬아 묶는다(約髮而縛之)」者,그 머리털을 묶어 그 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게 한다(束其髮以為系而反縛其兩手也)。분명히 옛 시대 그림과 같다(必古時圖象如此)。「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는다(反縛兩手)」그림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므로(猶未能充分說明圖象),故곽박(郭)注「머리털을 꼬아 묶는다(約髮而縛)」가 추가 되었다(以為補充)。반면 합은 잘못된 것이고(及而訛為合),후세 사람들이 머리털을 꼬아 묶는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後人不解「머리털을 꼬아 묶는다(約髮合縛)」之義),함께 묶는다가 되었고(以為既云「함께 묶는다(合縛)」),머리털과 함께가 분명하다(必并髮也),마구 고쳐서 병은 합의 뜻이 되었다(因妄改約為并以就合義)。나중에(至於)경문 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는다 뒤에 덧붙은 머리털과 함께 두글자는(經文「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는다(反縛兩手)」下增「머리털과 함께(與髮)」二字),머리털을 꼬아 두 글자가 잘못 덧붙여졌기 때문이다(當緣注文「머리털을 꼬아(約髮)」二字而誤衍也)。북당서초(北堂書鈔)(당나라(唐) 초기(初) 우세남(虞世南) 지음(撰))卷四十五雖已引이것이 있다 두 글자는(有此二字),분명히 이 경문은 후세 사람들이 고친 것이므로(然是書經後人竄亂),유달리 잘못된 부분이 많고(訛誤特多),확실하지 않아 믿기 어렵다(殆不足憑信)。만약 경문 두 손을 뒤로 젖히고 머리털과 함께 묶는다로 쓰여 있다면(若經文果係「두 손을 뒤로 젖히고 머리털과 함께 묶는다(反縛兩手與髮)」),그림 설명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정확하며(則於說明圖象已甚清楚明白),곽박이 고쳐서 풀이한 머리털과 함께 묶는다는 의심쩍다(毋煩郭更釋以「머리털과 함께 묶는다(并髮合縛)」)。옛날에 알려진 경문에는 확실히 머리털과 함께 두 글자는 없다(故知經文實無「머리털과 함께(與髮)」二字),곽박(郭)注「머리털과 함께 묶는다(并髮合縛)」확실히(實)「머리털을 꼬아 묶는다(約髮而縛)」의 잘못된 것이다(之訛也)。

7 곽박(郭璞)云:「한나라(漢) 선제가(宣帝)(影송본(宋本) 태평어람(太平御覽)卷五十引此注선제(宣帝) 다음 시자가 있다(下有時字)——珂。다음에 나오는 것은 어람으로 줄였다(以下簡稱御覽))아랫 사람에게(使人)(태평어람(御覽) 사인 다음에 착자가 있다(使人下有鑿字))상군에서 발견된 반석을 뚫으라 하였고(上郡發盤(태평어람(御覽)作반(磐))石),돌로 된 집 속에서 한 사람을 얻었다(石室中得一人),맨발에 복사뼈까지 머리털이 덮혀있었고(跣踝被髮),두 손을 뒤로 젖힌체 묶였으며(反縛),한쪽 발에는 형구가 쓰여 있었다(械一足(태평어람(御覽) 한쪽 발에 형구가 쓰여 있었다 다음에 그 당시 사람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장안에 있는 황제에게 가져다 받쳤다 열한 글자가 있다(械一足下有「時人不識,乃載之於長安,帝)」十一字)),신하들에게 물었지만(以問群臣),아는 것이 없었다(莫能知)。유자정(劉子政(유향(劉向)))에 의하면 이 대화는(按此言對之),선제가 크게 놀라서(宣帝大驚),그 당시 사람들에게 산해경을 배웠다(於是時人爭學山海經矣)。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 시체의 모양이 된 것이 많다하였고(論者多以為是其尸象),실제 몸은 아니다(非真體也)。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영묘하고 괴상하게 모양이 바뀌고 달라졌다 하였으며(意者以靈怪變化論(논자는 앞서 나온 논자가 건너와 덧붙은 것으로 의심(論字疑涉上論字而衍))),이론을 헤아리기 힘들다(難以理測);물건에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보고하면(物稟異氣),그렇지 아니한 것이 나오며(出於不然(왕념손(王念孫)、학의행(郝懿行)모두 불연은 자연으로 썼다(均以為不然當作自然))),일반적으로 밀어서 움직일 수 없고(不可以常運推),무게를 헤아릴 수 없다(不可以近數揆矣)。위나라 시대 주나라 왕의 무덤을 발견했었던 사람은魏時有人發故周王(태평어람(御覽)作주나라(周) 영왕(靈王))冢者),함께 묻힌 여자를 찾았는데(得殉(태평어람(御覽)순 다음에 장자가 있다(殉下有葬字))女子),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었으며(不死不生(태평어람(御覽) 불사 다음에 불생 두 글자는 없다(不死下無不生二字))),여러날 숨이 붙어 있고(數日時(태평어람(御覽) 시는 이로 쓰여 있다(時作而))有氣),여러달 말을 할 수 있었으며(數月而能語),스무명 가량의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狀如廿許人)。수도로 보내졌는데(送詣京師),곽태후가 사랑하여 길러서(郭太后愛養之),항상 주변에 있었다(恆在左右)。십여년이 지나(十餘年),태후가 죽자(太后崩),이 여자는 슬픈 마음으로 소리내어 울었고(此女哀思哭泣),일년이 되지전에 죽었다(一年餘而死)。이런 종류(即此類也)。」원가기록(珂案):태평어람(御覽)卷五十引곽박 설명과 현재 책은 서로 다르고 같은 점이 많고(郭注與今本多有異同),앞에 제시된(以上所舉),특히 그 비교된 부분 현재 책에서 우월하다(特其較勝於今本者耳)。경문에(又經文「산 위 나무에 매달다(繫之山上木)」,태평어람(御覽)引作「산 위에 있는 너럭바위 아래 매달다(繫之山上磐石之下)」,북당서초(北堂書鈔)卷四十五引作「통나무 위에 매달다(繫之山木之上)」,현재 책과 경문을 비교하면(以較今本經文),너럭바위 아래로 알려졌는데(知「너럭바위 아래(磐石之下)」云云),후세 사람들이 확실히 해석한 글에는 반석에서 발견되다로 황당하게 고쳐져 있다(為後人因注文有「반석에서 발견(發盤(반(磐))石)」語而妄改之也)。

8 필원(畢沅)云:「개제는 계두산으로 의심(開題疑即笄頭山也),音개와 양의 반절(皆相近)。」원가기록(珂案):육조(六朝) 진나라(陳) 고야왕(顧野王) 여지지(輿地志)(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鈔) 모음(輯))云:「계두산(笄頭山)即계두산(雞頭山)。」당나라(唐) 이태(李泰) 괄지지(括地志)(한학당총서(漢學堂叢書) 모음(輯))云:「계두산은 공동산이라로도 한다(笄頭山一名崆峒山)。황제가 광성자에게 도를 물었다(黃帝問道於廣成子),여기에서(蓋在此)。」개제와 계두와 공동은(開題、笄頭(계두(雞頭))、崆峒),모두 하나로 전해진다(均一音之轉也)。

   위와 이부가 알유를 죽인 신화 관련(關於危與貳負殺窫窳之神話),해내경(海內經)云:「북해의 안에는(北海之內),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여 있는 도계가 항시 창을 두르고 상배를 모셨고(有反縛盜械帶戈常倍之佐),이름을 상고시라 한다(名曰相顧之尸)。」곽박(郭璞)注云:「역시 이부의 신하 위의 종류다(亦貳負臣危之類也)。」의 종류를 베껴쓰지 못해서(竊以為非僅「의 종류(之類)」),확실히 이것은 한 개의 신화에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實亦此一神話之異聞也)。유수(劉秀) 맨 앞(上) 산해경(山海經) 겉표지(表)云:「효선제 시절에(孝宣帝時),상군에서 너럭바위를 두드렸는데(擊磻石於上郡),돌로 된 집으로 빠져 들었다(陷得石室),안에는 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여 있는 도계가 있었다(中有反縛盜械人)。그 당시 신하 수의 아버지 향이 간이대부가 되었는데(時臣秀父向為諫議大夫),이는 이부의 산하를 말한다(言此貳負之臣也)。조서에 어찌 알았는지 물었고(詔問何以知之),역시 산해경에 답이 있다 하였다(亦以山海經對)。그 글에(其文)曰:『이부가 알유를 죽여서(貳負殺窫窳),제는 소속산에 가두었으며(帝乃梏之疏屬之山),그 오른발에 차꼬를 채우고(桎其右足),두 손을 뒤로 젖혀서 묶었다(反縛兩手)。』임금은 크게 놀라며(上大驚),여러 신하들은 산해경을 많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朝士由是多奇山海經者)。」「두 손을 뒤로 젖히고 묶여 있는 도계(反縛盜械)」라 하였는데(之語),공교롭게 같지 ㅇ낳다(當非偶同)。曰「서로 돌아본다(相顧)」者,이부 역시도 같이 형틀에 묶여 있다(或併貳負亦俱械繫也)。경문에 깊숙히 덧붙어(經文奧衍),알 수가 없다(不可知矣)。당나라(唐) 이용(李冗) 독이지(獨異志)云:「한나라 선제 시절 소속산 돌 아래에서 두 명의 사람이 나왔는데(漢宣帝時有人於疏屬山石蓋下得二人),모두 차꼬와 쇠고랑을 차고 있었고(俱被桎梏),장안에 이르자(將至長安),변해 돌이 되었다(乃變為石)。선제는 여러 신한들에게 물었지만(宣帝集群臣問之),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無一知者)。유향(劉向) 대답(對)曰:『이는 황제 시대에 알유는 이부의 신하였는데(此是黃帝時窫窳國負貳之臣),대역의 죄를 저질렀고(犯罪大逆),황제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黃帝不忍誅),소속산으로 귀양 보냈다(流之疏屬之山),만약 현명한 임금이 있으면(若有明君),밖으로 나오게 된다(當得出外)。』임금이 믿지 못하며(帝不信),그것을 요사한 말이라 일컬으며(謂其妖言),유향을 감옥에 가두었다(收向繫獄)。그 아들 유흠은 스스로 나와 모집에 응했고(其子歆自出應募),그 아버지를 구했다(以救其父)。그 아버지는(其父)曰:『일곱살 여자는 젖가슴이 나와야 한다(欲七歲女子以乳之),복변이다(即復變)。』임금은 여자 젖가슴에서(帝使女子乳),이를 얻으면 사람을 얻을 수 있고(於是復能為人),말로 응대할 수 있으니(便能言語應對),유향의 말과 같다(如劉向之言)。임금은 크게 기뻐하며(帝大悅),유향에게 대중대부의 벼슬을 주었고(拜向大中大夫),유흠은 종정경이 되었다(歆為宗正卿)。조서(詔)曰:『어찌 알았는가(何以知之)?』유흠(歆)曰:『산해경에 나왔다(出山海經)。』」又유수(劉秀) 표문의 변화 발전이다(表文神話之演變也)。조심하다(可注意者),이미 숨기지 않고 분명히 말했다(已明言所得為「황제 시대에 알유는 이부의 신하(黃帝時窫窳國負貳之臣)」),그리고(且係「두 사람(二人)」),與해내경(海內經)「서로 돌아본다(相顧)」가 뜻하는 바는(義符),나와있는(亦於)「제(帝)」即「황제(黃帝)」라 추즉되고(之推論),민간전설이 옛부터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於以見民間傳說之恆合古傳),훌륭하게 되었다(為可貴矣)。


大澤方百里1,群鳥所生及所解2。

대택은 넓이가 백 리에 이르며, 새떼가 알을 까고 털갈이를 하는 곳이다.


在鴈門北。

안문 북쪽에 있다.


1 학의행(郝懿行)云:「대황북경(大荒北經)作『대택은 넓이가 천 리에 이른다(大澤方千里)』,곽박(郭)注목천자전(穆天子傳)(卷三『큰새가 털갈이를 한다(碩鳥解羽)』——珂)引此經亦云:『대택은 넓이가 천 리에 이르고(大澤方千里),새떼가 알을 까고 털갈이를 하는 곳이다(群鳥之所生及所解)。』이 백은 천으로 쓰여야 한다(是百當為千矣)。然곽박(郭)注(목천자전(穆天子傳)卷四『서북쪽 대광원에 이르다(至于西北大曠原)』——珂)又引此經云:『세떼가 연못 두 곳에 모여 있다(群鳥所集澤有兩處):한 곳은 백 리이에 이르고(一方百里),한 곳은 천 리에 이른다(一方千里)。』이것에 따르면 하나의 땅이 아니다(是又以為非一地),자세하지 않다(所未詳也)。이선(李善)注별부(別賦)引此經亦云:『대택은 넓이가 백 리에 이른다(大澤方百里)。』이것이 증거이고 현재 책은 잘못되지 않음(可證今本不誤)。」원가기록(珂案):이 경문에서 설명하는 대택은(此經所說大澤),확실히 두 곳이 있다(實有兩處)。대황북경(大荒北經)云:「대택이 있고(有大澤),넓이가 천 리에 이르며(方千里),세떼들이 털갈이는 하는 곳이다(群鳥所解)。」이는 천 리에 이르는 대택은(此千里大澤也),위치가 서북쪽에 있다(位在西北方)。下云「과보가 해를 쫓차(夸父欲追日景),우곡에 이르렀다(逮之于禺谷),황하를 거의 마셨으나 모라랐고(將飲河而不足也),대택으로 달려갔으나(將走大澤),다다르지 못하여(未至),이곳에서 죽었다(死於此)。」과보가 달려간 곳은 대택이고(所走者即此大澤),亦목천자전(穆天子傳)卷四이른바(所謂)「북쪽의 텅 비고 너른 들판에 이르러(北至曠原之野),날아 다니는 새가 털갈이를 한다(飛鳥之所解其羽)」의 텅 비고 너른 들판(之曠原也)。곽박(郭)注목천자전(穆天子傳)所引乃대황북경(大荒北經) 넓이가 천 리에 이르는 대택(方千里之大澤)。이곳 대택에 이르다(至於此處大澤),實해내북경(海內北經)所記「순임금의 아내 등비씨는(舜妻登比氏),소명과 촉광을 낳았고(生宵明燭光),황하와 대택에 살았으며(處河大澤),두 여인의 신통한 능력은(二女之靈),이곳 사방 백 리를 비출 수 있었다(能照此所方百里)」의 백 리에 이르는 대택은(之百里大澤),위치가 북쪽에 있으며(位在北方),현재 황하에의 물굽이에 둘러싸인 부근의 땅(或即今河套附近之地)。이 구절의 글자는(又此節文字)(이어지는 두 구절과 같다(連同以下二節)),亦應在해내북경(海內北經)「소명과 촉광(宵明燭光)」구절의 앞에(節之前),대체로 땅을 바라보는 처음 방향과 위치가 서로 일치한다(始與方位地望大致相符)。

2 곽박(郭璞)云:「여러 마리 새가 이곳에서 알을 낳고(百鳥於此生乳),털갈이를 한다(解之毛羽)。」원가기록(珂案):「털갈이를 한다(解之毛羽)」문장의 뜻이 되지 않는다(不成文義),송본(宋本)、장경(藏經)本作「부드러운 털과 굵은 털과 깃털을 떼어낸다(解氄毛羽)」,맞다(是也)。학의행(郝懿行)云:「이 땅은 한해다(此地即翰海也),說見대황북경(大荒北經)。」한해는 옛 책에서 일반적으로 소호의 땅을 가리키고(翰海古本泛指沙漠之地),북쪽에 한해가 있고(北方有翰海),서북쪽 역시도 한해가 있으며(西北亦有翰海),사기(史記) 곽거병전(霍去病傳):「고연에서 봉선을 하였고(禪於姑衍), 한해에 높은 곳에 오랐다(登臨翰海)。」이 북쪽의 한해다(此北方之翰海也)。당나라(唐) 잠삼(岑參) 백설가송무판관귀경(白雪歌送武判官歸京) 시(詩)云:「한해는 백 장 길이의 얼음이 방패같이 가로막고 있고(翰海闌干百丈冰),애처럽고 질펀히 흐르며 슬픔을 느끼게 하는 구름은 만 리에 엉겨있다(愁雲慘淡萬里凝)。」이곳이 서북쪽의 한해다(此西北之翰海也)。학의행 기록한 대택은 한해가 맞다(郝以此處所記大澤為翰海是也),그러므로 대황북경에 기록된 대택은 틀린 것으로 제대로 구별하지 했다(然以之混同於대황북경(大荒北經)所記大澤則非也)。


鴈門山1,鴈出其閒2。

안문산, 그 사이에서 기러기가 나온다.


在高柳北3。

고류 북쪽에 있다.


1 학의행(郝懿行)云:「회남자(淮南) 지형훈(墬形訓)云:『촉룡은 안문 북쪽에 있고(燭龍在鴈門北),위우산을 덮고 있다(蔽於委羽之山)。』위우산은 안문산의 이어진 산기슭으로 의심(疑委羽山即鴈門山之連麓),위우는 털갈이의 뜻이다(委羽亦即解羽之義)。강엄(江淹) 별부(別賦) 이른바(所謂『안산은 구름이 빽빽이 들어서다(鴈山參雲)』也)。」

2 학의행(郝懿行)云:「수경(水經)注(누수(水))及초학기(初學記)三十卷引此經並作『그 문에서 기러기가 나온다(鴈出其門)』。」원가기록(珂案):현재 책(今本)(온석재총서(蘊石齋叢書) 책(本))초학기(初學記)仍作「그 사이에서 기러기가 나온다(鴈出其閒)」。

3 필원(畢沅)云:「산은 현재 산서 대주 북쪽 삼십 오 리에 있다(山(고류산(高柳山)——珂)在今山西代州北三十五里)。」


高柳在代北1。

고류는 대 북쪽에 있다.


1 원가기록(珂案):수경(水經)注누수(水)引이 경문에는 북이 중으로 쓰여 있다(此經北作中),云:「그 산은 산골짜기가 매우 깊어(其山重巒疊巘),구름으로 둘러쌓여 있으며(霞舉雲高),어슴푸레한 산이 이어져(連山隱隱),동쪽 요동의 변방까지 나타난다(東出遼塞)。」장경(藏經)本북이 지로 쓰여 있다(北作地)。


后稷之葬,山水環之1。

후직의 무덤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다.


在氐國西2。

저국 서쪽에 있다.


1 곽박(郭璞)云:「광도의 들판이 있다(在廣都之野)。」원가기록(珂案):해내경(海內經)云:「서남쪽 흑수 사이에(西南黑水之閒),도광의 들판이 있는데(有都廣之野),여기서 후직을 장사 지냈다(后稷葬焉)。그 성의 넓이는 삼백 리에 이르고(其城方三百里),세상 속에서(蓋天地之中),소녀가 나왔다(素女所出也)(앞에 열여섯 글자는 경문에 곽박 설명에 잘못 쓰였고(以上十六字係經文誤入郭注者),근거(據) 왕념손(王念孫)、학의행(郝懿行)校다시 씀(復))。여기에는 기름진 콩과 기름진 벼와 기름진 기장과 기름진 피가 있고(爰有膏菽、膏稻、膏黍、膏稷),온갖 곡식이 절로 자라며(百穀自生),사시사철 씨를 뿌리고 심을 수 있다(冬夏播琴)。난조는 스스로 노래하고(鸞鳥自歌),봉조는 스스로 춤을 춘다(鳳鳥自儛)영수 나무는 열매를 맺고 꽃이 피고(靈壽實華),풀과 나무가 모이는 곳이다(草木所聚)。여기에는 온갖 짐승이(爰有百獸),서로 무리를 지어 산다(相群爰處)。이곳에 풀은(此草也),사시사철 죽지 않는다(冬夏不死)。」후직이 묻힌 곳은 절을 따라 달라지는 경치가 기록되었는데(敘寫后稷葬所景物),자세하고 빠짐없이 이루어졌고(至為詳盡),확실히 인간낙원의 기풍이 있다(實有人間樂園之概)。그러나 경문에 쓰인 도광의 들판은(惟經文作都廣之野),곽박(郭)注則作광도의 들판(廣都之野)。옛 책을 가만히 살펴보면(夷考古籍所引),도광과 광도로 같지 않다(或作都廣、或作廣都不一(詳해내경(海內經)「도광의 들판(都廣之野)」節注))。화양국(華陽國) 기록(志) 촉지(蜀志)云:「광도현은(廣都縣),군에서 서쪽으로 삼십 리에 이르고(郡(성도를 가르킨다(指成都)——珂)西三十里),원삭 이 년 째에(元朔(한나라(漢) 무제(武帝) 연호(年號)——珂)二年置),소금을 얻기 위해 판 우물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밭이 기름지다(有鹽井漁田之饒)。」근거(據) 촉중명승기(蜀中名勝記(명나라(明) 조학전(曹學佺) 지음(撰))),그 땅은 썅류현에 들어가고(其地蓋屬雙流縣),현재 성도와 썅류의 사이에 있다( 在今成都與雙流之間)。故양신(楊慎) 산해경(山海經) 보충설명(補注)逕云:「흑수와 광도는(黑水廣都),현재 성도이다(今之成都也)。」후직의 무덤을 바라고며 짐작하면(衡之以后稷葬所地望),대체로 가까우니(大致相近),도광과 광도는 두 개가 아니고 하나가 맞다(故都廣、廣都,當是一而非二也)。후직의 섬돌은 도광의 들판에 묻힌 곳 밖에 있으며(后稷除在都廣之野之葬所外),아직도 그곳은 괴강산 가까운 못에 잠겨 있다(尚有其在槐江之山附近所潛之淵)。서차삼경(西次三經)云:「괴강산은(槐江之山),여기가 바로 천제의 평포이며(實惟帝之平圃),서쪽으로 대택을 바라보이고(西望大澤),후직이 죽어서 신이 된 곳이다(后稷所潛也)。」곽박(郭璞)注云:「후직은 신령스런 지혜를 가지고 태어났고(后稷生而靈智),더불어 죽은 뒤에는(及其終),육체를 탈피하여 이 못의 신이 되었다(化形遯此澤而為之神),부열은 죽은 뒤 기미성을 타고 하늘에 올라 별이 되었다(亦猶傅說騎箕尾也)。」후직의 죽음 관련 신화의 다른 이야기(蓋關於后稷死的神話之異聞),곤이 우연에 가라앉다(猶鯀潛羽淵也)。이른바(所謂)「잠(潛)」者,샘솟는 물의 땅에서 육체를 탈피한다이고(乃化形遯身於水泉之地),틀렸다(非) 곽박(郭)注「부열은 죽은 뒤 기미성을 타고 하늘에 올라 별이 되었다(傅說騎箕尾)」과 비교된다(之比也)。나중에(至於) 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후직의 무덤은 건목 서쪽에 있고(后稷壟在建木西),그곳 사람들은 죽어도 다시 되살아나며(其人死復蘇),그 반어는 그 사이에 있다(其半魚在其間)。」則후직은 죽은 뒤에(后稷死後),이미 묻혔고(既已埋葬),다시 변하여 기이한 물건이 되었다(復化形為異物),동시에 장과 잠의 두 설명은 하나다(實兼「장(葬)」與「잠(潛)」二說而為一也)。

2 원가기록(珂案):해내남경(海內南經)云:「저인국은 건목 서쪽에 있다(氐人國在建木西)。」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후직의 무덤은 건목 서쪽에 있다(后稷壟在建木西)。」후직의 무덤과 저인국 모두 건목의 서쪽에 있다(則后稷壟與氐人國俱在建木之西)。다시 말하면(此復)云:「후직의 무덤은(后稷之葬),산과 강이 둘러싸고 있다(山水環之)。저국의 서쪽에 있다(在氐國西)。」저국은 저인국이다(氐國當即氐人國也),인자가 빠짐(脫人字)。


流黃酆氏之國1,中方三百里2。

유황 풍씨국은, 성 안의 넓이가 삼백 리에 이른다.


有塗四方3,中有山4。

네모난 도로가 있고, 성 안에 산이 있다.


在后稷葬西。

후직의 무덤 서쪽에 있다.


1 원가기록(珂案):해내경(海內經)云:「나유황 신씨라는 나라가 있는데(有國名流黃辛氏),그 지역은 넓이가 삼백 리에 이르고(其域中方三百里),其出是麈(주는 원래 진토라 쓰여 있고(麈原作塵土),근거(據) 청나라(清) 장지양(蔣知讓) 고침(校改),자세한 설명은 끝부분 주석(說詳該節注)。파수산이 있는데(有巴遂山),여기서 승수가 나온다(繩水(승은 원래 민으로 쓰여 있다(繩原作澠),從수경(水經)注약수(若水)引 이 경문에 고쳐짐(此經改))出焉)。」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유황 옥민은 그 북쪽에 있고(流黃沃民在其北),넓이가 삼백 리에 이른다(方三百里)。」이 나라다(即此國)。민자는 씨자가 잘못됨(民字或氏字之訛)。

2 곽박(郭璞)云:「나라의 성 안쪽을 말한다(言國城內)。」원가기록(珂案):경문에(經文「안의 넓이가 삼백 리에 이른다(中方三百里)」者),即해내경(海內經) 이른바(所謂)「그 지역은 넓이가 삼백 리에 이른다(其域中方三百里)」也,곽박(郭)注 성자는 역자로 바꾸어야 한다(城字當為字之訛)。

3 곽박(郭璞)云:「도는(途),도다(道)。」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도는(途),송본(宋本)作도(塗),맞다(是也),경문에 도로 쓰여야 한다(經文正作塗)。

4 원가기록(珂案):即해내경(海內經) 이른바(所謂)「파수산(巴遂山)」也。


流沙出鍾山1,西行又南行昆侖之虛2,西南入海黑水之山3。

종산에서 나오는 유사는, 서쪽으로 가다 다시 남쪽 곤륜허로 가고, 바다와 흑수산 서남쪽으로 들어간다.


1 학의행(郝懿行)云:「초사(楚詞) 초혼(招魂)云:『해로운 서쪽은(西方之害),유사가 천 리에 이른다(流沙千里)。』왕일(王逸)注云:『유사는(流沙),모래가 흘러 움직인다(沙流而行也)。』고유(高誘)注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편(本味篇)云:『유사는 돈황군 서쪽에 있고(流沙在敦煌郡西),팔백 리에 이른다(八百里)。』수경(水經)(우공산수택지소재(禹貢山水澤地所在))云:『유사의 땅은 장액 거연현 동북쪽에 있다(流沙地在張掖居延縣東北)。』注云:『유사는(流沙),모래와 물이 흘러 움직인다(沙與水流行也)。』亦言종산에서 나와(出鍾山),서쪽으로 움직여(西行),엄자산에 이르며(極崦嵫之山),서해군 북쪽에 있다(在西海郡北)。」

2 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作곤륜허(崑崙墟),아래와 같다(下同)。

3 곽박(郭璞)云:「현재 서해 거연택(今西海居延澤)。상서(尚書)(우공(禹貢))이른바(所謂)『유사(流沙)』者,모양이 달에 오 일 생긴 것과 같다(形如月生五日也)。초승달?」양신(楊慎)云:「모양이 반달 같다 일컫는다(謂形如半月也)。당나라(唐) 시(詩):강가의 모래톱이 달 같다(江畔洲如月)。」원가기록(珂案):곽박(郭) 양신(楊)之說유사(流沙),시의 생각을 얽어 놓음(乃詩之構想也)。송나라(宋) 심괄(沈括) 몽계필담(夢溪筆談)卷三云:「내가 무정하를 건너고(予嘗過無定河),움직이는 모래를 건너며(度活沙),사람과 말로 밟아보니(人馬履之),백 걸음 밖이 모두 움직이고(百步之外皆動),비틀비틀한 것이 모래 벌판 위를 다니는 사람 같다(澒澒然如人行幕上)。그 아래 발이 닿는 곳이 비록 단단하나(其下足處雖甚堅),그곳은 한 번에 빠짐을 당할 것 같으며(若遇其一陷),사람과 말과 낙타와 수레가(則人馬車),때에 따라 모두 빠지고(應時皆沒),여러 사람이 같이 빠지게 되도 살아남는 이가 없었다(至有數百人平陷無孑遺者)。或謂:이것이 유사다(此即流沙也)。又謂:모래가 바람 따라 흐르는데(沙隨風流),유사라 일컫는다(謂之流沙)。」이 유사는 과학적으로 묘사된다(則是流沙之科學狀寫也)。


東胡1在大澤東。

동호는 대택 동쪽에 있다.


1 학의행(郝懿行)云:「나라 이름(國名也)。이윤(伊尹) 사방령(四方令)云:『정북쪽으로 동호(正北東胡)。』자세히(詳) 후한서(後漢書) 오환선비전(烏桓鮮卑傳)。광운(廣韻)引 전연록(前燕錄)云:『옛날에 고신씨가 바닷가에서 헤엄치다(昔高辛氏游於海濱),막내 아들인 염월을 머무르게 하고 북이에 살게 하였다(留少子厭越以居北夷),자몽의 들판에 있던 마을은(邑于紫蒙之野),동호라 한다(號曰東胡)。』云云。그 후손은 모용씨가 되었다(其後為慕容氏)。」

   원가기록(珂案):「동호(東胡)」다음 네 구절은 옮겨야 하는데(已下四節當移) 해외북경(海外北經)「순임금의 아내 등비씨(舜妻登比氏)」의 후손(之後),해내동경(海內東經)「돈단과 새환은 유사 안에 있는 나라다(國在流沙中者埻瑞、璽㬇)」다음 세 구절은 이곳으로 옮겨야 한다(已下三節當移於此處)。자세한 설명(說詳)上卷「흉노(匈奴)」節注。


夷人在東胡東

이인은 동호국 남쪽에 있다.


貊國在漢水東北1。

맥국은 한수 동북쪽에 있다.


地近于燕,滅之2。

연나라와 가까웠고, 연나라에게 멸망했다.


1 곽박(郭璞)云:「현재 부여국은 예맥의 옛 땅이고(今扶餘國即濊貊故地),장성 북쪽에 있다(在長城北),현토에서 천 리 떨어져 있고(去玄菟千里),매우 좋은 말과 붉은 옥과 담비 가죽과 멧대추 같은 큰 구슬이 나온다(出名馬、赤玉、貂皮、大珠如酸棗也)。」학의행(郝懿行)云:「(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설명(說) 부여와 이 설명이 같다(夫餘與此注同),即곽박(郭) 설명이 근거다(所本也)。다만 담비 가죽은 담비와 검은 원숭이로 쓰여 있는데(唯貂皮作狖[犭宂]),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又담비와 원숭이라 쓰여 있다(作貂豽)。예문유취(藝文類聚)八十三卷引광지(廣志)曰:『붉은 옥은 부여에서 나온다(赤玉出夫餘)。』」

2 학의행(郝懿行)云:「대아 한혁편(大雅韓奕篇)云:『아마도 추와 맥이다(其追其貊)。』謂此。」


孟鳥1在貊國東北,其鳥文赤、黃、青,東鄉2。

맹조는 맥국 동북쪽에 있는데, 그 새의 무늬는 붉고 누렇고 푸르며, 동쪽을 보고있다.


1 곽박(郭璞)云:「역시 새의 이름이다(亦鳥名也)。」학의행(郝懿行)云:「해외서경(海外西經)有『멸몽조는 결흉국 북쪽에 있다(滅蒙鳥在結匈國北)』,이 새 역시도 의심(疑亦此鳥也),멸몽의 소리는 맹과 비슷(滅蒙之聲近孟)。」원가기록(珂案):학의행(郝) 설명(說) 맞다(是也),자세히(詳) 해외서경(海外西經)「멸몽조(滅蒙鳥)」節注。

2 원가기록(珂案):장경(藏經)本황자 앞에 적자는 없다(黃上無赤字)。


海內昆侖之虛1,在西北,帝之下都2。

해내곤륜허는, 서북쪽에 있고, 천제의 하계 도읍이다.


昆侖之虛,方八百里,高萬仞3。

곤륜허는, 넓이가 팔백 리에 이르고, 높이가 만 길에 이른다.


上有木禾,長五尋,大五圍4。

곤륜허 위에 있는 목화는, 높이가 다섯 심이고, 크기가 오 위에 이른다.


面5有九井6,以玉為檻7。

앞쪽에 있는 아홉 개의 우물에는, 옥으로 된 울타리가 있다.


面有九門8,門有開明獸守之,百神之所在9。

앞쪽에 아홉 개의 문이 있는데, 문을 개명수가 지키고 있으며, 온갖 신이 있는 곳이다.


在八隅之巖10,赤水之際,非仁羿莫能上岡之巖11。

팔우암 바위굴이 있는 곳은, 적수의 가장자리이고, 예 같이 어진 사람이 아니면 상강암에 오를 수 없다.


1 곽박(郭璞)云:「해내는(言海內者),명나라가 나라 밖의 곤륜산을 다시 소유함(明海外復有昆侖山)。」학의행(郝懿行)云:「해내곤륜은(海內昆侖)即서차삼경(西次三經) 곤륜구다(昆侖之丘也)。우공(禹貢) 곤륜 역시 이를 가리킨다(昆侖亦當指此)。해내동경(海內東經)云:『곤륜산은 서호 서쪽에 있다(昆侖山在西胡西)。』곤륜 하나로 구별(蓋別一昆侖也)。又수경(水經) 황하(河水)注引이 경문(此經) 곽박(郭)注云:『이는 남다르고 특별한 작은 곤륜이 있다(此自別有小昆侖也)。』현재 책에는 이 글귀가 빠진 것으로 의심(疑今本脫此句)。거친 오랑캐 땅의 산은(又荒外之山),곤륜이라는 이름이 많다(以昆侖名者蓋多焉)。故수경(水經) 우본기(禹本紀)並言곤륜은 숭고에서 오만 리 떨어져 있다(昆侖去嵩高五萬里)。수경(水經)注又言진나라는 곤륜에서 칠만 리 떨어져 있다(晉去昆侖七萬里)。又引십주기(十洲記)『곤륜산은 서해의 술지에 있고(昆侖山在西海之戌地),북해의 해지는(北海之亥地),곤륜에서 십삼만 리 떨어져 있다(去岸十三萬里)』,모두 하나의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似皆別指一山)。然則곽바(郭)云나라 밖의 곤륜산을 다시 소유함은(海外復有昆侖),어찌 믿지 안겠는가(豈不信哉)。설문해자(說文)(八)云:『허는(虛),큰 언덕이고(大丘也),곤륜ㄱ두는 곤륜허를 일컫는다(昆侖丘謂之昆侖虛)。』」

2 원가기록(珂案):서차삼경(西次三經)云:「곤륜구는(昆侖之丘),확실히 천제의 하계 도읍이고(實惟帝之下都),신 육오가 관리한다(神陸吾司之)。그 신의 모양은 범의 몸에 아홉 개의 꼬리가 달렸고(其神狀虎身而九尾),사람 얼굴에 범의 발톱이 달렸다(人面而虎爪)。이 신은(是神也),하늘의 아홉 구역과(司天之九部),천제의 정원 계절을 다스린다(及帝之囿時)。여기 있는 새는(有鳥焉),그 이름을 순조라 하는데(其名曰鶉鳥),이 새는 천제의 온갖 물건을 관리한다(是司帝之百服)。」최초로 관련 있는 곤륜신화의 기록이다(即最早有關昆侖神話之記敘也)。「천제의 하계 도읍이다(帝之下都)」,곽박(郭璞)云:「천제의 도읍의 어른을 섬기는 사람(天帝都邑之在下者)。」목천자전(穆天子傳)卷二云:「신유년 좋은 날(吉日辛酉),천자는 곤륜구에 올라(天子升于昆侖之丘),황제의 대궐을 보았다(以觀黃帝之宮)。」이 천제는 황제가 확실하다(則此天帝實黃帝也)。「범의 몸에 아홉 개의 꼬리가 달렸고(虎身而九尾)、사람 얼굴에 범의 발톱이 달렸다(人面而虎爪)」의 신 육오는(之神陸吾),即此經所記「몸은 큰 범의 종류이고 아홉 개의 머리가 달렸으며 모두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身大類虎而九首、皆人面)」의 개명수(之開明獸也),「천제의 온갖 물건을 관리한다(司帝百服)」의 순조(之鶉鳥(금경(禽經)云:붉은 봉을 순조라 일컫는다(赤鳳謂之鶉))),개명 서쪽 봉황과 난조의 종류(即開明西鳳皇鸞鳥之屬也):그 말이 약간 달라 전해 들음이 같지 않다(以傳聞不同而略異其辭也)。

3 곽박(郭璞)云:「모두 빈터의 넓이와 높고 낮음을 일컫는다(皆謂其虛基廣輪之高庳耳)。여기부터 위까지 이천 오백 리 남짓이고(自此以上二千五百餘里),위에는 예천과 화지가 있으며(上有醴泉華池),숭고까지 오만 리 떨어져 있다(去嵩高五萬里),모두 세상의 안이다(蓋天地之中也)。見우본기(禹本紀)。」원가기록(珂案):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引우본기(禹本紀)云:「황하는 곤륜에서 나온다(河出崑崙)。곤륜은 그 높이가 이천 오백 리 남짓이고(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해와 달이 서로 물러나며 숨어서 밝게 빛난다(日月所相避隱為光明也),산 위에 예천과 요지가 있다(其上有醴泉、瑤池)。」

4 곽박(郭璞)云:「목화는(木禾),곡식의 종류다(穀類也),흑수의 언덕에서 자라며(生黑水之阿),먹을 수 있다(可食),見목천자전(穆天子傳)。」원가기록(珂案):목천자전(穆天子傳)卷四云:「흑수의 언덕이 있는데(黑水之阿),여기에 있는 야맥과(爰有野麥),여기에 있는 기근은(爰有荅堇)(기근(祇謹)二音——原注),이른바 서쪽 사막의 목화다(西膜之所謂木禾)。」

5 원가기록(珂案):초하기(初學記)卷七引此經作상(上)。

6 원가기록(珂案):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편(本味篇)云:「물 맛이 좋은(水之美者),곤륜의 우물(昆侖之井)。」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곤륜 근처에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昆侖旁有九井)。」

7 곽박(郭璞)云:「함은(檻),난이다(欄)。」

8 원가기록(珂案):사기(史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바른 뜻(正義)引 이 경문에는 근처에 다섯 개의 문이 있다고 쓰여 있다(此經作旁有五門)。태평어람(御覽)卷三八引이 경문에는 앞에 다섯 개의 문이 있다ㅗ 쓰여 있다(此經作面有五門)。

9 원가기록(珂案):수경(水經)注황하(河水)引둔갑개산도(遁甲開山圖) 영씨(榮氏)注云:「세상의 신선과 성인은(天下仙聖),곤륜산 위에 있는 주주를 다스린다(治在柱州崑崙山上)。」십주기(十洲記)亦云:「(곤륜(崑崙))존귀하고 신령하여 숭배하는 곳이고(真官仙靈之所宗),많은 물건과 모든 생물이(品物群生),희한하고 특별이 뛰어나며(希奇特出),모두 여기에 있다(皆在於此)。신선들이 많아(天人濟濟),반드시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不可悉記)。」이것은 신화와 선화가 변해 저절로 그렇게 나타남(則是神話仙話化之自然表現也)。

10곽박(郭璞)云:「바위 사이에 있다(在巖閒也)。」원가기록(珂案):여러 신들이 모두 곤륜 팔우암 동굴에 사이에 살고 있다(謂百神居處昆侖八隅巖穴之間)。대황서경(大荒西經)云:「곤륜구에(昆侖之丘),옥비녀를 착용한 사람이 있는데(有人戴勝),범 이빨에(虎齒),표범 꼬리가 달렸으며(豹尾),동굴에 산다(穴處),이름을 서왕모라 한다(名曰西王母)。」신이 사는 곳이 바위 동굴이 증거라 할 수 있다(可證神處巖穴),옛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꾸밈이 없고 수수하여(在古人質樸的思想觀念中),모두 충분히 다르다(並不足異)。

11곽박(郭璞)云:「어질지 않은 사람과 재능과 기예가 예 같은 사람은 이 산의 높을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이 높고 험한 바위를 얻을 수 없다(言非仁人及有才藝如羿者不能得登此山之岡嶺巉巖也)。예는 서왕모에게 약 부탁하여 맛을 보고(羿嘗請藥西王母),도를 깨달았다(亦言其得道也)。예는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羿一或作聖)。」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예는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羿一或作聖)」,송본(宋本)、장경(藏經)本모두 일자가 없고(俱無一字),일자는 덧붙여짐(一字衍)。「인예(仁羿)」,곽박(郭)풀이(釋)為「어진 사람과 재능과 기예가 예 같은 사람(仁人及有才藝如羿者)」,구불구불하여 의심(嫌迂曲);현대 사람들의 연구가 근거인데(據近人研究),인예는(仁羿),이예다(即夷羿),「인(仁)」即「이(夷)」의 빌린 글자(之借字),「이(夷)」의 옛 중문은 이렇게 쓰여 있고(之重文古作[入二]),더불어 인의 음과 모양이 모두 비슷하여(與「인(仁)」音形並近),비교적 확실하다(較確)。곽박(郭)云「예는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羿或作聖)」,역시 알려짐(亦通)。「어질고 덕망이 있는 성인이 아니면 상강의 바위에 오를 수 없다(非仁聖莫能上岡之巖)」,猶해외서경(海外西經)稱「언덕에 사는 용어는 그 북쪽에 있고(龍魚陵居在其北),신성한 자만이 이것을 타고 천하를 다닐 수 있다.(即有神聖乘此以行九野)」,단지 잠시 마주하여 재능과 품덕을 기리어 칭송할 뿐이다(無非對古有才德者之讚美而已)。그러나 이곳 인예는 확실이 예이고(然此處仁羿實當即羿),예의 신화와 관련된 떨어진 조각들이 여기 저기서 보인다(為有關羿神話之零片而散見於此者)。회남자(淮南子) 남명편((覽冥篇)云:「예는 불사약을 서왕모에서 부탁했는데(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항아는 이를 훔쳐 달로 달아났다(姮娥竊以奔月),달아난 것을 마음 아파했고(悵然有喪),다시 불사약을 얻을 수 없었다(無以續之)。」고유(高誘)注云:「항아는(姮娥),예의 아내다(羿妻);예는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부탁하였고(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아직 먹지 않았다(未及服之),항아는 이를 훔쳐 먹고(姮娥盜食之),신선이 되었고(得仙),달 속으로 도망쳐 달의 요정이 되었다(奔入月中為月精也)。」「달의 요정(為月精)」의 이야기는(之說),현재 회남자 책에서 보지 못함(不見於今本) 회남자(淮南子),唯초학기(初學記)卷一引옛 책(古本) 회남자(淮南子) 있다(有之),云「(항아(姮娥))달에 몸을 맡겼고(託身於月),이는 두꺼비가 되었으며(是為蟾蠩),달의 요정이 되었다(而為月精)」,이 문장의 품이 높고 온화하지 않은 열두 글자는 현대 사람들이 덮어씌웠다(此十二字蓋後人或以其「문장의 품이 높고 온화하지 않다(不雅馴)」),지워 버림(刊落去也)。「예 같이 어진 사람이 아니면 상강암에 오를 수 없다(非仁羿莫能上岡之巖)」者,예가 이 강암에 올라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부탁하였다(羿登此(곤륜산(昆侖山))岡巖向西王母請不死藥也)。서왕모는 옥산에 산다(西王母或居玉山)。서차삼경(西次三經)云:「옥산(玉山),이 산에 서왕모가 산다(是西王母所居也)。」혹은 엄자산에 산다(或居弇茲山)。목천자전(穆天子傳)卷三云:「마침내 천자는 말을 몰아 엄산에 올랐고(天子遂驅升于弇山),곧 엄산의 돌에 명성과 업적을 세겼으며 회화나무를 심었다(乃寄名跡于弇山之石而樹之槐),가장자리는 서왕모의 산이라 한다(眉曰西王母之山)。」곽박(郭璞)注:「엄은(弇),엄자산이고(弇茲山),해가 지는 곳이다(日入所也);이곳은 서왕모가 사는 곳이라 한다(言是西王母所居也)。」혹은 곤륜에 산다(或居昆侖)。대황서경(大荒西經)云:「큰산이 있는데(有大山),이름을 곤륜구라 한다(名曰昆侖之丘)。산 아래는 약수의 못으로 둘러싸여 있다(其下有弱水之淵環之);산 밖에는 염화산이 있는데(其外有炎火之山),물건을 던지면 바로 타버린다(投物輒然)。옥비녀를 착용한 사람이 있는데(有人戴勝),범 이빨에(虎齒),표범 꼬리가 달렸으며(豹尾),동굴에 산다(穴處),이름을 서왕모라 한다(名曰西王母)。」비록 전설 속 서왕모가 사는 땅은 하나가 아니지만(雖傳說中西王母居地非一),오로지 곤륜에만 불사수와 불사약이 있다(而唯昆侖有不死樹及不死藥)。本卷下文云:「개명수 북쪽에 시육과 주수와 문옥수와 우기수와 불사수가 있다(開明北有視肉、珠樹、文玉樹、玗琪樹、不死樹)。」又云:「개명 동쪽에 무팽과 무저와 무양과 무이와 무범과 무상이 있고(開明東有巫彭、巫抵、巫陽、巫履、巫凡、巫相),알유시와 가까이 있으며(夾窫窳之尸),모두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불사약을 쥐고 있다(皆操不死之藥以距之)。」則예는 상강암에서 부탁 한 사람(羿「상강암(上岡之巖)」之所請者),곤륜의 서왕모가 살고 있다(亦唯有居於昆侖之西王母耳)。곽박(郭璞) 도찬(圖讚)云:「수많은 물건을 잠깐 보니(萬物暫見),사는 것이 덧없다(人生如寄);불사수의(不死之樹),목숨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壽蔽天地);서모에게 약을 부탁하고(請藥西姥),탄식하는 예 같구나(烏得如羿)!」이렇게 풀이 할 수 있다(是能得其解者)。


赤水出東南隅,以行其東北1。

적수는 동남쪽 구석에서 나오고, 그 동북쪽으로 흐른다.


1 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 다음 아홉 글자가 있다(下有「서남쪽으로 흘러 남해의 염화 동쪽으로 들어간다(西南流注南海厭火東)」九字),명나라(明) 장본(藏本)、오관(吳寬) 초본(抄本)、청나라(清) 오임신(吳任臣)本、왕불(汪紱)本、필원(畢沅)校本、백자전서(百子全書)本모두 있다(並有之),빠진 글귀다(當係脫文)。


河水出東北隅,以行其北,西南又入渤海,又出海外,即西而北,入禹所導積石山1。

황하는 동북쪽 구석에서 나오는데, 그 북쪽으로 흐르다, 서남쪽 흘러 또 발해로 들어가고, 또 바다 밖으로도 나가는데, 서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우소도적석산으로 들어간다.


1 곽박(郭璞)云:「우임금이 물을 흐르게 하려고 무너뜨렸다(禹治水復決疏之),故云『황하의 물길에 돌을 쌓음(導河積石)』。」원가기록(珂案):이(此) 적석산(積石山)蓋即서차삼경(西次三經)所云「적석산(積石之山),산 아래에 석문이 있고(其下有石門),황수가 좁은 협곡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河水冒以西流)」의 적석산이다(之積石山也),학의행(郝懿行)以此為해외북경(海外北經) 우소적석산이(禹所積石之山),아니다(非也),자세한 설명(說詳)該節注。


洋水1、黑水2出西北隅,以東,東行,又東北,南入海,羽民南3。

상수와 흑수는 서북쪽 구석에서 나오는데 , 상수와 흑수의 동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다,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 남쪽으로 들어간다, 우민국 남쪽이다.


1 곽박(郭璞)云:「音상(翔)。」학의행(郝懿行)云:「고유(高誘)注회남자(淮南) 지형훈(墬形訓)云:『상수는 농서를 지나 저도 동쪽 무도에 이르러 한양이 되었다(洋水經隴西氐道東至武都為漢陽(양자는 덧붙인 것으로 의심(陽字疑衍)——珂)),或作양(養(현재 책(今本) 고유(高)注양 다음 수자가 있다(養下有水字)——珂)也)。』수경(水經)注(양수(漾水))引감인(闞駰)云:『한은 양이 되거나(漢或為漾),양수는 곤륜 서북쪽 구석에서 나오는데(漾水出昆侖西北隅),저도에 이르러(至氐道),거듭 물이 나오는 것이 양수가 되었다(重源顯發而為漾水)。』이 상수가 양수다(是洋水即漾水),글자가 다르다(字之異也)。」원가기록(珂案):서경(書) 우공(禹貢)云:「파총의 양수를 이끌어(嶓冢導漾),동쪽으로 흘러 한수가 되었다(東流為漢)。」이 양수다(即此洋水也)。

2 원가기록(珂案):서경(書) 우공(禹貢)云:「흑수와 서하 사이는 옹주다(黑水西河惟雍州)。」又云:「흑수의 물길은 삼위에 이르고(導黑水至于三危),남해로 들어간다(入于南海)。」即此。

3 원가기록(珂案):우민(羽民)已見해외남경(海外南經)。


弱水、青水出西南隅1,以東,又北,又西南,過畢方鳥東2。

약수와 청수는 서남쪽 구석에서 나오는데, 약수와 청수의 동쪽에서, 다시 북쪽으로 흐르다, 다시 서남쪽으로 흘러, 필방조가 사는 동쪽을 지나간다.


1 곽박(郭璞)云:「(한서(漢書))서역전(西域傳):『오익구은 장안에서 만 오천 리 남짓 떨어져 있고(烏弋國去長安萬五千餘里),서쪽으로 백일 남짓 가면(西行可百餘日),조지국에 이르는데(至條枝國),서해를 가까이 마주하고 있다(臨西海)。장로전에 의하면(長老傳聞),약수 서쪽에 서왕모가 있고 한다(有弱水西王母云)。』(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亦曰,만리장성 천 리 밖에는(長城外數千里),약수가 있다(亦有弱水)。모두 아직 보지 못한 곳(皆所未見也)。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云:『약수는 궁석에서 나온다(弱水出窮石)。』궁석은 현재의 서군 단염이고(窮石今之西郡冉),그 나누어 갈라진 출처다(蓋其派別之源耳)。」원가기록(珂案):곽박(郭)注「단염(冉)」,하작(何焯)校「산단(刪丹)」;황비렬(黃丕烈)、주숙도(周叔弢)校同,云以한나라(漢) 진나라(晉) 지리지(地理志)참고(參)校。약수(弱水)已見前卷「알유(窫窳)」節。

2 원가기록(珂案):해외남경(海外南經)云:「필방조는 청수 서쪽에 있다(畢方鳥在青水西)。」


昆侖南淵深三百仞1。

곤륜 남쪽 웅덩이는 깊이가 삼백 길에 이른다.


開明獸身大類虎2而九首,皆人面3,東嚮立昆侖上4。

개명수 몸의 크기는 머리가 아홉 개이고 몸은 범만하며, 모두 사람 얼굴을 하고있다, 곤륜산 꼭대기에 서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1 곽박(郭璞)云:「영연(靈淵)。」학의행(郝懿行)云:「即해내북경(海內北經)云『종극연은(從極之淵),깊이가 삼백 길에 이른다(深三百仞)』者也。」원가기록(珂案):해내북경(海內北經)云:「곤륜허 남쪽에(昆侖虛南所),있는 범림은 넓이가 삼백 리에 이른다(有氾林方三百里)。종극연은(從極之淵),깊이가 삼백 길에 이르고(深三百仞),빙이가 항상 도읍을 유지하고 있다(維冰夷恆都焉)。」학의행(郝)說맞다(是也)。

2 원가기록(珂案):송본(宋本)、모의(毛扆)校本、장경(藏經)本「범의 종류(類虎)」다음에 모두 몸에 곧은 무늬가 있다 네 글자가 있으며(下均有곽박(郭)注「몸에 곧은 무늬가 있다(身或作直)」四字),현재 빠짐(今脫去)。

3 원가기록(珂案):개명수(開明獸)即서차삼경(西次三經) 신(神) 육오다(陸吾也),已見本章「해내곤륜허(海內昆侖之虛)」節注2。대황서경(大荒西經)云:「곤륜구에(昆侖之丘),신이 있는데 사람 얼굴에(有神——人面),범의 몸(虎身),꼬리에 무늬가 있고(文尾(원문에는(原作『무늬가 있고 꼬리가 있다(有文有尾)』)),왕념손(王念孫)云:유자 두 개가 덧붙었으나(二有字衍),나중에 삭제됨(從刪)),모두 깨끗하게 처리됨(皆白——處之)。」即신(神) 육오는(陸吾),亦即개명수다(開明獸也)。

4 곽박(郭璞)云:「천수다(天獸也)。명문(銘)曰:『개명은 짐승이 되었는데(開明為獸),태어나기를 하늘의 정령으로 태어났고(稟資乾精),곤륜을 바라보며(瞪視昆侖),여러 신령에게 위엄을 떨친다(威振(장경(藏經)本作진(震)——珂)百靈)。』」원가기록(珂案):명문(銘)亦곽박(郭氏) 도찬(圖讚)也。현재(今) 도찬(圖讚)云:「개명천수는(開明天獸),태어나기를 쇠의 정령으로 태어났다(稟茲金精);범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하여(虎身人面),뛰어난 몸을 드러낸다(表此桀形);곤산을 바라보고(瞪視崑山),여러 신령에게 위엄을 떨친다(威懾百靈)。」더불어 이와 조금 다르다(與此略異)。


開明西有鳳皇、鸞鳥,皆戴蛇踐蛇,膺有赤蛇1。

개명수 서쪽에 있는 봉황과 난조는, 모두 뱀을 머리에 이고 뱀을 발로 밟고 있다, 가슴에 붉은 뱀이 있다.


1 원가기록(珂案):서차삼경(西次三經)云:「(곤륜구(昆侖之丘))여기 있는 새는(有鳥焉),그 이름을 순조라 하는데(其名曰鶉鳥),이 새는 천제의 온갖 물건을 관리한다(是司帝之百服)。」학의행(郝懿行)云:「순조는(鶉鳥),봉이다(鳳也);해내서경(海內西經)云:곤륜허 개명수 서북쪽에는 봉황이 어디에나 있고(昆侖開明西北皆有鳳皇),이 새가 맞다(此是也)。비아(埤雅)(卷八)引사광금경(師曠禽經)云:『붉은 봉을 일컬어 순이라 한다(赤鳳謂之鶉)。』」即此。


開明北有視肉、珠樹1、文玉樹2、玗琪樹3、不死樹4。

개명수 북쪽에  시육과 주수와 문옥수와 우기수와 불사수가 있다.


鳳皇、鸞鳥皆戴瞂5。

봉황과 난조는 모두 머리에 방패를 이고 있다.


又有離朱6、木禾、柏樹、甘水7、聖木8曼兌9,一曰挺木牙交10。

또 이주와 목화와 백수와 감수와 성목 만태가 있으며,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 정목 아교라 한다.


1 원가기록(珂案):해외남경(海外南經)云:「삼주수는 적수의 상류에서 나온다(三珠樹生赤水上)。」이것으로 의심(疑即此)。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아홉 겹으로 성을 쌓았고(增城九重),주수는 그 서쪽에 있다(珠樹在其(곤륜(昆侖))西)。」即이 주수다(此珠樹也)。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云:「주수수는 모두 뭉쳐나고(珠玕之樹皆叢生),꽃과 열매는 모두 좋은 향과 맛이 나며(華實皆有滋味),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食之不老不死)。」則又부사수의 종류다(不死樹之類),전설이 변화하고 발전하였다(蓋亦傳說之演變也)。

2 곽박(郭璞)云:「다채로운 빛의 아름다운 나무(五彩玉樹)。」원가기록(珂案):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云「옥수는 그 서쪽에 있다(玉樹在其(곤륜(昆侖))西)。」초사(楚辭) 이소(離騷) 왕일(王逸)注引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云:「곤륜 위에 경옥수가 있다(崑崙上有瓊玉之樹)。」이 종류다(即此之屬)。

3 곽박(郭璞)云:「우기는(玗琪),붉은 옥 종류다(赤玉屬也)。오나라(吳) 천새 원년에(天璽(손호(孫皓) 연호(年號)——珂)元年),임해군 관리 오요는 바닷가에서 석수를 주웠는데(臨海郡吏伍曜在海水際得石樹),높이가 이 척 남짓이고(高二(송본(宋本)、장경(藏經)本作삼(三)——珂)尺餘),줄기와 잎이 자줏빛이었으며(莖葉紫色),굽은 곳을 자세히 보려고 기울여 문지르니(詰曲傾靡),아름다운 빛이 났다(有光彩),옥수의 종류다(即玉樹之類也)。우와 기(于、其)兩音。」학의행(郝懿行)云:「곽박(郭)注見송서(宋書) 부서지(符瑞志),에만 이 척이 삼 척으로 쓰여 있고(唯二尺作三尺),줄기와 잎은 가지와 잎으로 쓰여 있으며(莖葉作枝莖),굽은 곳을 자세히 보다는 구불구불하다로 다르게 쓰여 있다(詰曲作詰屈為異),그 나머지는 같다(其餘則同)。다만 근거는(但據)곽박(郭) 설명(所說),산호수와 비슷하고(則似珊瑚樹),아마도 우기수와는 다르다(恐非玗琪樹也)。우기(玗琪)見이아(爾雅)석지 (釋地)。又목천자전(穆天子傳)(卷四)云:『중옹씨가 다스리는 곳에서(重𢀄[缶邕]氏之所守),우기와 옥미라 한다(曰玗琪、𢕲[彳彔攵]尾)。』」

4 곽박(郭璞)云:「오래 산다고 한다(言長生也)。」원가기록(珂案):불사수(不死樹)已見해외남경(海外南經) 곽박(郭)注:「원구산 위에 불사수가 있는데(員邱山上有不死樹),먹으면 오래 산다(食之乃壽)。」문선(文選) 사현부(思玄賦) 이선(李善)注引이 경문에(此經)云:「곤륜 개명 북쪽에 불사수가 있고(崑崙開明北有不死樹),먹으면 오래 산다(食之長壽)。」又引곽박(郭)注:「영원히 산다는 말이다(言常生也)。」현재 경문에는 이 말이 없다(今經無此語),곽박注영원이 산다는 오래 산다로 쓰여 있다(常生作長生)。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편(本味篇)云:「맛 좋은 나물은(菜之美者),수목의 꽃이다(壽木之華)。」고유(高誘)注云:「수목은(壽木),곤륜산 위의 나무다(崑崙山上木也);꽃은(華),열매다(實也);그 열매를 먹은 사람은 죽지 않기 때문에(食其實者不死),수목이라 한다(故曰壽木)。」이 수목이 불사수다(是壽木即不死樹也)。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亦云:「불사수는 그 서쪽에 있다(不死樹在其(곤륜(昆侖))西)。」

5 곽박(郭璞)云:「音벌(伐),방패다(盾也)。」학의행(郝懿行)云:「태평어람(太平御覽)三百五十七卷引이 경문에 벌은 순으로 쓰여 있다(此經瞂作盾)。」왕념손(王念孫)、필원(畢沅)校並同학의행(郝)注。원가기록(珂案):현재 복사된(今影) 송본(宋本)태평어람(御覽)作벌(𢧕),이것은 벌이 잘못된 것(則是瞂之訛也),학의행(郝氏)等三家所見本均同誤。

6 원가기록(珂案):이주는 준오다(離朱即踆烏),已見해외남경(海外南經)「적산(狄山)」節注。

7 곽박(郭璞)云:「예천이다(即醴泉也)。」원가기록(珂案):사기(史記) 대원전(大宛傳)云:「우본기에 곤륜산 위에 예천이 있다고 말한다((禹本紀言崑崙上有醴泉)。」

8 곽박(郭璞)云:「먹으면 착한 사람은 똑똑해 진다(食之令人智聖也)。」

9 곽박(郭璞)云:「자세하지 않음(未詳)。」원가기록(珂案):성목 만태는(聖木曼兌),이것은 하나의 물건이며(當是一物),만태는 성목의 이름이다(曼兌即聖木之名也)。

10곽박(郭璞)云:「회남자(淮南)作선수(璇樹);선은(璇),옥의 종류(玉類也)。」학의행(郝懿行)云:「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云:곤륜산 위에 선수가 있다(昆崙之上有璇樹)。蓋선수는 정목 아교라고도 하는데(璇樹一名挺木牙交),故곽박(郭氏)引之。경문 위와 아래에 빠진 글자와 틀린 글자가 있는 것으로 의심(疑經文上下當有脫誤),정목 아교 네 글자는 선수 두 글자의 잘못되 모양으로 알 수 없다(或挺木牙交四字即璇樹二字之形訛亦未可知)。선은 궁으로 쓰여야 한다(璇當為琁)。고유(高誘)注회남자(淮南) 지형훈(墬形訓)云:선(琁)音궁(窮),맞다(是也)。명나라(明) 장본(藏本) 아는 호로 쓰여 있다(牙作互)。장용(臧庸(청나라 사람(清人)——珂))曰:『정목 아교는 만태의 다른 글이 되었는데(挺木牙交為曼兌之異文),바꿔 읽으면 태가 되고(兌讀為銳),정은 천이 되어야 한다(挺當為梴),잘못된 글자다(字之訛也)。』」


開明東有巫彭、巫抵、巫陽、巫履、巫凡、巫相1,夾窫窳之尸,皆操不死之藥以距之2。

개명 동쪽에 무팽과 무저와 무양과 무이와 무범과 무상이 있고, 알유시와 가까이 있으며, 모두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불사약을 쥐고 있다。


窫窳者,蛇身人面,貳負臣所殺也。

알유는, 몸은 뱀이고 얼굴은 사람이며, 이부의 산하에게 죽임을 당했다.


1 곽박(郭璞)云:「모두 병을 잘 고치는 의원(皆神醫也)。세본(世本)曰:『무팽(巫彭)作의원(醫)。』초사(楚詞)(초혼(招魂))曰:『임금에게 무양을 알려주다(帝告巫陽)。』」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대황의 안에는(大荒之中),영산이 있는데(有靈山),무함과 무즉과 무분과 무팽과 무고와 무진과 무례와 무저와 무사와 무라라는 열 명의 무녀는(巫咸、巫即、巫、巫彭、巫姑、巫真、巫禮、巫抵、巫謝、巫羅十巫),무리지어 산을 오르내렸다(從此升降),여기에 온갖 약들이 있다(百藥爰在)。」열 명의 무당 중 무팽이 있는데(十巫中有巫彭),이 무팽이다(即此巫彭也)。나머지(餘) 무례(巫禮) 학의행(郝懿行)以為即무이(巫履)(예의 뜻이 이다(禮之義履也)),무분은 무범이고(巫即巫凡(분과 범은 발음이 비슷(與凡音近))),무사와 무상이며(巫謝即巫相(사와 상은 성조가 비슷(謝與相聲轉))),열 명의 무녀와 여섯 명의 무녀 이름은 모두 서로 비슷하다(十巫與此六巫名皆相近),여기 있는(而彼有)「여기에 온갖 약들이 있다(百藥爰在)」、이 알야시와 가까이 있고와 모두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불사약을 쥐고 있다는 말은(此有「알유시와 가까이 있으며(夾窫窳之尸)、모두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불사약을 쥐고 있다(皆操不死藥以距之)」語),무함과 무팽은 전설 속에서 의원의 도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며(巫咸、巫彭又為傳說中醫道創始者),이 경문의 모든 무당 신화는 영산 무당 신화의 다른 이야기가 합쳐진 것이다(此經諸巫神話要無非靈山諸巫神話之異聞也)。故곽박(郭璞)注以為「모두 병을 잘 고치는 의원(皆神醫也)」;然細按之,毋寧曰,모두 무당이다(皆神巫也)。이 모든 무당들은 단지 신의 옆에서 보좌할 뿐인데(此諸巫無非神之臂佐),그 맡은 일이 하늘을 오르내리면서 신의 뜻과 다사로운 마음을 베풀고(其職任為上下於天、宣達神旨人情),약을 모으고 죽음을 치료하면서(至於采藥療死),그 나머지 재능이 특별하다(特其餘技耳)。알유는 살면서 불사신약을 쥐고 있었는데(操不死神藥以活窫窳),신에게 목숨을 바치게 되어서(當亦奉神之命),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非敢專擅也)。곽박(郭氏) 도찬(圖讚)云:「알유는 죄가 없었는데도(窫窳無罪),이부에게 피해를 당했는다(見害貳負);황제는 무당들에게 명하여(帝命群巫),약을 손에 쥐고 함께 지키게 하였다(操藥夾守);끝내 약연에 빠져서(遂淪弱淵),용의 머리로 변하였다(變為龍首)。」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형태라 할 수 있다(是能得其情狀者)。참고(參)見해내경(海內經)「구구(九丘) 건목(建木)」節注。

2 곽박(郭璞)云:「죽음의 기운을 거절하여 물러나게 한다(為距卻死氣),다시 살기를 부탁한다(求更生)。」


服常樹1,其上有三頭人2,伺琅玕樹3。

복상수, 그 꼭대기에 삼두인이 있고, 낭간수를 엿보고 있다.


1 곽박(郭璞)云:「복상수(服常木),자세하지 않다(未詳)。」오임신(吳任臣)云:「회남자(淮南子)(지형편(墬形篇))사당과 낭간은 곤륜 동쪽에 있고(沙棠琅玕在崑崙東),복상은 사당으로 의심(服常疑是沙棠)。」

2 학의행(郝懿行)云:「해외남경(海外南經)云:『삼수국은 사람은 몸은 하나에 머리가 세 개다(三首國一身三首)。』亦此類也。」

3 곽박(郭璞)云:「낭간의 열매는 진주와 비슷하다(琅玕子似珠),이아(爾雅)(석지(釋地))曰:『서북의 아름다운 것으로(西北之美者),곤륜의 낭간이 있다(有昆侖之琅玕焉)。』장주(莊周)曰:머리가 세 개인 사람이 있는데(有人三頭),세 개의 머리가 서로 번갈아 가며 누웠다 일어났하며(遞臥遞起),낭간과 낭간의 열매를 지킨다(以伺琅玕與玗琪子),이 사람을 일컫는다(謂此人也)。」학의행(郝懿行)云:「설문해자(說文)(일(一))云:『낭간은(琅玕),진주와 비슷하다(似珠者)。』곽박(郭)注이아(爾雅) 석지(釋地)引이 경문(此經)云:『곤륜에 낭간수가 있다(昆侖有琅玕樹也)。』又옥편(玉篇)引장자(莊子)云:『돌무지가 나무가 되었는데(積石為樹),이름을 경지라 하고(名曰瓊枝),그 높이는 일백 이십 길이며(其高一百二十仞),크기는 삼십 위다(大三十圍),낭간이라는 열매가 열린다(以琅玕為之實)。』이 낭간은 옥지의 열매이고 진주와 비슷하다(是琅玕即瓊枝之子似珠者也)。옥지(瓊枝)亦見이소(離騷)(『근거(折) 옥지를 이어 장식한다(瓊枝以繼佩)』——珂)。又왕일(王逸)注구가(九歌)云:『경방은(瓊芳),경옥지다(瓊玉枝也)。』소객은 오직 경지의 무늬만 기록하였고(騷客但標瓊枝之文),옥편의 빈곳에는 낭간의 열매라 덧붙였으며(玉篇空衍琅玕之實),而장자(莊子) 뛰어난 문장은(逸文),글이 생략되서 보지 못하여 안타깝다(缺然未睹厥略)。惟예문유취(藝文類聚)九十卷及태평어람(太平御覽)九百一十五卷引장자(莊子)曰:『노자는 공자의 제자 다섯 명이 뒤따르는 것을 보았다(老子見孔子從弟子五人),묻기를(問)曰:「앞세운 사람은 누구인가(前為誰)?」曰:「용맹한 자로입니다(子路為勇)。」그 다음은 슬기로운 자공이고(其次子貢為智),어버이를 섬기는 증자이며(曾子為孝),어진 안회와(顏回為仁),본받을 만한 자장입니다(子張為武)。노자(老子) 감탄(歎)曰:「내가 남쪽에 있는 새에 대해 들었는데(吾聞南方有鳥),그 이름이 봉이라 하더라(其名為鳳),천 리에 돌을 쌓아 집을 짓다(所居積石千里)。하늘에서 날로 먹는데(天為生食),그 나무의 이름이 경지라(其樹名瓊枝),높이는 백 길이고(高百仞),구림과 낭간이라는 열매가 열린다(以璆琳琅玕為實)。하늘에서 나는 이주가 떨어지는데(天又為生離珠),머리가 세 개인 한 사람이(一人三頭),세 개의 머리가 서로 번갈아 가며 누웠다 일어났하며(遞臥遞起),낭간을 지킨다(以伺琅玕)。봉조의 무늬는(鳳鳥之文),성스러움을 머리에 이고 인자함을 목에 걸었으며(戴聖嬰仁),오른쪽은 지혜를 왼쪽은 현명함을 가졌다오(右智左賢)。」』以此참고(參)校곽박(郭)注所引,『더불어 낭간의 열매(與玗琪子)』네 글자는(四字),잘못 덧붙인 글자(蓋誤衍也)。」원가기록(珂案):이주는(離珠),이주다(即離朱),황제 시절에 눈이 좋은 사람이었는데(黃帝時明目者),이는 머리가 세 개인 한 사람의 이주와 해 속의 발이 세 개인 신령한 새 이주가 변화하고 발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此一人三頭之離珠又為日中三足神禽離朱演變而成者,참고(參)見해외남경(海外南經)「삼주수(三株樹)」節及「적산(狄山)」節注。


開明南有樹鳥,六首1;

개명수 남쪽에 있는 수조는, 머리가 여섯 개이다.


蛟2、蝮3、蛇、蜼、豹、鳥秩樹4,于表池樹木5,誦鳥6、鶽7、視肉。

교룡과 살무사와 뱀과 거미원숭이와 표범과 조질수가 있고, 표지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송조와 송골매와 시육이 있다.


1 원가기록(珂案):대황서경(大荒西經)云:「푸른 새가 있는데(有青鳥),몸은 누렇고(身黃),발은 붉으며(赤足),머리가 여섯에(六首),이름을 촉조라 한다(名曰𪇆鳥)。」곽박(郭璞)云:「音촉(觸)。」이 머리 여섯 개의 수조로 의심(疑即此六首之樹鳥)。

2 곽박(郭璞)云:「교는 뱀과 비슷하고(蛟似蛇),다리가 네 개이며(四腳),용의 종류다(龍類也)。」

3 원가기록(珂案):초사(楚辭) 초혼(招魂):「살무사와 뱀이 빽빽하다(蝮、蛇蓁蓁)。」왕일(王逸)注:「복은(蝮),큰 뱀이다(大蛇也)。」

4 곽박(郭璞)云:「나무 이름(木名),자세하지 않다(未詳)。」

5 곽박(郭璞)云:「표지에 줄지어 선 나무를 말한다(言列樹以表池),화지다(即華池也)。」

6 곽박(郭璞)云:「새 이름(鳥名),모양이 자세하지 않다(形未詳)。」

7 곽박(郭璞)云:「수리다(鵰也)。목천자전(穆天子傳)(卷二)曰:『여기에 흰 송골매와 푸른 수리가 있다(爰有白鶽、青鵰)。』音죽순의 순(竹筍之筍)。」학의행(郝懿行)云:「현재 목천자전에 쓰인 흰 새와 푸른 수리는(今穆天子傳作白鳥、青鵰),已見서차삼경(西次三經)『종산(鍾山)』注。」원가기록(珂案):서차삼경(西次三經)「종산(鍾山)」곽박(郭)注引목천자전(穆天子傳)亦作「흰 새(白鳥)、푸른 수리(青鵰)」,현재 목천자전이 잘못되지 않은 게 증거라 할 수 있고(可證今本穆天子傳不誤),곽박(郭)이곳에(此處)所引스스로 잘못됨(自誤)。곤륜산 신화 관련(關於昆侖山之神話),그것은 온전하게 정돈되어 비교하고 또 옛 것과 비교한다면(其較完整而又較古者),이것은 이 경문 기록 이 외에(除此經所記而外),뎌욱이(尚見)於회남자(淮南子) 지형편(墬形篇)。지형편(墬形篇)云:「우는 기름진 땅의 흙을 훔져 넘치는 물을 막았고(禹乃以息土填洪水),이름난 산이라 여기며(以為名山),곤륜허 아래의 땅을 팠다(掘昆侖虛以(수경(水經)注황하(河水)引이 다음에 위자가 있다(此以下有為字)——珂)下地)。곤륜허 안에 아홉 겹으로 성을 쌓았는데(中有增城九重),그 높이가 만 일천 리에 이르고 백 십 사 보에 이 척 육 촌이다(其高萬一千里百一十四步二尺六寸)。산 위에 있는 목화는(上有木禾),그 높이가 다섯 심이다(其修五尋)。주수와 옥수와 선수와 불사수는 그 서쪽에 있다(珠樹、玉樹、旋樹、不死樹在其西);사당과 낭간은 그 동쪽에 있다(沙棠、琅玕在其東);강수는 그 남쪽에 있다(絳樹在其南);벽수와 요수는 그 북쪽에 있다(碧樹、瑤樹在其北)。성에는 사백 사십 개의 문이 있는데(旁有四百四十門,門閒四里),문 사이 거리는 아홉 순이고(里閒九純),문의 길이는 다섯 척이다(純丈五尺)。성에는 아홉 개의 우물이 있는데(旁有九井),옥횡은 오직 그 서북쪽 구석에만 있다(玉橫維其西北之隅)。북쪽 문이 열리면 안으로 서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들어온다(北門開以內不周之風)。경궁과 선실과 현포와 양풍은 곤륜 창합의 안에 있고(傾宮、旋室、縣圃、涼風在昆侖閶闔之中),이것 바로 소포다(是其疏圃)。소포의 못은(疏圃之池),황수로 들어간다(浸之黃水)。황수는 삼주에서 다시 원상태가 된다(黃水三周復其原),이것을 백수라 일컫고(是謂白水(백은 원래 단으로 쓰여 있다(白原作丹),從왕념손(王念孫) 독서잡지(讀書雜志)校고침(改)——珂)),마시면 죽지 않는다(飲之不死)。황하는 곤륜 동북쪽 구석에서 나오고(河水出昆侖東北陬),발해를 지나 우소적석산으로 들어간다(貫渤海入禹所導積石山)。적수는 그 동남쪽 구석에서 나오고(赤水出其東南陬),서남쪽 남해로 들어간다(西南注南海),단택의 동쪽(丹澤之東),적수의 동쪽이다(赤水之東)。약수는 궁석에서 스스로 나와(弱水出自窮石),합려에 이르고(至于合黎),남은 물줄기는 유사로 들어가며(餘波入于流沙),유사 남쪽에서 끊어지고 남해에 이른다(絕流沙南至南海)。양수는 그 서북쪽 구석에서 나오고(洋水出其西北陬),남해로 들어가며(入于南海),우민의 남쪽에 있다(羽民之南)。무릇 네 개의 물은(凡四水者),천제의 영묘한 샘이고(帝之神泉),온갖 약이 섞여(以和百藥),모든 물건들이 번지르르하다(以潤萬物)。곤륜구는(昆侖之邱),산 위에 봉우리 하나는(或上倍之),이것을 일컬어 양풍산이라 하며(是謂涼風之山),오르면 죽지 않는다(登之而不死);산 위에 봉우리 하나는(或上倍之),이것을 일컬어 현포산이라 하며(是謂懸圃之山(원래 지산은 두 글자는 없는 글자(原無之山二字),從왕념손(王念孫) 독서잡지(讀書雜志)校더함(增)——珂)),오르면 영검해져서(登之乃靈),바람과 비를 부릴 수 있다(能使風雨);산 위에 봉우리 하나는(或上倍之),하늘로만 올라가며(乃維上天),오르면 신이 되고(登之乃神),이곳을 일컬어 대제가 사는 곳이라 한다(是謂太帝之居)。」고유(高誘)注:「태제는(太帝),천제다(天帝)。」이 천제는 황제다(此天帝蓋即黃帝也)。나머지(餘) 십주기(十洲記)와 습유기(拾遺記) 등도 모두 기록되어 있고(等亦均記之),저열하고 옹졸하여 도리가 부족하다(然卑瑣不足道矣)。하권 머릿말 두 구절(下卷卷首「사무산(蛇巫之山)」及「서왕모(西王母)」二節),모두 이 구절 뒤쪽으로 옮겨졌고(均當移於此節之後),설명(說)已見해내남경(海內南經)「흉노(匈奴)」節注。